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다시 보는 요한복음 강해 독후감 (01~12)

nazunzaro 2019. 12. 31. 21:32

01

우리가 예수를 믿지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체화되어 임무가 주어져 있고 기회가 주어져 있는 지의 사실을 모른다.

억지로 어떤 명분을 가지고 겸손해라 섬겨라 도와라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가장 큰 것이다 라는 거다.

겸손하고 섬기고 도와주는게 가장 귀하고 위대한 것이다.

 

예수를 믿는데 왜 우리에게 영생이, 기쁨이, 자랑이 없냐고?

있다. 다만,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닌가 보다`를 같이 가야 한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 실존 안에서, 하나님이 절정을 만드시는 날이 결국 온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라고 느끼는 그 앞 문맥 전후가 없으면 절정은 나오지 않는다. 명분만 나온다.

앞뒤 없는 옳은 소리, 명분, 그건 아무런 감동도, 우리 각자의 실존에 영향을 줄 수도 없고, 실력이 될 수도 없다.

'나는 아닌가벼..' 라고 생각되는 그걸 같이 안고 가는 거기에 기쁨이, 자랑이, 영광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벌써 몇 십 년 전에 불렀는데, 그 몇 십년 동안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을 산 것같지만, 그래서 영생도 구원도 자랑도 기쁨도 없고, '나는 아닌가 보다'를 겪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은 중요한 절정을 향하여 우리를 인도하셔서, 내가 여기 이 자리까지 있는 거다.

이런 기대,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살아내는, '나는 아닌가벼'를 같이 안고 살아가는, 오늘의 구체적 일상이 되어야 한다.

 

02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제부터 '죄를 지었느냐, 안지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명예냐, 명예를 외면하는 못남이냐'로 나뉜다.

 

우리가 살기로 하는 세상이 바뀐거다.

 

'악바리로 살아라. 양보할 것 없다. 한번에 끝나는 인생이다. 뭘 양보하냐? 양보하면 지는거다' 라는 이 세상의 위협과 공포에서,

그러나 `너는 져도 된다', '이런 세상에, 이런 기회에 너는 멋있게 굴어 봐라', '네 운명은 영생이고 영광이다'

'지금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의 위협이 아직도 판을 치는 이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을, 예수가 그리한 것처럼, 너 한번 해 봐라. 세상을 구하라는 말 아니다, 너가 영웅되라는 말 아니다, 너 해 봐라' 이다.

 

●뭘 하냐고? 새 사람, 곧 인간성의 명예와 영광을 증언하고 누리는 자가 되라는 거다.

 

그러나 명예롭고 영광된 인간으로의 창조목적 회복이란, 그걸 안다고 해서 당장 되는게 아니고,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연습은, 그 일은 모든 게 걱정스럽고, 걱정 안되는 게 없는 그 모든 조건 속에서 시도해야 하는거다.

 

우리는 사망이, 죄가, 악랄한 것이 가치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자로 서 있는다.

우리는 이걸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이다.

우리는 권력을 가지지 않는다. 웃을 수 있다. 용서할 수 있다. 반가워 할 수 있다. 피차 복종하라, 존중하라..

이게 우리 몫이다. 우리 자녀들 한테, 가까운 우리 이웃들 한테.

 

이걸 고난의 어려운 조건 속에서 해야한다. 매일 마음에 갈등하고, 준비하고, 더 많이 실패하고, 후회하는, 갈등 속에서 치루어야 하는 일들이다. 바로 그것들이 그 후에 일을 한다.

 

03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사랑과 관용의 새 사람이 된거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 영광의 증언이고,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이다

이제 우리는 죽음이 전부인 곳에서 사랑과 관용, 온유와 겸손으로 살아가는 새 세상으로 옮겨오는 거다

이 고난스러운 삶과 불만스런 현실이 우리에게 복이다

내 주위의 웬수가 하나님의 지혜이고 능력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2019.08.11 11:38

 

04

우리는 적극적인 것을 할 수가 없다. 적극적인 명분, 옳음, 정의, 진실, 팩트는 알고 있는데, 그 명분을 내가 사용하는 순간, 그건 언제나 공포가 되고 심판이 될 뿐이지, 사람을 살려내지를 못한다. 여기에 바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가 있다.

 

내가 옳은데, 명분이 있는데, 왜 그걸 쓰기만 하면 거기에는 보복이, 분노가, 비극밖에 생기지 않는가?

이게 놀랍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신념, 이상, 정의를 알고 있고 외우고 얘기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 편을 드는 자로서, 용서와 회복에 참여하는 자로서 온유함 겸손함으로 인내로 한 걸음 나가고, 한 동작 하고, 한 표정 짓는 것.

그게 신앙생활이요, 그 자체가 명예요 책임이요 영광이다.

2019.09.08 12:56

 

05

창조주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서, 그의 자녀된 우리는, 이 현실에, 이 광야에 들어 와 있다. 여기서 매 사건마다 우리 보고 '너, 어떻게 할래?' 라고 묻는 거다.

