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다시보는 고린도후서 강해 독후감 (01~29)

nazunzaro 2020. 1. 4. 06:11

01. 

우리의 인생 전체에 있어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몰아 닥치는 위협, 고난, 환란, 죽었다고 생각했던 경우들..

이런 것이 신자의 현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런 우리의 현실 속에 굉장한 걸 담으신다.

인생은 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이게 뭔가'라고 여기는 것으로 경험되며, 하나님은 거기에 보배를 생명을 담으신다.

 

따라서 우리가 매일 겪는 환란, 고난은 다만 고생이 아니라,

구원의 문을 넓히기 위하여, 그의 백성들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 재창조에 우리를 불러 함께 일하시는 동역의 기회라는 위로를 또한 받는다.

(2017.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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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배신하며 거짓말하며 고함지르며 어찌할줄 모르는 비명과 보복밖에 없는 이 세상 속에서, 이 현실의 정황 속에서,

예수께서 그리하신 것같이, 사도 바울이 그리한 것같이,

나도 그렇게 다 받아 뒤집어쓰고, 다 손해보고, 늘 지는 길로 가야 한다.

바로 이것이 신자의 존재이고, 신자로서 사는 인생의 신비이다.

 

아직은 이 다 받아 뒤집어쓰고, 다 손해보고, 늘 지는 삶이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에게서만 오는 그 깊은 영광과 기쁨을 맛보아 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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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나의 책임과 명예. 그것은,

내가 서 있으면 거기 예수님이 누구인가가 증언되고 있는 것이어야 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게 무엇인가가,

하나의 실존, 행동, 분별, 표정, 태도, 자세로 실체화 되어 있는 것이어야 된다.

나의 존재함으로, 내 행동으로, 언행으로, 표정으로, 태도로, 분별로, 자세로

하나님이, 예수님이 내 일상의 현장에서 실체화 되어야 한다..

 

내 존재, 내 일상은 그림도, 명언도, 관념도, 이미지도 아니라

'나'라고 하는 한 인격체가 호흡하며,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예수를 따라가는, 예수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더 크고 영원한 근거에 의하여 행동하는 증거를 보게 되는 것이어야 된다.

 

내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의 무대에서 나의 자리가 하나 비는 것이다.

예수께서 찾아오시고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고 보여야 할,

'빌립아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 말을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 한 개인이 가지는 책임이요 명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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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진리란 성경에서는 옳은 것이 아니고 은혜이다. 꼭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에서 언제나 진리는, 옳은 것이 아니고, 은혜, 관용, 용서이다. 잊지 말아야 된다.

 

정죄와 심판을 하지 마라. 그건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예수님 손에 미루어져 있다

그때까지는 우리가,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현실, 각각의 가정, 이웃, 연결된 동료, 교회에서,

어느 만큼 '용서'를 실천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억울해 하지 말고 기꺼이 감수하고 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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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사람이 위대해지고 훌륭해지면 기꺼이 사양하고 절제하고 책임지게 된다. 그건 사람들 인생에서 얼마든지 나오는 일이다.

'누구 잘못인지 따지자' 이것은 사실은 최악의 판정이다. 잘 한 사람이 상 받고, 못 한 사람이 벌 받자 이런거는.

 

사람들은 대부분, 틀려서 잘못하는 게 아니라,

옳은데 자기역할을 놓쳐서 옳은게 아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견해가 충돌했을 때,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각각이 무엇을 강조하는 자리에 있는 것일뿐.

 

그러므로 나는 상대방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기다려야 한다.

그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그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을 따뜻한 마음으로 봐야 한다.

 

주께서 자기가 구원하러 온 자들의 창에 찔려 죽고도 오히려 그들을 부활 생명으로 이끄는,

이 모순을, 이 전후의 말이 안 되는 역설을, 그 기적을,

이 따뜻한 눈으로 보고 기다려 주는 것으로,

내가 매일 만나는 한 생명, 한 인생, 한 존재에게,

세상은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와 기적이,

나의 반응과 나의 태도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아는 진지함이, 두려움이, 넉넉함이 나에게 있어야 한다

20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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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은혜란 무엇인가? 용서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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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한 구체적인 실존이, 그 경우에 그 말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세상은 거기가 절망이고, 세상은 거기가 끝이고, 그렇게 말하면 세상은 싸움밖에 안 나올 정황에서,

예수를 따르는 우리만이 화해를, 격려를, 칭찬을, 자랑을 얘기할 수 있다.

