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 다르다, 그 용도가 다르며, 평가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믿음에는 은혜와 책임이 그 안에 함께 맞물려 있는데, 믿음의 근거와 시작은 은혜이고, 믿음의 목적과 내용은 책임이다.
우리는 기독교가 은혜와 사랑과 믿음의 종교라고 이야기하지만, 믿음에 대한 이해는 세상이 정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예수'라고 대답할 줄은 안다. 예수, 믿음, 구원 중 예수가 가장 중요한데, 예수가 주인공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기독교 신앙을 평가할 때는 매사에 믿음이 등장한다. '난 믿음이 없어 내 믿음은 연약해.' 이렇게 믿음이 조건이나 자격으로 작용한다.
예수는 조건과 자격을 깨려고 들어오셨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그 은혜를 다시 조건과 자격으로 만들어 버린다.
히브리서 11장은 성경이 믿음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 즉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믿음은 어떻게 우리 것이 되는가?'를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믿음의 시작은 이렇다.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선택을 실패하는 바람에 하나님이 새롭게 도입한 방법이 믿음이다. 이는 기적이며 은혜이다.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죄를 선택하여 실패한 필멸의 존재들을 하나님이 구원하기 위하여 새롭게 도입하신 방법이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은 부활이자 구원이며 재창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부활과 구원과 재창조가 믿음이라는 단어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믿음이란 그릇된 선택을 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방법을 일컫는데 , ■구원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우리가 아담처럼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수단과 방법이며, 재창조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이다.
(*히브리서 p. 270-271)
■믿음에는 은혜와 책임이 그 안에 함께 맞물려 있는데, 믿음의 근거와 시작은 은혜이고, 믿음의 목적과 내용은 책임이다.
우리는 기독교가 은혜와 사랑과 믿음의 종교라고 이야기하지만, 믿음에 대한 이해는 세상이 정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예수'라고 대답할 줄은 안다. 예수, 믿음, 구원 중 예수가 가장 중요한데, 예수가 주인공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기독교 신앙을 평가할 때는 매사에 믿음이 등장한다. '난 믿음이 없어 내 믿음은 연약해.' 이렇게 믿음이 조건이나 자격으로 작용한다.
예수는 조건과 자격을 깨려고 들어오셨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그 은혜를 다시 조건과 자격으로 만들어 버린다.
히브리서 11장은 성경이 믿음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 즉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믿음은 어떻게 우리 것이 되는가?'를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믿음의 시작은 이렇다.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선택을 실패하는 바람에 하나님이 새롭게 도입한 방법이 믿음이다. 이는 기적이며 은혜이다.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죄를 선택하여 실패한 필멸의 존재들을 하나님이 구원하기 위하여 새롭게 도입하신 방법이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은 부활이자 구원이며 재창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부활과 구원과 재창조가 믿음이라는 단어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믿음이란 그릇된 선택을 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방법을 일컫는데 , ■구원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우리가 아담처럼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수단과 방법이며, 재창조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이다.
(*히브리서 p. 270-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