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어떤 수단,방법을 동원해 문제를푸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과 하나님을 혼돈하고있는 우리에게 '너를 향해 가지는 사랑,정성,의지,거룩함,신실함을 증명하여 너를 항복시키겠다'의 하나님!

nazunzaro 2020. 11. 9. 16:04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제 이스라엘의 수준과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 '금송아지 사건'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 내내 이 사건은 반복해서 역사 속에서 등장한다.
■'하나님이 누구시냐' 하는 문제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문제가 우리가 볼 때에는, '하나님이 누군지를 잘 알자,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자, 이스라엘의 실패를 우리는 반복하지 말자.' 라고 교훈 할 것 같은데, 성경 호세아서는 그렇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 하나님을 우상과 구별하지 못하는 것, 이게 가장 큰 문제인데, 
이 문제를, '너희가 이렇게 무지하냐?, 미련하냐?' 이렇게 꾸짖을 지언정 그 해결을, 그러니까 '너희는 정신을 차려라' 든가 '너희가 이것 저것을 해라' 라고 하지 않고,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 속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같은 내용의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호세아서 2장에 보는 바와 같이, 이 문제를 푸는 이는 하나님 당신이다.

호세아서 2:16-23에 보면 모든 문장마다, 약속마다, 선포마다, '내가', '내가', '내가'가 강조되고 있다. 얼핏 들으면 하나님이 다 하신다, 그런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하나님이 다 하신다 그런 뜻인데, 이는 책임과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 쪽이 다 책임진다, 하나님이 다 하신다, 그런 식의 '내가'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는 바알과 다른 나를 증명하는 일을 '내가' 하여, '내가' 바알과 어떻게 다른 지를 '내가' 알게 하겠다, '나'를 알게 하겠다, 그런 뜻이다.

■하나님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문제를 푸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과 하나님을 혼돈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네 남편이 되어 네 남편은 어떻게 다른가를 내가 보이겠다, 나를 보이겠다, 내가 그것을 이루어 내가 너를 향하여 가지는 사랑과 정성과 의지와 거룩함과 신실함을 증명하여 너를 항복시키겠다'의 '나'이다.
■그건 대단히 중요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우리는 신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주신' 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 빛 속에 들어가 보면, 예수 그리스도로 당신을 나타내시는, 당신을 설명하시는, 신약 백성의 계시의 빛 속을 들어가보면,
구약 속에서 이미 하나님이 장차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를 구원하실 그 하나님으로서, 구약 백성에게 이미 그 약속을 하고 있고, 그 설명, 그 설득을 하고 있는 하나님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