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의하면 진정한 권세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 십자가이다. 십자가가 모든 권세이다. 하늘과 땅의 권세이다.
세상의 권세인 재력, 지식, 건강, 물리력이 최고의 권세가 아니라, 십자가인 고난 속에서의 섬김과 용서의 인격이 이 우주의 권세이다.
십자가로 칭해지는 고난 속의 남 섬김과 관용이 모든 권세이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돈의 권세를 이기고 지위의 권세를 이기는 진정한 권세이다.
섬김과 용서가 죽음을 이긴다. 돈을 이긴다. 지위를 이긴다. 남을 섬기고 남을 용서하지 않는 인생은 그저 물리적으로 길게 연장이 될 뿐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인격적 존재가 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인격을 지닌 존재가 되라고 말하고 있다. 타인을 섬기고 용서(관용)하는 인격적 존재가 되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리의 남 섬기고 용서하는 인격은 각자 자신의 처한 현실 일상 속에서 이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분별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이다.
현실 속에서 마주치는 경우마다 그에 맞게, 즉 섬김과 용서로 대응하는 실제로써 인격이 형성된다.
오늘이라는 각자의 처하는 조건 속에서 부딪치는 도전에 각자가 인내와 감수로 남 섬김과 관용으로 응하는 방식으로 인격이 이루어 진다.
그러므로 신자의 우선적인 책임은 삶이다. 사는 것이다.
그런 매일의 일상 삶에서 처하는 조건과 환경과 상황 앞에서 섬김과 용서로 대응하며 사는 것이 신자의 우선적인 책임이다.
이같이 우리의 일상은 현실적인 도전 앞에서 자신이 달라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싸움이다.
성경이 요구하는 인격적 사람이 되어가는, 미숙한 습관의 본질이 달라질 때까지 하는 연습이다.
예수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게 된 것도 바로 십자가의 고난을, 즉 타인을 섬기고 용서하는 일을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그의 권세는 보호자와 능력자 차원에서가 아니라, 죽음과 부활 차원에서의 고난으로 말미암는 권세를 말한다.
이같이 섬김과 용서는 능력적 차원이나 외적조건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 권세이다
고난으로 말미암는 권세.
고난을 참고 견딤으로써 섬김과 용서, 온유와 겸손이 권세를, 권위의 영광까지 갖게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욕심과 늘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이것이 성도의 현실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매일의 일상을 통해 훈련해야 한다. 미숙한 우리 옛습관이 달라질 때까지.
우선 우리는 환경과 조건을 불평하는 데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하나의 사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 벌어지는 잡다한 일들을 어떤 안목으로 볼 것이며, 어떻게 하나님의 시각으로 분별할 것인지를 훈련해야 한다.
그중에는 권태도 있다. 그 무미건조한 일을 지켜내는 것은 대단한 실력이 필요하다.
그런 속에서 남을 섬기고 관용으로 대하는 건, 큰 인격석기쁨이고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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