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알면 되는 게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거다. 죽음과 부활을, 고난 희생 성의를 살아 내는게 기독교다.

nazunzaro 2020. 9. 21. 06:57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 다음 어떻게 순서가 되야 된다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이다.

부활은 죽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이것이 그의 소원이 된다.
'기꺼이 죽음의 길을 가리라.'
이것이 신자의 인생이다.

부름 받아 천국가면 쉽다. 고통을 기준으로 하면 죽는 게 제일 쉽다. 그래서 자살들을 한다.
살아 고생을 해야 하는 거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이다. 그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을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길을 걷는 것인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소원이 된다;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의 죽으심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어찌하든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고 하노니~'

그 다음이 무시무시하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나 다 알았다 아니다. 이거 이렇게 알면 끝나는 게 아니라.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나 이제 다 알았어'가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살아내야 하는 거다. 알면 되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다.
올해 나 예순 여덟이다. 살아야 된다.
예순 여덟을 살고 예순 아홉을 살고, 일흔을 살고, 일흔 하나를 살고, 그 다음에 부르면 죽는 거다.
 
살아라. 하루를 살고 일년을 살아라.
우리에게 준 길을 가라.
그게 영광의 길인 줄 알아야 된다.
살아 내는 것. 
그것 아니고는 기독교를 설명할 길은 없다.

무흠하고 성령받아서 펄쩍펄쩍 뛰는 것 말고, 살아내라.
나는 예수께 잡힌 바 된 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의문의 도전을 남기라.
'저 사람들은 다르다, 도대체 왜 저 희생과 저 성의를 가지고 사는 걸까?'라고 묻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