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규칙, 원칙, 시간, 공간, 정황은 중요하다.그릇이 없이는 담을 수가 없는 것같이 그것이 있어야 된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내용은 아니다. 담아야 할 내용은 '사랑'이다.

nazunzaro 2020. 10. 16. 18:30

I.
우리가 잘 알다시피 지성은 멋진 것이지만, 지위는 대단한 권력이지만,
그걸 가져 보라. 
그것이 사람을 진실로 위대하게 만들지 않는다.

위대한 것은 다른 것이다.
야콥 부루크하르트의 [세계역사의 관찰] 거기에 나온다;
`위대한 것은 그 무엇이다` 거기까지 밖에 말을 못한다.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것, 세상은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것과 가치있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결부되지 않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이 얘기할 필요없이 인류 모두가 역사 속에서, 그리고 과거를 돌아볼 것 없이 자신의 존재 속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이기는 게 이기는 게 아니다.
어려울 땐 이 얘기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이기면 나아 보이는가? 아니다. 인간은 전혀 위대한 것을 만들 수 없다.

성경은 이렇게 얘기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광야에서 세 가지 시험을 당한다.

1) `이 돌들로 떡을 만들라`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를 않는다'
이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선언인가.
우리는 이렇게만 듣는다; `야, 떡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신앙이 더 중요한 거야.`
이렇게 우리는 이분법으로 갔다.
`넌 쳐먹기만 하고 봉사는 안하니?` 이런 데 인용을 한다.

`돌로 떡을 만들어라`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 떡이 필요없다가 아니라 그것 이상이다. 그것 때문에 왔다. 그것 이상이다'
고마운 말씀이다 아시겠는가?

2) `너 성전에서 뛰어 내려라. 천사를 보내어 받아줄거다`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나님은 해결사가 아니다. 너희들의 차원과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는 정도가 아니다.
너희들이 상상을 못하는 높고 깊고 귀하고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고마운 말씀이다.
`엄마 저것 사 줘`
 `내가 저기 고급빵집에 들어가서 쥬스 사줄께 길거리에 있는 거 사먹지마` 그러는 거다. 알아들으시겠는가?
`땅에 떨군 것 집어 먹지마` 그러는 것과 같다

3) `내게 절하면 다 주겠다`

'그래? 이 보이는 것의 싸움인 줄 알아? 거기에 뭘 담느냐의 싸움이야. 해 봐! 내가 걸어 들어갈께` 이렇게 됐다.
고린도전서 13장에 가면, 이 일들에 대한, 세번째 시험의 답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가 나온다. 사랑이다.
얼마나 기가 막힌가 보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환상, 그것이 인간에게 최고의 내용이 아니라 한다.
능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인간의 가치는 능력같은 것으로 쉽게 메울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열정, 열정이 인간의 영혼과 인격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인간은 그것보다 크다고 한다.
뭐라고 하는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라고 한다.
그걸 하러 오셨다


II.
율법이란 뭔가?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단단히 가르치셨다.
사랑이다.
사랑은?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입 벌리는 것 아니다. 그러는 게 사랑이 아니다.
위대해 지는 거다.
우리가 위대해 지는 것!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할 실력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사랑할 존재가 되어야 된다.

그러나 우린 뺏을려고만 한다. 이용하려고만 한다.
이해관계 외에 우리에게 더 뭐가 있는가? 대화를 나눠 보라.
제일 큰 실수가 뭐던가?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남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수 없는 자는 스스로가 인간이 아닌 것이다.

상대가 가치가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고린도전서 1장 4절; '사랑은 오래 참는다'.
이게 무슨 뜻이라고?
오랜 고통이다.

