우리는 이 세상과 우리가 기대하는 세상에서부터 예수님을 보내어 예수로 증명한, [ 하나님이 목적하고 요구하는 세상으로 바꿔진 삶을 ] 살아야 한다.
그것은 윤리 도덕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를 훨씬 넘어서는 거다. 자신의 존재와 조건과 지금 현실과 모든 조건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 믿음을 가지면 어떻게 된다고? 마음이 고민하여 죽을 것같이 된다.
'내가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을 것 같다'가 동시에 일어나는 그게 가장 신자의 확실한 정체성이고 현장이다.
거기를 피해 도망가는 바람에 기독교 복음은 그냥 값싼 주문이 됐다. 대강 외면하고 타협하고 사는 게 돼버렸다.
'월터 브루구만'이 그의 책에서 내내 이것을 공격한다; `소비자 사회에서 간단한 신앙 주문으로 얼버무리고 사는 신자들이 됐다` 이렇게 꾸중을 한다.
그럼 뭐를 해야 되나?
뛰어나가서 영웅이 되지 말라.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서 지금 부활의 인생을 살고 부활의 씨앗을 심는, 죽음의 자리를 지켜내는 그 믿음의 소망과 담대함과 인내와 자랑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윤리 도덕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를 훨씬 넘어서는 거다. 자신의 존재와 조건과 지금 현실과 모든 조건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 믿음을 가지면 어떻게 된다고? 마음이 고민하여 죽을 것같이 된다.
'내가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을 것 같다'가 동시에 일어나는 그게 가장 신자의 확실한 정체성이고 현장이다.
거기를 피해 도망가는 바람에 기독교 복음은 그냥 값싼 주문이 됐다. 대강 외면하고 타협하고 사는 게 돼버렸다.
'월터 브루구만'이 그의 책에서 내내 이것을 공격한다; `소비자 사회에서 간단한 신앙 주문으로 얼버무리고 사는 신자들이 됐다` 이렇게 꾸중을 한다.
그럼 뭐를 해야 되나?
뛰어나가서 영웅이 되지 말라.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서 지금 부활의 인생을 살고 부활의 씨앗을 심는, 죽음의 자리를 지켜내는 그 믿음의 소망과 담대함과 인내와 자랑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