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그 이후 (2005)_7. 화근(3) 아스돗]
어제의 승리와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승리를 기약하지 않는 것이 신앙생활의 싸움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시고, 내가 항복한 것들이 과거로 묻혀 버리고 훈장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어제의 승리는 어제고 오늘은 새 날이다. 오늘은 오늘로써 하나님 앞에 싸워야 할 신자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현실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조금 더 이해해 보아야 한다. 목표라는 것은 언제나 시각을 직선으로 놓고 보는 법이다. 그러나 거기에 도달하는 데는 현실이라는 감각이 필요하다.
■현실이라는 것은 신앙이 관념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몸뚱아리의 실증이라는 점을 말한다.
■현실이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눈에 보이게 펼쳐낼 수 있는 복된 무대이다.
그것이 타협의 조건이 되는가? 오늘 우리의 싸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이란 결단코 타협의 요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가 관악산이라고 하면 우리는 목표를 직선으로 본다. 다만 가야 되는 방향은 그것이 아니다. 막히면 돌아서라도 가고야 만다는 그 집념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 우리 안의 신앙이다.
막히면 돌아가고 더 크게 막히면 넘어가는 집요한 물의 성질같이 흐르고 흘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향하여 끊임없는 전진을 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한다.
거기에 부딪치는 어떤 방해물도 기어이 뚫어 가고 돌아가고 넘어가면서 가고 싶은 곳에 가고야 마는 현장의 모습들을 현실이라고 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 결혼문제 이런 것은 큰 복이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섬기는 것이 방해를 받는 데도 이것을 먼저 해야 되는 목표로 제시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정말 목숨을 건 신앙인들인가?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우리의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펼쳐진 현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조건이 아니다.
■이 현실이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 편인 것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무대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도가 그렇게 살기 위한 도움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못하니까 대치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찬송이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할 생활을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의 보상이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부부로 사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놓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을 위해서 사는 사람을 궁극적 목표를 놓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준 현실, 우리 손에 잡힌 내 인생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메시지로 어떻게 꺼낼 것인가를 훈련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이 성장하고 있느냐, 아니냐? 내가 출발한 것이냐, 다음 단계를 넘어가고 있지 못하고 있느냐,는 본인밖에 판단할 사람이 없다.
이 싸움에서 성장해야 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분명한 문턱은 이것이다;
■내가 건너야 할 부분에서 가지고 올 신앙의 어떤 형태가 있기 보다는, 내 마음에서 뽑아 버릴 것이 우선한다는 성서의 지적이 그것이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요구한 원칙대로 살겠다는 진실과, ■남아있는 세상을 향한 가치관을 뽑아 버려야 하는 싸움, 이것이 없는 한 어떤 신앙의 형태를 도입해도 그건 무의미한 일이며, 오히려 '혼난다'라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은 그것을 증명해내는 무대로 매우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믿음의 싸움, 그리고 그 승리의 개가를 ★《우리의 현실속에서 펼쳐 보이도록》 초청을 받은 특권을 가진 복된 자녀들이다.
어제의 승리와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승리를 기약하지 않는 것이 신앙생활의 싸움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시고, 내가 항복한 것들이 과거로 묻혀 버리고 훈장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어제의 승리는 어제고 오늘은 새 날이다. 오늘은 오늘로써 하나님 앞에 싸워야 할 신자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현실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조금 더 이해해 보아야 한다. 목표라는 것은 언제나 시각을 직선으로 놓고 보는 법이다. 그러나 거기에 도달하는 데는 현실이라는 감각이 필요하다.
■현실이라는 것은 신앙이 관념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몸뚱아리의 실증이라는 점을 말한다.
■현실이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눈에 보이게 펼쳐낼 수 있는 복된 무대이다.
그것이 타협의 조건이 되는가? 오늘 우리의 싸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이란 결단코 타협의 요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가 관악산이라고 하면 우리는 목표를 직선으로 본다. 다만 가야 되는 방향은 그것이 아니다. 막히면 돌아서라도 가고야 만다는 그 집념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 우리 안의 신앙이다.
막히면 돌아가고 더 크게 막히면 넘어가는 집요한 물의 성질같이 흐르고 흘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향하여 끊임없는 전진을 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한다.
거기에 부딪치는 어떤 방해물도 기어이 뚫어 가고 돌아가고 넘어가면서 가고 싶은 곳에 가고야 마는 현장의 모습들을 현실이라고 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 결혼문제 이런 것은 큰 복이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섬기는 것이 방해를 받는 데도 이것을 먼저 해야 되는 목표로 제시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정말 목숨을 건 신앙인들인가?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우리의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펼쳐진 현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조건이 아니다.
■이 현실이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 편인 것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무대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도가 그렇게 살기 위한 도움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못하니까 대치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찬송이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할 생활을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의 보상이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부부로 사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놓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을 위해서 사는 사람을 궁극적 목표를 놓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준 현실, 우리 손에 잡힌 내 인생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메시지로 어떻게 꺼낼 것인가를 훈련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이 성장하고 있느냐, 아니냐? 내가 출발한 것이냐, 다음 단계를 넘어가고 있지 못하고 있느냐,는 본인밖에 판단할 사람이 없다.
이 싸움에서 성장해야 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분명한 문턱은 이것이다;
■내가 건너야 할 부분에서 가지고 올 신앙의 어떤 형태가 있기 보다는, 내 마음에서 뽑아 버릴 것이 우선한다는 성서의 지적이 그것이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요구한 원칙대로 살겠다는 진실과, ■남아있는 세상을 향한 가치관을 뽑아 버려야 하는 싸움, 이것이 없는 한 어떤 신앙의 형태를 도입해도 그건 무의미한 일이며, 오히려 '혼난다'라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은 그것을 증명해내는 무대로 매우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믿음의 싸움, 그리고 그 승리의 개가를 ★《우리의 현실속에서 펼쳐 보이도록》 초청을 받은 특권을 가진 복된 자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