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라는 단어는 세상에서도 좋은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자칫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을 세상이 정의하는 대로 이해해 버릴 우려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는 신자들이 성령의 의도대로 믿음을 이해하기를 바라서 믿음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복된 약속을 품고 사는데 현실은 왜 어려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왜 기대처럼 살아지지 않는가에 대해 히브리서는 답을 준다. 이 답은 '견뎌라. 믿음을 가져라'라는 식의 위로로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현실이라는 과정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를 믿음이라는 단어로 설명해 나간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우리의 이해와 사뭇 다르다. 성경 이 믿음에 대해 설명하고자 할 때는 거의 언제나 아브라함을 언급한다. 아브라함이 등장한 것은,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릴 만한 증언을 위해 뿌리가 끊기고 기대가 꺾인 인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행위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근거가 열매를 맺은 것도 아니요 그가 가졌던 기대가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막막하기 짝이 없게 되었다.
■믿음은 막막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근거가 없고 우리로서는 기대도 할 수 없는 것이니 막막하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믿음은 막막한 것인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믿음의 조상으로 등장하는가?
믿음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인류가 자초한 실패와 절망을 뒤집기로 작정하여 새롭게 도입하신 은혜의 방편이다.
당시 모세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뭘 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마음껏 모세를 간섭하셔서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 당신의 뜻을 인류의 운명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기셨다. 그것이 믿음이다.
모든 것이 믿음이라는 말 속에 있는, ■하나님이 인류를 항하여 가지신신 적극적인 긍휼과 자비와 열심이다.
우리 모두가 놀라는 것은 무엇인가?
근거가 없고 기대가 꺾인 가운데에서 죽어나는 현실이다. '난 뭔가, 이게 뭔가' 하는 한숨 속에 '왜 나는 믿음이 이것밖에 안 될까?'가 들어 있다.
그렇지 않다. 충분이 있다. 우리에게 믿음이 충분이 있다는 말은 우리가 믿음을 생산에 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믿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신 시간은 없다.
(*다보히 17. p.256-267)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복된 약속을 품고 사는데 현실은 왜 어려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왜 기대처럼 살아지지 않는가에 대해 히브리서는 답을 준다. 이 답은 '견뎌라. 믿음을 가져라'라는 식의 위로로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현실이라는 과정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를 믿음이라는 단어로 설명해 나간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우리의 이해와 사뭇 다르다. 성경 이 믿음에 대해 설명하고자 할 때는 거의 언제나 아브라함을 언급한다. 아브라함이 등장한 것은,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릴 만한 증언을 위해 뿌리가 끊기고 기대가 꺾인 인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행위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근거가 열매를 맺은 것도 아니요 그가 가졌던 기대가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막막하기 짝이 없게 되었다.
■믿음은 막막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근거가 없고 우리로서는 기대도 할 수 없는 것이니 막막하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믿음은 막막한 것인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믿음의 조상으로 등장하는가?
믿음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인류가 자초한 실패와 절망을 뒤집기로 작정하여 새롭게 도입하신 은혜의 방편이다.
당시 모세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뭘 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마음껏 모세를 간섭하셔서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 당신의 뜻을 인류의 운명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기셨다. 그것이 믿음이다.
모든 것이 믿음이라는 말 속에 있는, ■하나님이 인류를 항하여 가지신신 적극적인 긍휼과 자비와 열심이다.
우리 모두가 놀라는 것은 무엇인가?
근거가 없고 기대가 꺾인 가운데에서 죽어나는 현실이다. '난 뭔가, 이게 뭔가' 하는 한숨 속에 '왜 나는 믿음이 이것밖에 안 될까?'가 들어 있다.
그렇지 않다. 충분이 있다. 우리에게 믿음이 충분이 있다는 말은 우리가 믿음을 생산에 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믿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신 시간은 없다.
(*다보히 17. p.256-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