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신천지교 vs 기독교신앙

nazunzaro 2020. 3. 5. 17:55

신천지교 역시 다른 이단 종파들과 마찬가지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주장하고 있는 바, 이만희가 주장하는 바는 이천년 전부터 예수가 씨를 뿌려서 교회라는 밭이 되었는데, 지금 이 기존 교회 밭에는 참하나님이 없고 사단마귀가 주장하고 있다. 이제 기존 교회 밭에 뿌려진 씨가 곡식이 되어 추수 때가 되었는데, 추수꾼이 이를 추수하여 참 하나님이 계신 신천지(새하늘=新天=새목자=이만희 + 새땅=新地=새로 추수된 교인들)이 있는 신천지 12지파 교회로 추수되어 들어와야 한다. 그곳이 육체 영생을 하는, 사망 고통 눈물이 없는 선택받은 이들이 사는 천국이라고 주장한다.

 

신천지교를 시작한 이만희 역시 예외없이 상징성이 짙어서 자칫 신비주의화 추상화 관념화의 빌미가 되기 쉬운 요한계시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선택받은 십사만사천명?이 신천지교인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에 있는 기독교이단종파들은;

신천지(이만희), 하나님의 교회 (남자 하나님-안상홍. 여자하나님- 장길자), 통일교(문선명. 한학자), 대순진리회 (강증산), 구원파 (유병언), 기독교복음선교회(JMS정명석), 천부교(박태선), 만민교회(이재록)... 그리고 외국에서 들어온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창가학회.. 등이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자칫 기독교 신앙을 신비화, 기복화, 초자연화, 관념화, 추상화, 교조화, 계율화, 이념화 시키는 오류에 빠지기 쉬우며, 이단에 쉽게 빠지게 된다고 본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환경이나 여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격적 변화, 우리 자신의 사람 됨에 대한 문제이다.

즉, 우리 자신이 거룩한 존재로 변화되는, 인격적, 성품적 가치관적, 사람됨의 문제이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이 세상의 세속적 가치관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믿지 않는 이들 대부분이 지닌 이기적 본성과 세속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예수를 배우고 본받아 온유하고 겸손하게 남을 섬기고 용서하고 관용으로 대하고 반응하는 그런 성품, 인격의 존재가 되는 것을 뜻한다. 이게 거룩하다는 뜻이다.

 

기독교 신앙은 어떤 초자연적 추상적 관념적 세계에 들어가는게 아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 영생 천국이란 어떤 초자연적 초월의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영적인 초월적 공간을 말하는게 아니다. 신천지교가 말하는육체가 영생을 하며 고통과 눈물이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는 기독교에서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이란?

영원히 지속되는 변함없이 항상 귀하고 높고 귀한 가치를 뜻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이 물질중심의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천국이란?

그러한 구원, 그러한 영생으로 살아가는 삶의 상징적 표현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론이란?

심판과 종말이 있을 것으로 여기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세속적 물질주의 소원주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서(구원) 섬김과 용서 온유와 겸손의 영원한 가치가 있는 삶(영생)을 누리라(천국)는 뜻이다.

 

기독교는 말한다;

우리가 세속적 가치관에서 구원을 얻어 새로운 가치관으로, 영원한 가치가 있는 삶의 태도와 목표의식으로 살아가는, 진정 복되고 멋진 천국의 시민으로, 거룩한 자가 되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러한 우리의 삶이 이 사망이 힘을 쓰고 고통과 한계로 이루어진 현실 속을 살아가야만 한다고 성경은 얘기하는 거다.

 

고통이 없으면 영광이 없다. 책임이 없으면 자유가 없다.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환경 여건 정황은 사망이 힘을 쓰며 고통과 한계로 점철된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일하심이요 인간을 인도하시는 방법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 여건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남을 용서하며 온유와 겸손으로, 그런 태도와 분위기로, 마음가짐으로 반응하며 대하는, 존재하는, 반응하는 그런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 그런 거룩한 우리가 되어 현실 삶에 반응하고 존재하고 일하고 사는 것이 가장 큰 것임을 믿으며 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우리 자신의 사람됨이 거룩한 존재가 되어 가며, 그런 거룩한 삶을 누리는 일은, 어떤 교리를 신념으로 믿거나 숭배하거나 해서 단숨에 일거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교리 공부라든지 어떤 전도 활동이라든지 어떤 신앙 행위를 통하여 전격적으로 이르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말씀하신 제일 큰 계명 곧. '주 너의 하나님을 섬기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사랑 그 자체를 구하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정황 사건 일에 반응하는,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자세 분위기를 사랑으로 - 섬김, 용서, 온유, 겸손, 친절, 예의, 따뜻함으로 대하는 그런 사람,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고 명령하신 사랑이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 살아가는 모든 일에 붙어 다니는 우리의 반응, 자세, 태도, 분위기로 구현이 된다. 사랑의 구체적 모습은 섬김, 용서(관용,포용), 온유, 겸손, 친절, 따뜻함, 예의, 자비, 절제, 양보이다.

 

우리가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대하고 반응하는데 있어서, 이런 덕목들로 반응하고 대하는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대하고 반응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