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코로나 위기나 정치적 사회적 세계적 어떤 시험과 도전들을,
우리가 해결하고 안심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말하자면 성전에 가서 우리가 행할 일을 다하면 하나님이 보상해주는 방법으로 생각하거나,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 되는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얘기한다; 뭘 하라고?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지니라'이다.
이러한 팬데믹 위기와 정치 사회 경제적 어려운 도전의 상황에서도 우리의 할 일중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그 삶의 태도와 가치로 존재하고 살아내는 일이다. 오늘 하루만큼씩을.
주께서 코로나위기 속에 있는 내게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와서 나를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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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코로나위기나 정치적 사회적 세계적 어떤 시험과 도전들을 우리가 해결하고 안심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말하자면 성전에 가서 우리가 행할 일을 다하면 하나님이 보상해주는 방법으로 생각하거나,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 되는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얘기한다. 뭘 하라고?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지니라'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욕심, 우리의 비난, 우리 고통을 감수하신다.
우리의 병을 고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만, 그게 답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소망과 약속을 확인해 주셨다. 그것을 이루신 것은 그의 죽음이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그렇다.'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이것을 지극함과 어떤 도덕적 종교적 절절함으로 얼렁뚱땅 때우지 말고.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내가 너희들의 몰이해와 너희들의 성마른 소원을 뚫고, 하나님의 구원이 이런 폭력과 무지와 너희들의 조급함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것처럼, 너희의 생애 하루하루가 그 하루만큼씩 큰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네 욕심과 네 조급함을 내려놓고,
《내가 간 길을 기억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어떤 십자가가 될 것 같은가?
모두가 손가락질을 한. 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남은 고치고 살리면서, 너는 왜 죽느냐라는 손가락질을 감수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되는 것이다.
교회가 다 모여서 여의도에서 합심기도라도 하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육체적 어떤 답이 나오고, 세상을 놀래키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너희들이 안식일 하나 지키지 못하고 있다라는 지적인 것이다.
'너희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라. 그 다음은 내가 할 것이다. 너희는 나를 믿고 나를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를 보낸 줄을 아는 그 믿음으로 너희가 해결 못할, 너희가 이해 못할 하루를 살아내라. 내가 십자가를 져야 된다.
베드로가 뭐라 그랬다가 욕을 먹었나 기억해야 된다. '주여 이 일이 결단코 주께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억해야 된다.
이건 고함을 지른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확신과 가슴 뭉클한 감동이 필요한 게 아니라, 믿음이 인내를 가져야 된다. 충성을 가져야 된다.
세상은 모르는, 그러나 우리는 알게 된 《예수가 걸으신 길》을 우리가 걸으면,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같이 우리의 생애가 그 영광을 향하여 나아가고, 나아가고, 나아가고 그 결국에 이를 거라고, 우리가 믿고 있다고 우리가 우리에게 말하고,
우리가 우리의 생애에 그 길을 걷지 않는다면, 그러면 우리가 하는 말이나 우리의 삶은 다 거짓말이 되는 거다.
누가 알아주겠는가? 아무도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옆에 붙어있지 못했다.
박해를 즐거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진지하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이고 넘겨주신 하나님의 권능이고 지혜고 영광인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랑이, 하루의 기적이 우리의 삶이 되고 현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 앞에 부름을 받은 그날부터 영생의 삶을 살며, 영광의 삶을 살며, 권능의 생애에 들어섰다.
우리가 알지 못하면 어찌 증언할 수 있으며, 우리가 그 증언의 인생을 기쁨으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거기에 무슨 열매가 생기겠는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와 함께 일하심으로 세상 앞에 세우신 하나님의 약속과 영광을 위하여 충성하는 우리 되어,
모두가 절망하는 이 세상에서, 죽음이 전부라고 알고 있는 이 불쌍한 세상에서, 생명과 진리와 영광의 증인이 되는 그 복된 인생을 살아내어,
하나님 영광 받으시고, 하루하루가 그 복으로 우리를 채워야 한다.