웃음을 잃은 세상에, 소망을 잃은 세상에, 위로를 잃은 세상에서

우리만이 소망이고 능력이고 기적이고 위로이고 회복이고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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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바로 그 방법, 왜곡 수치 고난을 홀딱 뒤집어 쓰고 이 답을 쓰는 것 -

격려 해야 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넘어진 이를 일으키는 것 - 이게 예수 믿는 것이다. 예수 믿는 최선이다

 

한 가정의, 직장의, 사회의 공동체가 되어,

실력없는 사람을 혈육으로, 운명으로, 목숨을 나눌 동료로 대하는 이 일에 대한,

움직임과 책임을 지지 않고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와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와 기쁨과 영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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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가 자꾸 오해되는데, 이 말은 이렇게 이해되어야 한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무슨 일이든 당할 수 있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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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우리의 결심, 각오, 의지가 우리를 승리케 하지 않는다.

고난과 환난을 겪는 가운데서, 불안과 의심 속에서 우리는 하루만큼씩 자라는 거다. 오늘, 하루만큼씩만.. 

오늘 한번 좋은 말하고, 좋은 얼굴을 하고, 따뜻한 눈빛을 하는 만큼씩 나의 신앙 인격이 자라는 거다.

여전한 불안 의심 고난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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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우리는 정직이라는 개념을 모른다.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이라고? 아니다. 사랑하는 것이다. 그게 정직이다.

정직이 무언가?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에게 주신 복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드러내는 것, 그게 정직이다.

 

12

 

내 현실의 고난 속에 영원한 것이 감추어져 있다.

일상의 삶에서나 내 개인적 조건에서는 분명히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만족할 이유가 없고, 내가 그걸 견뎌야 할 이유가 없는 그런 삶이다.

그런데 나로 하여금 바로 이런 삶을 살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당신의 내용과 목적을 나에게 드러내신다.

내게는 고난과 수치라는 것들이 고통으로 느껴지지만,

성경은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1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그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내게도 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담는 그릇이 있어야 넘쳐 난다. 구체화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의 어떤 신앙이나 나의 만족들은 추상화되면 그만이어서,

진심, 무슨 순종 이렇게 늘 단어화 되어 있다.

그 단어들이 가장 사소한 데서, 가장 작은 순종, 가장 작은 용서, 가장 작은 겸손을 못하고 있어서, 구체화 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실제에서 하나도 못담고 있어서 나는 충만일 수가 없다.

그 많은 기회에서도 한번의 반가움, 한번의 감사, 그 작은 예의, 가장 작은 표정을 못하고 있다는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 한 걸음 한 걸음들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커다랗게 얘기를 함으로써 변명을 하고, 외면을 하고, 비겁해지는 거다.

 

14

 

성경이 내게 요구하는, 말하는 것은, 내가 종족이 달라졌으니 이제 내가 해야 되는 것은, 명분이나 무슨 도덕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바로 내가 해이고, 비이고, 기쁨이고, 내가 영광이며, 내가 가지고 있고 내가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거다.

 

15

 

현실은 뭔가 우리는 잘 이해를 해야 한다.

현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일에 대하여, 그 길을 가지 못하게 위협하고 유혹하고 뒤로 미루는 핑계를 대는 그 시험에서, 하나님 편들기, 하나님 사람으로의 믿음을 지키는 싸움이다.

 

16

 

우리가 기독교 신앙에 의하여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소망,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이다.

우리는 이 신앙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해야 한다. 우리 얼굴에 기쁨을, 감사를 하고,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하루를 만족해야 한다

 

17

 

이게 신자의 현실이고 기회이다. 하루마다 이것 한 번은 잘 하라.

하나씩 하라. 뭐를 하라고?

표정을 좋게 지으라. 인사를 하라. 그러면 그다음 말이 쉽다. 안녕하세요 말하고 나면 그 다음은 쉬운데, 그걸 놓치면 째려 보게 된다. 그 다음은 민망하게 되어 악순환이 되고 만다.

내일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매일 한걸음씩 나가야 한다.

 

18

 

세상은 걱정거리가 생기면 할수 있는 것이 분노, 원망, 변명, 비겁한 것 밖에 없다. 선택할 것이 그것 밖에 없다.

예수 안에서만, 우리가 가지는 어떤 염려와 위협 앞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일의 궁극적인 소망, 즉 믿음을 가지게 되고, 온유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만 가지는 선택사항이다. 여기가 중요하게 다르다.

세상의 자랑은 누구를 잡아서 가지는 승리라면, 우리는 언제나 누구를 살려서 가지는 승리이다.

