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신앙생활이란, 이 세상의 가치가 전부가 아니라, 거룩하고 영적인 차원에서의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을 깨우치는 방법으로 오는 거다. 내가 가졌던 가치체계가 뒤집어지는 것으로 만나는 거다

nazunzaro 2021. 1. 5. 20:43
(*빼앗수없는기쁨 06)

I.
우리 신앙의 두 기둥으로 삼아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 또 하나는 우리가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는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다는 것.

신앙의 최고 핵심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이 곧 우리도 다시 산다는 것에 대한 증거요,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 시키셨으니 우리도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요,

■죽음으로 끝나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새 나라, 새 땅, 새 하늘이 있다는 새로운 우주관과 인생관을 가지는 새로운 가치 체계를 아는 자의 깨우침, 그 사실을 소유하고 있는 자의 자신감과 확신, 그 모든 계획과 모든 일에 대한 어떤 근거로서 이것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 해야 되는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에 있어서 왜 이것이 강조되어야 하느냐 하면
■이것만큼 사람의 생각과 생활을 바꿔놓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이란
우리 마음이 뜨거워서 우리가 어떻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뜨거움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뭔가 영원이라는 세계가 더 있으며,

■이 세상의 가치가 전부가 아니라 거룩하고 영적인 차원에서의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을 깨우치는 방법으로 오는 것이다. 뜨거움이 새로움의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 바울의 사건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을 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은, 빛을 보고 음성을 들은 것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핍박했던 예수가, 참람죄로 저주받아 죽어 무덤 속에 있으리라고 생각한 이가 살아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죽은 것을 내 눈으로 봤는데 살아 있다는 것은 누가 살리신 것인가?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며, 그 분께서 내 길을 막고 초자연적인 간섭을 하시는 것으로 보아 이분이 맞다면 내가 틀리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그가 갖고 있던 가치 체계가 뒤집어지는 것으로 만나는 것이지 빛을 봤다, 가슴이 뜨거워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신앙의 내용은 얼마나 뜨거웠느냐, 얼마나 놀라웠느냐, 감격했느냐, 행복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를 감격으로 몰고 갖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깨우침, 어떤 새로운 시각을 얻은 것이 여태까지 짓눌리면서 절망 가운데 있던 그를 새로운 소망 가운데로 인도했느냐 하는 것이지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의 신앙생활은 속에서 무엇이 올라오기를 기다려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직장생활을 함에 있어서 회사란 일을 해야 되는 곳이니까 가기 싫은 곳이다. 가고 싶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안가면 안 되는 곳으로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간다.

■신앙이란 그런 근거가 있어야 된다. 이것은 너무나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어야지, '마음이 뜨거워 지기 전에는 못 간다'라는 식이면 항상 매 맞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뺨을 때려서 뺨이 얼얼해야 한 발자국씩 가고 가슴을 때려서 뜨거워져야 가는 것은 곤란하다.

■사실에 인식해서 움직여야 된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보고 만지는 것, 세상에서 힘쓰는 가치가 영원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자들은 핑계대기를, 뜨거움을 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을 준비한다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일이기 때문에 알고는 있지만 실감이 안 나고 세상에 사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런 핑계를 대면서 사실은 놀고 있는 것이다. 회개해야 한다.

II.
베드로 설교의 두 기둥은 부활 생명어에 즉,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세계에 우리가 들어가 있다. 그 일이 시작되었다.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시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이시다. 그 분을 통해서만 그 나라에 간다. 성령 강림마저도 이 두 사건의 증인으로, 증거자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신앙의 두 기둥이어야 한다.

■우리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고 산다. 이 세상을 지나가는 것이다. "땅에 보물을 쌓지 않고 하늘에 쌓아야 된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나의 기쁨을 삼아야 한다. 모든 일에 주님을 의지한다. 세상을 의지하지 않는다. 주님께 피하며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리라!" 이것이 우리들의 《신앙의 최고 핵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 자녀를 그렇게 키우고, 우리 사회생활을 그렇게 하고, 우리의 모든 삶의 목표와 원리를 이 두 원리에 의해서 살아야 된다.
삶이 평온할수록 더욱 그렇게 살아먀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은총과 사랑과 허락하신 이 복된 약속들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