우리가 해결하고 안심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말하자면 성전에 가서 우리가 행할 일을 다하면 하나님이 보상해주는 방법으로 생각하거나,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 되는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얘기한다; 뭘 하라고?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지니라'이다.
이러한 팬데믹 위기와 정치 사회 경제적 어려운 도전의 상황에서도 우리의 할 일중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그 삶의 태도와 가치로 존재하고 살아내는 일이다. 오늘 하루만큼씩을.
주께서 코로나위기 속에 있는 내게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와서 나를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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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코로나위기나 정치적 사회적 세계적 어떤 시험과 도전들을 우리가 해결하고 안심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말하자면 성전에 가서 우리가 행할 일을 다하면 하나님이 보상해주는 방법으로 생각하거나,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 되는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얘기한다. 뭘 하라고?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지니라'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욕심, 우리의 비난, 우리 고통을 감수하신다.
우리의 병을 고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만, 그게 답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소망과 약속을 확인해 주셨다. 그것을 이루신 것은 그의 죽음이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그렇다.'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이것을 지극함과 어떤 도덕적 종교적 절절함으로 얼렁뚱땅 때우지 말고.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내가 너희들의 몰이해와 너희들의 성마른 소원을 뚫고, 하나님의 구원이 이런 폭력과 무지와 너희들의 조급함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것처럼, 너희의 생애 하루하루가 그 하루만큼씩 큰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네 욕심과 네 조급함을 내려놓고,
《내가 간 길을 기억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어떤 십자가가 될 것 같은가?
모두가 손가락질을 한. 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남은 고치고 살리면서, 너는 왜 죽느냐라는 손가락질을 감수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되는 것이다.
교회가 다 모여서 여의도에서 합심기도라도 하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육체적 어떤 답이 나오고, 세상을 놀래키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너희들이 안식일 하나 지키지 못하고 있다라는 지적인 것이다.
'너희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라. 그 다음은 내가 할 것이다. 너희는 나를 믿고 나를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를 보낸 줄을 아는 그 믿음으로 너희가 해결 못할, 너희가 이해 못할 하루를 살아내라. 내가 십자가를 져야 된다.
베드로가 뭐라 그랬다가 욕을 먹었나 기억해야 된다. '주여 이 일이 결단코 주께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억해야 된다.
이건 고함을 지른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확신과 가슴 뭉클한 감동이 필요한 게 아니라, 믿음이 인내를 가져야 된다. 충성을 가져야 된다.
세상은 모르는, 그러나 우리는 알게 된 《예수가 걸으신 길》을 우리가 걸으면,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같이 우리의 생애가 그 영광을 향하여 나아가고, 나아가고, 나아가고 그 결국에 이를 거라고, 우리가 믿고 있다고 우리가 우리에게 말하고,
우리가 우리의 생애에 그 길을 걷지 않는다면, 그러면 우리가 하는 말이나 우리의 삶은 다 거짓말이 되는 거다.
누가 알아주겠는가? 아무도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옆에 붙어있지 못했다.
박해를 즐거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진지하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이고 넘겨주신 하나님의 권능이고 지혜고 영광인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랑이, 하루의 기적이 우리의 삶이 되고 현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 앞에 부름을 받은 그날부터 영생의 삶을 살며, 영광의 삶을 살며, 권능의 생애에 들어섰다.
우리가 알지 못하면 어찌 증언할 수 있으며, 우리가 그 증언의 인생을 기쁨으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거기에 무슨 열매가 생기겠는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와 함께 일하심으로 세상 앞에 세우신 하나님의 약속과 영광을 위하여 충성하는 우리 되어,
모두가 절망하는 이 세상에서, 죽음이 전부라고 알고 있는 이 불쌍한 세상에서, 생명과 진리와 영광의 증인이 되는 그 복된 인생을 살아내어,
하나님 영광 받으시고, 하루하루가 그 복으로 우리를 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