'가치없는 사람은 없다'고 성경은 얘기한다.
`그 사람 네 마음에 안드는 것, 그걸 존중해라`.
어떻게 할건가?
`존중해라! 하나님이 만들었다. 네가 내 앞에서 귀하듯이 그가 내 앞에서 귀하다. 너, 그에게 잘해라. 너, 멋있게 굴어라`

사랑이란 다르다.
자연주의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말하자면 모든 이런 자랑들 - 능력, 대의, 유용성, 윤리, 승복 이런 것들과 얼마나 다른가!
예수님이 그걸 증명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죽는다.
우리를 위해서 죽는다. 말로만 죽거나 각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가 증언하듯이, 피흘려 돌아가신다. 피흘려.
사람들은 말로만 아첨하면 이 말을 한다; `네가 나한테 밥 한번 산 적 있냐? 날 위해서 울어본 적 있냐? 
'난 널 위해서 피 흘렸다`그 말이다
피 흘려 죽으신다.

그러면 윤리니, 도덕이니, 노력이니 이런 건 왜 있는거냐?
그것이 있어야 이것이 구체화 된다. 우리가 인식하게 된다.

우리를 위하여 이 긴 길을 하나님이 열어놓고 기다리시고 만드신다.
그것이 역사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늘 오늘 밖에 살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
내일을 당겨 살 수가 없고 어제를 반복할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와 내일이 없으면 오늘이 없어진다.
오늘이 없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시간이 흘러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구체적으로 오늘이라는 국면을 가질 수 있다. 오늘!
어제 한 일이 오늘로 영향을 미치고, 오늘이 내일에게 결정타를 가할 거다. 그 오늘을 산다. 그 공간 속에 갇혀, 네가 아니고, 그도 아닌, 나로 산다.
나! 그래서 내 자리는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다.

규칙, 원칙, 시간, 공간, 정황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릇이 없이는 담을 수가 없는 것같이 그것이 있어야 된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내용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무대, 조건, 정황, 즉 컨텍스트가 없으면 막막하다. 구별이 안된다. 인식하고 정리하고 누적시킬 수가 없다.
 
III.
이 컨텍스트, 정황에 하나님이 담으시는 거다.
그 때 내몰린 자리, 그 때의 정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어디다 어떻게 묻을지, 그건 하나님 손에 있다. 난 오늘을 사는 거다.
내일? 내일은 아침에 하나님이 날 깨우면 살 것이요, 아니면 주 앞에 서리라` 이렇게 되는 거다. 결사각오와 다르다.

우린 그동안 이걸 잘 못 썼다. `나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자신있어` 이렇게 쓰는 바람에, 정작 가져야 할 텍스트를, 그 장렬함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물론 그 장렬함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걸로 더 내용을 채워야 된다.
금고를 열었더니 열리지 않는다면, 몽땅 쇠덩어리라고 하면, 그럼 되겠는가?
금고가 쇠로 된 건 단단하고 보호해야 되는 거라서 그렇지만, 안에 뭐가 들어 있을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인생이 우리가 가진 신앙적 단단함, 현실적 단단함이 다가 아니라,
그 단단함 속에 하나님이 무얼 담으시는가를 보라.
예수 안에 무얼 담으셨는가를 보라. 죽음을 반전시킬 수 있다. 뭐가 겁나는가?

우리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우리가 선택한 죄와 죄가 가지는 권력, 모든 인류의 사망이라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죄가 제일 큰 권력을 가진 것 같았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아니다. 하나님이 제일 크시다. 뒤집을 수 있다.
그럼 왜 이 고통스러운 일을 반복하시나?
`너희가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봐라`이다.
그 무서운 걸 왜 보게 하시나?
`그리하여 너희에게 준 자유의 진정한 가치와 긍정적 특권을 누려라! 너희가 누려라! 너희가 선택하여 네 것으로 가져라!`
그렇게 요구하신 거다.
죽어서 천국가기 전에 예수 믿거든 당장, 어느 부분에서든 달라야 된다 이거다.
`죽어도 돼!` 그것이 제일 컸다. `오늘 죽어도 돼`
그것은 좋다. 죽으면 쉽다. 은혜받고 다 죽으면 제일 쉽다. 그러나 죽는 것 말고, 살아 있으면 어떻게 할것인가?
사랑하라! 사랑을 받으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넉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