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자로서 서있는 자리는 천만 천사가 환호하는 자리이다. 우리의 신분과 지위가 이러한데, 문제는 그런 자리에 있는 자답게 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 일상은, 이 영광을 알고 신자의 지위에 맞게 명예롭게 살아내느냐, 아니면 슬슬 도망가고 못나게 구느냐의 갈림길 앞에 서야 한다.
■신앙생활을 하는 자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자리이다. '그렇게 하는 건 부끄럽다. 다시는 안 한다' 이렇게 가야 한다. 부끄러운 일을 했으면 깨닫고 감수하는 자리로 오라는 거다.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엡 4: 29) 라는 에베소서의 말씀은,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이 죄라는 의미보다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은 예수 믿는 '네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라는 의미이다.
■위대한 기회가 우리 각각의 긴 인생에 주어져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껏 멋있게 굴 수 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라고 했는가? 악당이 악역을 하듯, 신자는 선한 역할을 해라, 멋있게 굴어라,이다.
더러운 말과 욕지거리와 저주에는 명예스러운 대목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해도 속 시원하지 않고 아무리 해도 영광스럽지 않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손해이다. 그렇지 않은가?
■멋있게 말하는 건 어렵다. 그런 실력이 없을 때는 가만 있는 게 최고이다.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거든 가만히 있으라. 그러다가 실력이 쌓이면 멋진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그 어려운 경우를, 확 폭발해 버리고 싶은 경우를 하나님이 우리로 걷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력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마음껏 길을 열어주고 계신다. 우리는 이미 주님과 함께 하늘 보좌에 가 있는 신분이며 그 신분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은 예수께서 이미 걸으신 길이다. 예수가 걸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길이 최선이라고, 이 길이 당신의 지혜요, 권능에서 나온 길이라고, 인간이 생각하는 어떤 대안도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확증해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 역사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이 훌륭해지는 일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실패이다. 그리고 낙심이다. 이것이 많은 일을 한다.
세상이 우리를 위협하고 유혹하는 근거는 세상법칙이다. 세상이 하는 이야기는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명예로올 게 하나도 없는 규칙이다. 이 원칙대로라면 우리는 더 비정해져야 하고 악해져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허망하게도 죽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겪는 모든 상황에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고, 타인에게 더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다.
■또한 세상이 내릴 수 없는 명령이 신자된 우리에게는 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굉장하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 이런 것들은 가치로서 탁월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유용하다.
누군가에게 보복하려면 내가 상대방 보다 더 악해져야 된다. 저주하고 폭력으로 보복하면 남는 것도 돌아올 것도 없다.
■그런데 지는 것 같은 이것,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보이시는 덕목과 영광과 우리에게 준 기회는 다르다.
세상의 일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를 볼 수 있고, 어느 것이 더 만족스러운 정체성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세상은 우리를 메마르게 하고 말라 죽인다.아무런 가치가 없게 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윤택하게 하며 풍성하게 하며 자랑스럽게 하신다,를 깨닫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여러 번 실패해도 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크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크고, 해가 나면 해가 나서 큰다.
생명이 없는 것은 비가 오면 비가 비가 와서 썩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흩날리고, 해가 나면 해가 나서 마른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만드셨는지 알아야만 우리는 성경이 하는 이 이야기, '너희가 선 곳은 거룩한 시온산이다.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천만 천사의 환호성 속에 함께 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증거 하는 자리이다'를 깨달을 수 있다.
골로새서 3:12의 권면은, 이것을 하면 복을 받고, 다른 길을 택하면 벌을 받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신자답게 살라는 권면이다;
'너희에게만 이 명예가 있다, 너희에게는 이것이 책임이고 자랑이다, 덕이 되는 말을 하고 멋진 말을 해라, 너희는 내 자녀다, 거룩한 내 백성들이다, 너희의 지위와 신분을 욕되게 하지 마라, 너 자신을 위하여 그렇게 하라' 이런 말씀이다.
예수께서 그가 흘린 피로 사망을 회복하셨다. 이 말은, 사망으로 사망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없이 했다는 뜻이다. 사망(=무가치함, 허무함)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 그 자녀가 되는 '영광과 자랑과 승리와 찬송'(영구히 지속되는 가치 진정한 기쁨과 보람)이 있을 뿐이다. 그걸 만들어 가는 길에 잠시 고난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이나 자랑이나 승리는 단지 어떤 개념이나 이상이나 소원이 아니라, 각각의 존재가 '실제로 그런 가치를 품은 존재'가 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고난이 있다.
신자된 우리만이 선한 말을 하며, 우리만이 은혜를 구하며, 우리만이 기도할 수 있으며, 우리만이 생명이 무엇인지, 빛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다.
■감동시키라는 것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세상은 못한다. '이 어둠에 잠긴 세상에 너는 빛이 되어라'. 이 인생을 살아내며 승리하기를 바란다.
(*참고: 다시보는 히브리서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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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앙인의 일상은, 신의 자녀답게 명예롭게 살아내느냐, 거기서 슬슬 도망가서 못나게 구느냐의 갈림길 앞에 서야 한다.
더러운 말을 하는건 우리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다.
더러운 말과 욕지거리와 저주에는 명예스러운 대목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해도 속 시원하지 않고 아무리 해도 영광스럽지 않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손해이다. 그렇지 않은가?
신자답게 멋있게 말하는 건 (= 격려해주고, 편들어주고, 따뜻하게 말하고, 정답을 말하지 않고, 잘난척 아는척 하지 않는것은) 어렵다.
그런 실력이 없을 때는 가만있는 게 최고이다.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거든 가만히 있으라.
