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세상은 '이기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죽어 상대를 살리고 내것을 주어 상대방을 부요케 하는 방법을 쓰는 나라이다. 그래서 여기는 십자가 외에 다른 방법이 소용되질 않는다

nazunzaro 2021. 8. 22. 11:35


[소자 이야기(2003)_3. 하나님 나라와 소자]

(마 18:1-6)

#하나님 나라와 어린아이
마태복음 18장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의 가치와 천국의 질서와 같은 본질적인 내용을 묻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는 말씀이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이 질문은 장소적으로 그 환경과 상태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은 본질적으로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통치 방법은 도대체 어떠신 것입니까?'
'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이런 식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시며 이런 식으로 사십니까?'
하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은 '돌이켜 어린아이들 같이 되라' 이것이다. '돌이키라'는 것은 우리 보통 얘기하는 '회개하라'와 같은 뜻이다. 돌이켜 너희가 세상에서 가지는 생각과 전혀 반대의 생각을 해야 된다. 이 세상에서는 힘을 가진 자가 남을 억누르고 그 위에 군림하고 그들을 부리려고 하지만 천국은 그렇지 않다. 어린아이 같아야 된다 이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는 순진함을 그 내용으로 해서 등장시킨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는 사회적 지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20세 이상이 돼야 사람 취급을 받았고 어린아이들은 사회적으로 말하자면 가치가 없는 존재이다.

우리 모두가 갖는 신앙상의 가장 어려운 올무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형편과 조건을 요구하신다는 것에서 말미암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마 신앙생활을 이 시작에서부터 실패하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생각에는 우리가 가진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복음에 대한 열정, 또 죽어가는 영혼들 앞에 우리가 증거해야 될 이 진리와 영생에 속한 것들에 대한 헌신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큰 자'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갖는다.

그러나 뜻밖에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질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쓰시지 않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우리의 이 하찮은 존재에 대하여 지레 절망해 버린다.

#소자로 오신 예수님
빌립보서 2:5 이하에는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묘사가 있다. 여기서 예수님의 수난을 어떻게 이해하나 보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될 것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니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두 가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예수님의 수난을 하나님이 가장 크게 칭찬하셨다는 사실과
■둘째는 수난과 희생의 십자가라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바가 이것이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은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즉 '나는 어린 아이 같은 모습으로 왔다' 이것이다.

그는 사회적인 평가로는 지극히 낮은, 힘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마저도 예수님께 계속해서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라고, 힘을 가지고 크고 높은 지위를 선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끝까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이것은 오늘 우리의 존재, 우리의 형편이야말로 예수님과 방불하다는 사실로 인하여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어린아이와 같다. 사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어린아이 같음을 분노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즐겨 쓰시는 방법이요, 가장 가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이 이걸 제일 좋아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로서의 소자
하나님은 우리가 보는 시각과 다르게 일하신다. 왜 다르게 일하시는가? 나라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원리와 내용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은 죄의 원리로 가득 찬 곳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치는 '이기라'는 것 아닌가? 그 이김은 해쳐서 이기는 것 아닌가? 상대방의 것을 뺏어서 소유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죽어 상대를 살리고, 내 것을 주어 상대방을 부요케 하는 방법을 쓰는 나라이다. 그래서 여기는 십자가 외에 다른 방법이 소용되질 않는다.
여기는 '한 알의 썩는 밀알'이라는 방법이 통하는 곳이다. 우리는 가장 볼품 없는 겨자씨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는 복음에의 열정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가진 바 신앙의 복들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래서 뭘 요구하는가? 힘을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가 뭘 가졌는지 모른다. 어린 소자가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우리는 다 위대하려 하며 영웅이 되려고 한다. '난 가진 것이 없다. 난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으로 우리는 늘 불만이다.

그러나 아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이 신기한 분이라고 생각은 했어도,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버리자, 심지어 제자들마저도 도망갔다. '우리가 속았구나. 기대를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했다.
왜? 예수님께서 전혀 세상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전 인류를 구원한 일이다. 우리 모두를 새 사람 만드는 일을 하셨다.

※예수님의 소자되심으로 인한 효력
우리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서 가지게 된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가지셨던 어떤 특권 어떤 조건 중에 우리가 예수님보다 덜 갖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우리 기도는 성부 하나님께서 안 들으시는가?
아니다. 우리 기도도 들으신다. 예수님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간섭하신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우리 모두에게는 실상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지셨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특권들이 모두 허락되어 있다. 다만 그가 존재로서 하나님이셨던 것만 빼놓고는 성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보다 덜 갖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소자로서의 소명을 거부한 결과
우리의 존재와 인생 우리가 맡은 사역에 있어서 주 앞에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들이 허락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특권을 쓸 줄을 모른다. 왜? 우리는 우리 손에 있는 씨앗을 심어야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손에 수류탄이 들어 있으면 더 좋겠다는 것이다. 씨앗을 한 웅큼 갖고 있는 것보다, 내가 밀알로서 죽어야 하는 것보다 내가 군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미 준 특권들과 비방들은 사용하지 않고, 끊임없이 쓸모 없고 가져서는 안 되는 거만 달라고 하게 된다.

그 결과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신자된 존재와 형편에 대하여 마음속 깊이 분노와 절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형편 때문에 갖는 분노와 불만이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부르신다.
우리가 불만과 불평의 소리를 내는 것은 '작은 자'로 부르신 그 부름 안에 있는 모든 특권을 깨닫지 못한 것이요, 모든 것을 소유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