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코로나 위기로 인하여 다 혼란 속에 빠져있다. 이 코로나의 위력은 우리에게 아주 크게 이 질문을 일으켰다. 코로나가 오자, 군사력이 강한 것이 소용이 없고, 경제력이 강한 것이 소용이 없고, 공부 많이 한 것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그동안 나라가 튼튼해서 국방력을 가지고 경제력을 가지고 공부 잘 시키면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삶이 편안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 도전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겁을 주려고 하시는 것 아니다. 놀랍게도 이 일은 온 세상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을 위해서 하고 계신다
믿는 자들만 구별하여 데려가시려고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 하나님의 말을 반응하지 않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가슴을 열고 도전하시는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할래? 무얼 믿고 살래? 무슨 소망이 남아있어?'
라고 도전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이 우리가 가진 실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우리는 물론 이 재앙이 그 재앙을 받아야 하고 도전이 되고 위협이 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과 함께, 그렇지 않는 자들도 다 고난 속에 있어야 된다는 약간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
●그게 하박국이다. `하나님 이렇게 세상이 혼탁하고 이 민족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갈대아 족속을 일으켜서 너희 나라를 심판하겠다'.
그러니 하박국이 놀라서 외친다. '하나님,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이 진실한 신앙을 지키고 있지 않고 악행을 일삼는다고 해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의인들도 같이 고통을 당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셨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우리는 아마, 우리도 다 믿음 절반, 경제 절반, 건강 절반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쉽게 타협한다. 쉽게 타협하는 게 뭔가? '하나님 잘못하지 않겠습니다. 잘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것보다 더 크다. 더 깊이 생각하라는 거다.
우리를 지으시고 목적하시고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이 얼마나 깊고 놀라운 하나님의 진정성인가, 다시 생각해야 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어떤 고통, 어떤 불안, 어떤 불편함, 그런 것들이 뭔가 생각해 보라.
거기에 답이 세상에 있었는데, 세상에 없어졌다는 불편함 불만이라면,
우리는 예수로만 만족하겠다는, 기독교 역사 내내 우리에게까지 전승되어 내려온,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놓친 것이다.
피상적이고 쉽고 간단한 것으로 때우고,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것이다.
그 중요한 질문 앞에 우리가 섰다.
우리 자식들이 물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데 왜 교회도 못가? 왜 예배도 못 드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손이 그의 선조들에게 물었던 질문 중에 하나다.
`우리가 믿었던 하나님은 뭘 하고 있어서 우리가 여기에 포로가 되어 왔어?` 그 질문에 답해야 됐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우리 후손에게, 그리고 이 세상 앞에 답해야 한다.
*****
하나님은 우리를, 회개하면 답이 오는 그런 길이 아니고, 우리가 알고 있었던 쉽고 간단한 신앙의 세계에서 더 깊고 놀라운 자리로 부르신다.
하나님을 믿었더니 인생이 평탄해지고 형통했고 이런저런 성공이 있었다는 말로는 이젠 답이 되지 않는 자리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올 때는 다 공짜였는데, 가나안에는 가서 피 흘려 싸워야 했던 것을 저들이 거부했던 그 심약함과,
하나님이 진정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도 깊이 생각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인생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헛되지 않는 결론을 만들어내는 그런 귀한 기회와 시간이 되어야 한다.
(*ㅅㅁㅎ 200715)
다시 말하면 우리는 그동안 나라가 튼튼해서 국방력을 가지고 경제력을 가지고 공부 잘 시키면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삶이 편안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 도전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겁을 주려고 하시는 것 아니다. 놀랍게도 이 일은 온 세상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을 위해서 하고 계신다
믿는 자들만 구별하여 데려가시려고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 하나님의 말을 반응하지 않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가슴을 열고 도전하시는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할래? 무얼 믿고 살래? 무슨 소망이 남아있어?'
라고 도전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이 우리가 가진 실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우리는 물론 이 재앙이 그 재앙을 받아야 하고 도전이 되고 위협이 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과 함께, 그렇지 않는 자들도 다 고난 속에 있어야 된다는 약간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
●그게 하박국이다. `하나님 이렇게 세상이 혼탁하고 이 민족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갈대아 족속을 일으켜서 너희 나라를 심판하겠다'.
그러니 하박국이 놀라서 외친다. '하나님,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이 진실한 신앙을 지키고 있지 않고 악행을 일삼는다고 해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의인들도 같이 고통을 당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셨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우리는 아마, 우리도 다 믿음 절반, 경제 절반, 건강 절반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쉽게 타협한다. 쉽게 타협하는 게 뭔가? '하나님 잘못하지 않겠습니다. 잘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것보다 더 크다. 더 깊이 생각하라는 거다.
우리를 지으시고 목적하시고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이 얼마나 깊고 놀라운 하나님의 진정성인가, 다시 생각해야 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어떤 고통, 어떤 불안, 어떤 불편함, 그런 것들이 뭔가 생각해 보라.
거기에 답이 세상에 있었는데, 세상에 없어졌다는 불편함 불만이라면,
우리는 예수로만 만족하겠다는, 기독교 역사 내내 우리에게까지 전승되어 내려온,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놓친 것이다.
피상적이고 쉽고 간단한 것으로 때우고,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것이다.
그 중요한 질문 앞에 우리가 섰다.
우리 자식들이 물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데 왜 교회도 못가? 왜 예배도 못 드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손이 그의 선조들에게 물었던 질문 중에 하나다.
`우리가 믿었던 하나님은 뭘 하고 있어서 우리가 여기에 포로가 되어 왔어?` 그 질문에 답해야 됐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우리 후손에게, 그리고 이 세상 앞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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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회개하면 답이 오는 그런 길이 아니고, 우리가 알고 있었던 쉽고 간단한 신앙의 세계에서 더 깊고 놀라운 자리로 부르신다.
하나님을 믿었더니 인생이 평탄해지고 형통했고 이런저런 성공이 있었다는 말로는 이젠 답이 되지 않는 자리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올 때는 다 공짜였는데, 가나안에는 가서 피 흘려 싸워야 했던 것을 저들이 거부했던 그 심약함과,
하나님이 진정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도 깊이 생각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인생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헛되지 않는 결론을 만들어내는 그런 귀한 기회와 시간이 되어야 한다.
(*ㅅㅁㅎ 2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