 

19

 

기독교는, 거짓말을 안하고 사기치지 않고 나쁜짓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큰 것이다. 영광되고, 명예롭고, 기쁘고, 섬기고, 주고, 열고 그러는 것이다

 

20

 

직장에 가서, 집에서, 누굴 만나서 한마디도 할 말이 없고, 누구한테 뭐라고 예수믿는다고 큰소리 칠 것도 없고 하는 그 곳에서, 우리가 부활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된다.

 

그들과 같은 눈높이, 같은 정도의 처지에 우리가 심겨야 된다. 거기서 신앙적으로 살아야 된다. 그들에게 보상을 받거나 그들로 결실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거기서 신앙인이어야 된다.

 

21

 

우리는 잘못을 지우기에 바쁘지, 잘하는 것 하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을 하나씩 잘 해야 한다. 하나씩만.

하나 잘 한 다음에 둘 하지, 하나도 없고 둘도 없고, 건너뛰기만 하면 안된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하나님이 아직 살려 두셨으니 내일을 희망을 갖고, 믿음을 갖고 기다리고, 준비하고,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낫게 해야 된다.

그래서 우리가 잠자리에 들 때, 감사와 찬송과 기쁨이 있어야 된다.

 

22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를 기준으로 해서, 세계관, 인생관, 가치, 의미,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변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걸어 가신 그 죽음의 길을 따라서, 새로운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이해, 눈을 가진 그런 새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가지는 어떤 행복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한 행복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베푸는 것이며 세상은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기독교이다, 신앙 생활이다, 우리의 인생이다.

 

23

 

예수를 믿으면? 약육강식의, 적자생존의, 세상의 가치가 힘을 갖고 있는 이 현실이, 그 보다 더 큰 세계관 속에 붙잡혀 있는 것을 보게 되는거다.

세상이 가진 최고의 권력인 죽음이 이제 우리에겐 적용이 되지 않는다. 예수 믿는 우리는 이제 져도 괜찮다, 죽어도 괜찮다. 이제 우리에겐 죽는게 끝이 아니다.

 

예수를 믿으면 도대체 무엇을 얻나?

인생이 헛되지 않다는걸 비로소 알게 되는거다. 힘들게 산 것, 억울했던 것이 전부 다 괜찮다.

남에게 지는 것. 져 주는 것, 그 마음에, 그 지위에, 그 실력에 오는 것,

그게 예수믿는 자의 현실이다. 위대한 현실이다.

 

결국 기독교 신앙의 최고의 싸움은 뭐냐?

그 권위가 <권력과 폭력>이 되느냐, <섬김>이 되느냐이다.

 

'내가 십자가를 져야 된다' 고 말하신 주께서 우리 모두의 생을 이 영광과 기쁨으로 부르신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굉장한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우리를 절망시킬 수 없고 방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명예롭고 지혜롭고 담대한 영광을 스스로 감당해야 된다.

 

24

 

나누어 주고, 상대를 위하여 죽는 길을 가는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는 제일 큰 일로, 영광으로 여긴다.

우리가 내 이웃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나를 다 내어주는 자리까지 우리를 데려오려는 그게 구원이다.

나를 위하여 다른 사람을 잡아야 하는 세상의 죄의 원리에서 우리를 꺼내어,

내가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격려가 되고, 양식이 되는 그런 일로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

그게 사랑이다. 그게 최고의 영광이요, 최고의 기쁨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목적하고 있으신가? 뭘 만들려고 하시는가? 하는 문제에서, 성경은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우리에게 하고 있다;

'너는 져라. 너는 죽으라'고

 

25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남을 위해 죽는 것,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권능이다. 그를 구주로 믿고 따르기로 하는 우리도 남들에 대하여 스스로 죽어야 한다

 

이 세상은 우리를 매일 속인다. 이 세상은 힘, 유능함, 지식,기술, 솔직함, 정의, 도덕이 최고의 가치이고 권세라고 우리를 속인다.

우리는 자신있고 싶고 큰소리 치고 싶어서, 은혜와 자랑과 영광을 놓치게 된다.

 

예수는 누군가? 십자가는 뭔가?

자기를 남에게 다 내어주는 거다. 상대방에게 져 주고, 죽어 주는 거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녀된 우리야말로 남에게 질 수 있고, 남을 용서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웃을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다. 그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나는 오늘 내 일상에서 상대에게 져 주고 있는가? 나를 다 내어주고 있는가?

 

26

 

완벽한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신앙생활은 마음이 진실되게 충만해져서는 행하지 못한다. 그걸 할 수 없을 때 해야 된다.

 

예의란 뭔가? 진심을 감추는 게 예의이다. 우리의 진심은 뭔가? '너 나쁜 놈이지?...'

