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박영선 목사 / 소망회 / 잠언 2:1-12 / 2021.10.06]

nazunzaro 2021. 10. 23. 23:40

● 지금이다. 젊어서 지혜있는 자는 없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무엇을 해낸 업적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었느냐, 섬기는 자가 되는 것, 사랑하여 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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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목사 / 소망회 / 잠언 2:1-12 / 2021.10.06]

또 일주일이 지났다. 길고도 짧은 인생,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명예와 책임을 우리 어려운 시기에 더 깊게 생각하고 더 큰 은혜를 받는 그런 기회로 삼기로 한다.

잠언 2장;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8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9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11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잠언 2장 여기서도 시작은 "내 아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렇게 시작하므로 이것이 부모의 마음을 가진 어른이 자식들을 위하여 저들의 인생과 저들의 행복을 위하여 주는 교훈이요 간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지혜를 구해야 한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알게 되고 지혜를 얻게 된다" 이렇게 얘기한다.

■지혜란 결국 가치와 목표와 내용과 진정한 위대함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런데 잠언에서는 의인화 되어서 나타난다. 1장에서 "지혜가 거리에서 부른다"라고 시작을 했다. 지혜는 하나님 속에만 있고, 예수 안에서 나타난 바 된 것이 지혜다.

그 지혜는 벌받을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과, 우리의 패역함과 거역을 뒤집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은혜를 나타낸다.
그 지혜란 어떤 약삭빠른 재치나 기회를 엿보는 어떤 모사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 잠언 2장 표현에 따르면 "은을 구하는 것같이 보배를 찾는 것같이 있는 힘을 다해서 지혜를 구하라",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여라" 이렇게 되어있다. 이건 매우 은유적 표현이고 매우 반어적 내용이다.

은을 구하듯이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렇게 찾으려면,
■은을 구하고 보배를 찾은 것으로 가지는 허탈함과 어떤 반전의 깨우침이 있어야 된다 그런 뜻이다.

우리는 세상적인 것을 먼저 구한다. 행복을 구하고 성공을 구한다. 이때 행복은 성경이 말하는 행복과는 다르다. 경쟁에서의 승리, 자존심의 보존,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권력을 가져야 되고 힘을 가져야 된다. 그런 차원에서 은을 찾고 보배를 찾는 일들이 모든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것이 인생을 규정 짓는다.

그러나 지금 잠언은 얘기하기를 ■"그것으로는 답을 얻지 못한다" 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런 우리가 구하는 세상적인 힘, 세상적인 가치에 붙들리는 그런 것이나 만들어 주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넘어서는 분이라고 얘기함으로써,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인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래야 비로소 인생을 알고 자신을 알게 된다는 깊은 내용이 이렇게 은유적으로 이 속에 감추어져 있다.

■은을 구하고 보배를 찾기 위하여 전 생애를 매진했지만, 결국 배신감, 허탈감, 낙심 밖에 남지 않는 인생에서, 그런 것들이 가장 큰 가치의 어떤 인생이 실패한 것이라 쓸데없는 것이고 헛된 것이었다고 깨닫는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럼 무엇이 진정한 행복이야? 무엇이 진정한 가치야?"라고 물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기 7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니~"이다.
이건 전부 도덕적 표현인데, 성경에서 도덕적 표현은 곧바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 믿음의 상태, 종교심의 진성성을 의미》한다.

결과를 얻기 위한 임시적 기웃거림이나 무엇을 얻으려는 얍쌉한 재치가 아니고, 온마음과 정성을 바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음을 묘사하고 있는 거다.

그러면 8절에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할 것이라"

9절에는,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선한 것은 착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착한 것은 해를 끼치지 않는 것에 불과한데, 여기서는 훨씬 큰 의미로 공의와 정의와 정직이다. 공의, 정의, 정직 같은 것은 이웃을 염두에 두고 사회를 염두에 둔다.

자기 자신 하나를 만족시키고 모든 사람을 제쳐놓고 최종 승자가 되려는 경쟁적 차원의 지위가 아니라, 모두를 위하여, 신약에서 잘 알듯이,

■섬기는 자가 되어지는 것, 사랑하여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고 일하시는 지혜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인생이다.

■공의와 정의와 정직이 선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세상에서 쓸모있는 힘, 폭력, 권력, 자존심이 깨져야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비로소 찾게 되는 진정한 인생과 인간의 가치와 정체성이다.​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어떻게 세상의 생존경쟁과 치열함과 그 폭력 속에서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있느냐? 지혜가 뭘 준다는 것이냐? 선한 길, 하나님의 뜻, 공의와 정의와 정직이 우리 맘에 들어오면, 그것이 우리 마음과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라고 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다' 이 말을 우리가 우리 인생에 실천할 수 있을까?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것이 더 크다. 주께 사랑을 받았으면 네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잠시 잠깐 친절하는 것과는 다르다.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상대가 내 사랑에 감격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랑을 하는 것이 복이다. 그것이 행복이고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그 아들을 보내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자기의 백성으로 요구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뜻이다.

■사랑은 물질로 표현하는 것이 유일할 수 없고 말로 다 때울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자리, 우리가 선 것, 현실에 보내진 우리의 자리이다.

■우리 나이는 지금 그것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이다. 거기 그 자리에서 광야에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듯이, 마른 하늘에서 메추라기가 떨어지고 만나가 내리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이제 이 말년에 이르러 샘이 솟고 만나가 거두어지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서, 원망과 보복과 분노 외에는 할 것이 없는 인생에서, 이제 감사와 찬송과 섬김과 사랑과 기쁨을 주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 없는 나이가 되자, 우리는 이 깨우침이 당연히 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 나이 들어서 후렴처럼 반복하는 원망, '내가 다시 젊음으로 돌아간다면..'이라는 말은 얼마나 어리석은 푸념인가?

■그때 가서 뭘 하겠다고? 힘을 써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고? 아니다. 지금이다. 지금. 젊어서 지혜 있는 자는 없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무엇을 해낸 업적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되었느냐》 하는 존재 자체의 깨우침과 성숙함과 하나님을 아는 자리에 이르는 그 나이이다.​

그러니 우리는 겁내지 말고 부족한 것 없는 하나님 자녀로서의 감사와 사랑을 마음껏 누리고 나누다가 주 앞에 서는 복된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월트 브루그만'의 기도문 중에 이런 기도가 있다;
"우리는 당신께서 주시는 계획을 세우는 낮과 새로운 꿈을 꾸는 밤을 누립니다.
우리의 낮과 밤이 되소서.
우리의 하늘과 땅이 되소서.
우리의 창공과 바다가 되소서.
그리하여 마지막 날 우리의 영원한 집이 되소서. 아멘"//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은 주를 위하여 할 일 보다
주를 믿고 주의 자녀가 된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만들기를 원하시는가에
초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섬길 수 있습니다.
양보할 수 있습니다.
싸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망하지 않으며
분노하지 않으며
보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이 시대를 위하여 이 사회를 위하여
우리 후손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며
이 땅에 정의와 정직이 시행되기를 구하겠습니다.
그 기도하는 복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