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자 이야기(2003)_8. 소자를 실족케 하는 일]
(마 18:6-10)
#범죄의 뿌리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내 버리라 내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 버리라' 말씀한다.
여기서 범죄란 윤리 도덕적 차원의 얘기가 아니고 소자를 실족케 하는 일들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이 손발을 자르고 눈을 빼고 하는 식의 이런 표현들은 사실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범죄하는 지체나 도구, 방법들은 제거한다고 해서 그 뿌리가 되는 죄가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마태복음 5장에서 '눈을 빼고 손을 자르라'는 경고의 말씀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표현의 내용은 그 범죄하는 것이 밖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속에서부터 진행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은 우리 속에 있는 우리 마음의 상태, 마음의 기질, 소원, 이런 것들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지, 속과 상관없이 밖으로 어떤 일이 행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이미 우리 마음의 그 범죄에 대한 마음의 소원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손발을 자른다든가 눈을 뺀다든가 하는 것은 그 일이 시행되는 어떤 도구들을 제거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고,
●그런 행동이 나오는 근원지인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지적이다.
이런 문제는 그 뒤에 나오는 마태복음 7장의 예화에서도 분명해진다. 선지자 노릇한 것과 귀신 쫓아낸 것, 권능을 행한 것 이런 것 다 지금 여기 기록된 바와 같이 주의 이름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들이 불법을 행한 자들로 정죄 받은 이유는 그 일 자체가 그 내용과 원리에서 틀려 있기 때문이라 하는 것이다.
저들은 저들은 이 일을 세상 앞에서 자신들을 증명받기 위하여 한 것이다.
이는 또한 마태복음 6장의 큰 주제였던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하는 일은 그것이 명분적으로나 혹은 형태적으로는 그럴 듯한 포장을 하고 나타날 수 있다.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못한 것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 것이요 자기를 나타내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범죄의 뿌리 제거
그렇다면 선지자 노릇과 귀신 쫓아내는 일을 그만두고 권능 행하는 것을 외면하면, 범죄의 뿌리가 제거되며 그로 인한 잘못이 교정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건 속을 고쳐야 하는 문제지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제거하는 것으로써 그 속을 고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문제로 자주 접하게 되는 빌립보서 2:1 이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재나 긍율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는 것이다.
결국 무슨 싸움인가?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을 때, 한마디로 옳은 일 할 때, 가장 신앙적인 일을 할 때마저도 잘못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틀리면 그렇게 되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이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니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이다.
●이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이다.
#마음의 불순물 제거
그래서 지금 모든 싸움은 이것이다. '손발을 잘라라 눈을 빼라'는 것은 네가 가진 신앙이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표현되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 앞에 보이려고 한 것이요 세상 앞에 보상을 받으려고 한 것이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요 경고이다.
그래서 '그것을 잘라라', '그것을 찍어버려라', '그것을 빼버려라'는 나타나는 일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그렇게 나타내는 너의 마음의 내용들, 신앙에 관한 너희의 이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지켜야 하는 책임들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어떤 불순물인가? 십자가를 지는 것을 거부하는 모든 불순물이다.
●십자가란, 그 핵심이 이웃을 위하여 내가 죽는 것이다. 우리가 찍어버려야 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살아나기 위하여 이웃을 죽이는 것이다. 이 불순물이 소자를 실족케 하는 것이다.
#소자됨의 열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있음으로 인하여 누군가 위로를 받고 유익을 받는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것으로 점검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을 꼭 나누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희생하고 참고 양보해서 거기 십자가의 열매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걸 맺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다 이 실패의 자리, 즉 소자를 실족케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되고 만다
●신앙의 고급한 경지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훨씬 복잡하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 인생에 대한 이해, 사람의 각기 다른 것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된다.
●그리고 그 모두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아름답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부요하심과 그 영광이 끝없음을 아는 지식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간단하게 어느 것 하나를 안 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나는 담배를 찍어버렸다. 술을 찍어버렸다' 또는 '나는 어떤 범법 행위들을 다 빼버렸다'는 식의 간단한 요구가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고급한 내용들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그늘에 와서 쉬며 나로 인하여 힘을 얻는 그런 것이다. 내가 샘이 되고 그늘이 되고 음악이 되고 침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생명과 거룩과 영광에 이르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찾아가고 나눠주며 먹이며 기꺼이 동참시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르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찍어 버리라'는 경고 속에 담긴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