이런 건 감추고, '좋은 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하는 거다. 그게 예의이다.

 

본심이 도달하지 못한 것을 억누르고 신앙적으로 성경이 요구하는 말을 꺼내놓는 것. 그게 신앙이다.

죽을 지경인 거다. 우리는 복음으로 우리를 굴복시켜야 한다.

 

우리는 흔히 진심, 본심, 정의, 팩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무례해지고 상처를 주게 된다.

그러나 인간 존재와 인생에서 진정으로 귀하고 중한 것은 온유하고 겸손한, 예의있는 태도이다.

예수가 직접 본을 자신의 생애로 보이신..

 

27

 

세상은 상상도 못한 내용을, 세상은 알지 못하는 것을, 용서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게 왜 그런 고난의, 보란 듯하지 않는, 이건 아닌 것같은 그런 길 속에 만들어지는지 배우라고 성경은 말한다.

 

어떻게 배우라고? 어떤 길을?

'저 사람은 다르다. 우리의 기준과 우리의 처세와, 우리가 생각하는 운명과 다른 길을 간다' 이렇게는 보여야 된다.

좀 이상하다 그래도 되고, 약간 미쳤나 보다 그래도 되지만, 달라야 된다.

 

인간의 가장 멋진 것은, 세상이 얘기하는 것들인 권력에 있지 않다.인간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내면의 빛은, 세상은 만들 수 없다. 세상이 하는 이해관계나 권력이나 계급으로 나뉘지 않고, 서로서로 양보하는 것이다.

 

그게 쉬울까?

쉬울 리가 없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법이다. 우린 그걸 재미 삼아야 된다. 공포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실제적이라는 거다. 애 기르는것, 벌어먹고 사는것, 사람 관계하는 것,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바로 그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단 그 진정성을 가지고, 나를 그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이걸 진지하게 해야 한다. 진지하게 온유하고, 진지하게 겸손하게 대해야 한다. 진지한 온유함과 진지한 겸손함으로, 남을 진지하게 섬기는 걸 우리는 재미 삼아야 한다.

그러니 어렵다. 눈물나고 땀난다. 한숨나고..

이 길은 진지한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이 복된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8

 

고난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깊이, 구체성에 관한 것이다.

고난은 굉장히 귀한 것이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다.

우리는 쉬운 길을 걸으면, 바보가 되고 우리의 인생이 낭비되고 소모될 뿐이다.

고난스러운 자기 인생을 견디는 일은 굉장한 은혜요 기적이며, 기회요 명예이며, 책임이요 축복이다.

 

강해 29

 

신앙생활이 고급화되면 두려움이나 시험이 없는 순결한 마음을 가진다고 얘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우리가 이땅에서는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것같이, 우리의 속에 사탄의 사자는, 세상의 폭력은, 공포로, 시험으로 들어와 있다.

 

신앙이 좋다는 건 이걸 이기는 거다. 이기는 가장 초보단계는, 그 말에 안넘어가고 버티는 거다.

신앙이 좋아서 시원해지기를 바라고, 이걸 이기기를 바라면, 시작을 못한다. 그렇게 안된다.

 

신앙의 시작은 미운 말, 거친 말, 분노의 말을 참는 것이다. 내가 정의롭고 진실을 알고 있고 진심이라는 생각에서, 이게 애국이고 이게 결국 이웃 사랑이라는 생각에서 거친 말, 미운 말, 분노의 말을 정당화, 합리화 시키고, 그것은 결국은 상대에게 아픔을, 상처를 주게 된다.

 

'사실은 내가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으로 시작하는 말은 다 안해야 된다. 정직을 떨 필요는 없다. 무례한 말과 거친말은 안해야 된다. 안하고 못하겠으면, 도망을 가야 된다. 현장에서 피하고, 우물에 가서 고함을 지르고 그리고 돌아와서 웃어야 된다. 그게 신앙이다.

 

우리가 거친 말을 하거나 미운 말을 하면 우리의 인격과 영혼에 금이 간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정당한 분노를 토했을 때에도 우리 내면의 어떤 본질들이 나쁜 물이 들고 우그러진다.

 

그러므로 비록 정당하고 진실이고 사실이고 옳은 말이라고 확신하고 있더라도, 분노, 거친 말, 미운 말, 무례한 말은 하지 않도록 어금니를 꽉 물고 입을 틀어막고 참아야 한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좋은 말을 하고 좋은 표정을 지어야 한다. 그리하면 어떤 장애, 어떤 함정을 벗어난 것같이 좋아진다. 그게 신앙이고 그게 신앙훈련이다.

2019.10.05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