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소망회 / 2021.10.27]

nazunzaro 2021. 10. 27. 18:05

● '너는 그게 뭐냐? 그게 네 인생의 전부냐?'라는 질타, 자책 이것이 우리를 죄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첫 번째 동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의 영광 기쁨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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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회 / 2021.10.27.]

날이 자꾸 추워지고 있다. 오늘도 우리 잠언서를 가지고 《우리의 삶과 소망과 책임을》 주 앞에서 기쁘게 다시 한 번 돌아보기로 한다.

잠언 2장 13절부터 끝절까지 보겠다;
"13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14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15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17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18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20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22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잠언 2:13-22)

우리 지난 시간에 부모된 지혜, 부모된 완숙함,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을 믿으며, 그 안에서 복된 삶을 사는 인생인 것을 확인했다.
오늘 본문은 이런 길로 가지 못하는 자들은 악한 자다. 악한 자들은 패역을 말하는 자들이다. 패역하다는 것은 부패하고 거스르는 자들이다. 모든 일에 분노밖에는 만들 것이 없는 자들이다. 그 길은 구부러졌다고 한다. 온전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저 맴돌고 허우적거리고 그저 방황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다. 그래서 '이 지혜는 음녀에게서, 이방계집에서 너를 구원할 것이라' 한다.

■왜 이 악한 자의 길, 패역한 자의 길이 방탕한 여인으로 묘사됐을까?
그 길이 매우 유혹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가치있는 것은 땀흘리지 않고 집중하지 않고 끈기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가치 있는 것은 그렇다. 왜냐하면 가치 있는 것은 이런 노력과 이런 열심과 긴 인고 속에서 만들어지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도덕도 추상적인 것으로 그칠 수 없다. 그것은 우리를 우리의 현실 속에서 살아내게 하는 하나의 표시판이며 어떤 뿌리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혜를 얻으면 하나님의 정의 속에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와 복을 주시기를 원하며 우리의 영광과 우리의 자랑을 만들기 위하여 신실하신 보호자이시다.

그러나 여기 이제 악한 길은, 음녀가 꼬이는 길은, 유혹하는 길은 쉽게 쉽게 따라가는 길이다. 바람에 나는 재와 같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같이 심고 가꾸고 거두는 것이 없는, 열매가 있을 수 없는 길을 말한다.
그길은 그래서 사망의 길이다. 죽어버리는 것이 벌로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망의 길이라는 것은 당연히 생명과 다른 길이고 헛된 길이라는 뜻이다. 비참한 길이오, 못난 길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예를 들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성경의 권면들은 그것 자체가 얼마나 복된 권면인가 생각해 보라. 기쁨으로, 감사로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있는 것까지 다 털어먹으라고 유혹을 한다는 거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 어떤 건강, 재산, 그 희망 같은 것들을 다 팔아먹게 만든다.
이 유혹을 이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이 패역한 길과 이 유혹의 길을 벗어날 다른 방법이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그래서 인생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이런 헛된 길을 걷고 넘어지고 자책하고 하는 길들이 모두에게 경험되는데, 우리는 어쩌다가 여호와를 아는 길로 들어서게 됐을까?
물론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책감에서 시작한다. '이건 아니다. 어디를 가야 내가 진정한 의미 있는 삶을 살까?' 하는 이런 간절함이 마음에 없으면 이런 것은 얻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넘어지고 실패하고 스스로 후회 할 때 우리는 돌이켜야 한다. 그게 나쁜 길이니까 이건 하지 말자라는 것보다도 더 크게, 윤리와 도덕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거다.
■'너는 뭐냐? 너는 기껏 이거밖에 안 되냐?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느냐?' 이 소리가 우리에게 복음인 것이다. '내 말을 들으면 복을 주겠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러나 이 복음은 '내 말을 들으면' 이전에, ■'너는 그게 뭐냐? '그게 네 인생의 전부냐?'라는 질타, 자책 이것이 우리를 죄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첫 번째 동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꾸지람을 잘 들어야 되는 거다. 잘못을 회개하는 것으로 갚지 말고,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는 길로 돌아서 나오라는 것이다.
그 과거의 잘못을 지우는 것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바람에, 잘못을 지워버리고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나이들어서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후회하고 '이제 늙어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면 그게 큰 큰 오류다. 이 시험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증거하시겠다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우리 자식들에게 젊었을 때 못했던 따뜻한 말 하라. 더 깊게 안아주라.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저들이 이 유혹 많은 세상 속에서 당황하고 있다. 불안해 하고 있다.
■먼저 산 부모가 예수를 믿는 것으로, '지금 이렇게 흔들어 대는 정치 사회 경제 국방 모든 전방위적인 위기 속에서, 무엇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넉넉하실까?' '이렇게 이 위기에 담담하실까?' 그렇게 견주어 보게 해야 된다.

'젊어서도 고생이고 늙어서도 고생이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각각의 짐들 이 사회 우리 후손들 우리 자식들 우리 이웃들 그 다 우리에게는 그들을 비난하고 그들에게 훈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다른 길이고 다른 존재가 있고 다른 소망이 있다》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보여주어야 된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는 이렇게 나온다. 21절, 22절이 이렇다;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익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이것은 수명에 관한 얘기도 아니고 소유에 관한 얘기도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현실 세계에서 그 증거로 남아 있겠고,
■이 세상에 죄악된 거짓과 사망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는 이 현실 세계에 구체적인 가치와 존재로 있을 자리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 손주들이 '할머니가 있어서 행복했어. 할아버지가 있어서 너무나 좋았어.' 그렇게 말하게 하라. 그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따지고 보면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복이다.

■나눌 게 있고 보여줄 게 있는, 당연히 그래야 되는, 세상은 여기에 더할 것도 빼앗아 갈 것도 없는,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의 소망에 실재들이다.

우리의 삶과 살아있는 나날들이 그런 기회인 것을 기억해서 손해 보지 않는, 빼앗기지 않는, 놓치지 않는 복된 노년을 보내 주시기를 바란다.//

(기도)
우리의 삶이 이제 당연히 열매 맺는 시간에 와 있다.
■우리의 이웃들과 자식들 앞에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의 영광과 자랑을 기쁨》을 보여줄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 겉 사람은 후패하지만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다고 바울이 고백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우리라고 그렇게 또한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현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