그러다가 실력이 쌓이면 멋진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우리 일상은, 이 영광을 알고 신자의 지위에 맞게 명예롭게 살아내느냐, 아니면 슬슬 도망가고 못나게 구느냐의 갈림길 앞에 서야 한다.
■신앙생활을 하는 자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자리이다. '그렇게 하는 건 부끄럽다. 다시는 안 한다' 이렇게 가야 한다. 부끄러운 일을 했으면 깨닫고 감수하는 자리로 오라는 거다.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엡 4: 29) 라는 에베소서의 말씀은,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이 죄라는 의미보다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은 예수 믿는 '네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라는 의미이다.
■위대한 기회가 우리 각각의 긴 인생에 주어져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껏 멋있게 굴 수 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라고 했는가? 악당이 악역을 하듯, 신자는 선한 역할을 해라, 멋있게 굴어라,이다.
더러운 말과 욕지거리와 저주에는 명예스러운 대목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해도 속 시원하지 않고 아무리 해도 영광스럽지 않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손해이다. 그렇지 않은가?
■멋있게 말하는 건 어렵다. 그런 실력이 없을 때는 가만 있는 게 최고이다.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거든 가만히 있으라. 그러다가 실력이 쌓이면 멋진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그 어려운 경우를, 확 폭발해 버리고 싶은 경우를 하나님이 우리로 걷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력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마음껏 길을 열어주고 계신다. 우리는 이미 주님과 함께 하늘 보좌에 가 있는 신분이며 그 신분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은 예수께서 이미 걸으신 길이다. 예수가 걸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길이 최선이라고, 이 길이 당신의 지혜요, 권능에서 나온 길이라고, 인간이 생각하는 어떤 대안도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확증해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 역사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이 훌륭해지는 일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실패이다. 그리고 낙심이다. 이것이 많은 일을 한다.
세상이 우리를 위협하고 유혹하는 근거는 세상법칙이다. 세상이 하는 이야기는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명예로올 게 하나도 없는 규칙이다. 이 원칙대로라면 우리는 더 비정해져야 하고 악해져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허망하게도 죽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겪는 모든 상황에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고, 타인에게 더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다.
■또한 세상이 내릴 수 없는 명령이 신자된 우리에게는 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굉장하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 이런 것들은 가치로서 탁월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유용하다.
누군가에게 보복하려면 내가 상대방 보다 더 악해져야 된다. 저주하고 폭력으로 보복하면 남는 것도 돌아올 것도 없다.
■그런데 지는 것 같은 이것,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보이시는 덕목과 영광과 우리에게 준 기회는 다르다.
세상의 일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를 볼 수 있고, 어느 것이 더 만족스러운 정체성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세상은 우리를 메마르게 하고 말라 죽인다.아무런 가치가 없게 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윤택하게 하며 풍성하게 하며 자랑스럽게 하신다,를 깨닫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여러 번 실패해도 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크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크고, 해가 나면 해가 나서 큰다.
생명이 없는 것은 비가 오면 비가 비가 와서 썩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흩날리고, 해가 나면 해가 나서 마른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만드셨는지 알아야만 우리는 성경이 하는 이 이야기, '너희가 선 곳은 거룩한 시온산이다.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천만 천사의 환호성 속에 함께 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증거 하는 자리이다'를 깨달을 수 있다.
골로새서 3:12의 권면은, 이것을 하면 복을 받고, 다른 길을 택하면 벌을 받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신자답게 살라는 권면이다;
'너희에게만 이 명예가 있다, 너희에게는 이것이 책임이고 자랑이다, 덕이 되는 말을 하고 멋진 말을 해라, 너희는 내 자녀다, 거룩한 내 백성들이다, 너희의 지위와 신분을 욕되게 하지 마라, 너 자신을 위하여 그렇게 하라' 이런 말씀이다.
예수께서 그가 흘린 피로 사망을 회복하셨다. 이 말은, 사망으로 사망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없이 했다는 뜻이다. 사망(=무가치함, 허무함)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 그 자녀가 되는 '영광과 자랑과 승리와 찬송'(영구히 지속되는 가치 진정한 기쁨과 보람)이 있을 뿐이다. 그걸 만들어 가는 길에 잠시 고난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이나 자랑이나 승리는 단지 어떤 개념이나 이상이나 소원이 아니라, 각각의 존재가 '실제로 그런 가치를 품은 존재'가 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고난이 있다.
신자된 우리만이 선한 말을 하며, 우리만이 은혜를 구하며, 우리만이 기도할 수 있으며, 우리만이 생명이 무엇인지, 빛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다.
■감동시키라는 것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세상은 못한다. '이 어둠에 잠긴 세상에 너는 빛이 되어라'. 이 인생을 살아내며 승리하기를 바란다.
(*참고: 다시보는 히브리서 p.318)
*******
기독신앙인의 일상은, 신의 자녀답게 명예롭게 살아내느냐, 거기서 슬슬 도망가서 못나게 구느냐의 갈림길 앞에 서야 한다.
더러운 말을 하는건 우리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다.
더러운 말과 욕지거리와 저주에는 명예스러운 대목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해도 속 시원하지 않고 아무리 해도 영광스럽지 않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손해이다. 그렇지 않은가?
신자답게 멋있게 말하는 건 (= 격려해주고, 편들어주고, 따뜻하게 말하고, 정답을 말하지 않고, 잘난척 아는척 하지 않는것은) 어렵다.
그런 실력이 없을 때는 가만있는 게 최고이다.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거든 가만히 있으라.
그러다가 실력이 쌓이면 멋진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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