 

이 도전을 받고 있는 우리에게 성경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쪽이 너희 길이 아니다. 너희 길은 명예와 위대함, 선택과 책임, 자유와 자랑, 사랑과 기쁨 같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데 들어와 있다' 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각자 처한 현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적하시는 바를 이루어야 한다. 예수가 간 그, 자기를 부인하고 오래 참으며, 온유하고 겸손하고 관용하고 용서하는 그 책임과 자유의 영광되고 명예로운 길을, 우리도 따라서 각자 일상에서 용기있게 책임있게 선택하여야 한다

2019.09.26 06:58

 

06

이 살아낼 수밖에 없는, 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세상 사람들은 내세도 없고 말하자면 낙관할 아무 의지가 없는 상태에 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뭐라고 이해하고 뭐라고 답을 하는가?' 에 책임을 져야 한다.

'왜 내가 이 고생을 해야 되는가? 이게 뭔가?' 에 대하여 예수 믿는 사람은 이해와 책임과 기회라는 반응을 보여야 된다.

 

'지금 내가 사는 현실, 내가 붙들린 자리에서,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디로 가야 하고, 책임이 뭐고, 기회가 뭔지 안다' 라고 우리는 반응해야 한다. '여기선 어떻게 할래?' 라는 질문 앞에 서야 된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있어?'를 얘기하면 안된다. 말만 하는 자가 아니라, 그 장면에서, 그 경우와 조건 속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떻게 답하는가, 말하는가, 행동하는가?' 가 매일 우리에게 열려 있다. 그 도전이 매일의 삶 속에 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동일하게 겪는 공통된 현실 속에서, 답이, 반응이, 영광이 갈라서는 거다.

 

그 위대한 길을 살아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가 간 그 길을 우리도 살아내야 한다.

2019.09.28 23:14

 

07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에 보내시는가?

이 세상에 남겨 놓는다. 여기서 남들을 섬기라는 거다.

 

그런데 이 섬김은, 못 알아먹는 것들을, 말이 안되는 것들을, 쳐다보기도 싫은 것들을 감수하고, 참고, 내 자아를 죽이고 하지 않고서는, 이 섬김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섬김이란 나의 옳음, 진심, 진실함을 상대방에 대하여 죽이는 그 희생, 손해, 억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고통이다.

그걸 감수하고 상대방을 온유와 겸손과 예의로 대하는 영광되고 기쁜 행동이요 실력이다.

2019.10.09 05:32

 

08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께서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대화는 한 불쌍한 사람을 찾아간 정도가 아니라,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을 보내신 것이, 아버지가 보내신 일을 하는 것이 가지는 그 영광과 감격을 친히 확인하신다.

 

해방자 구세주는 힘과 권력을 갖고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위엄으로 힘으로 찾아 오시는게 아니라, 뜻밖에도 가장 깊음 속에 있는 갈등과 그 공포와 상처를 치유하시면서 들어오신다.

가장 비천한 사람에게 마저도, 스스로 낮아지시고, 무릎꿇으시고, 제자의 발을 씻기시고, 겸손히, 마치 우리가 주인인 것같이 오셔서 우리를 대접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 보고도 그렇게 살라고 하신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오히려 우리가 물 한 잔을 청해야 하는 그런 우리 각자의 지치고 힘든 현실 거기서, 우리는 다른 자로서, 넉넉하고 감사하고 베푸는 자로서 저들을 대하고 포용하고 치유하고 섬기라고 하신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유함이고 겸손함이다.

모든 어렵고 지친 정황에서도, 가장 비천한 사람에 대해서도 온유와 겸손으로 대하는.

2019.10.26 21:27

 

09

인자가 된 '성육신'이라는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마리아에서 그 우물가에 지쳐서 앉아 계시는 모습, 물 뜨러온 가장 비천한 지위에 있는 그 여인에게 물 한잔만 주십시오 구걸하는 것같이 앉아있는 하나님.. 이게 예수이고, 우리의 모습이어야 한다.

 

예수는 사사건건 시비만 걸린다. 그러나 그는 그 시비를 다 감수한다. 그는 겁주러 오지 않는다. 우리의 수준과 우리의 반론과 우리의 악의를 견딘다. 성육신이 하는 일은 사랑이 폭력을 이긴다는 걸 보여준다.. 이게 예수이고, 우리여야 한다.

 

우리를 만나면 밤낮 비난이나 하고 놀리기나 하는 세상 앞에서, 우리더러 이 아버지의 영광, 성육신의 영광을 살아보라는거다.

예수가 실제로 살아낸 그 방법, 그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복이 있을 수가 없다, 가치가 있을 수가 없다.

 

지지고 볶는 일상이, 귀신들린 자를 만나야 되고, 돌들로 치려는 자들을 만나야 되고, 풍랑을 만나야 되는, 그런 인생을 사는 거다. 바로거기서 모든 시비와 공포와 위협과 폭력을 사랑으로 이겨내라는 거다.

바로 거기서 빛을 발하라는 거다. 이 세상이 말하는 공포와 폭력으로 살지 않고, 내가 살기 위하여 누구를 죽일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방법으로, 내용으로, 인생으로 살라는 거다.

 

바로 오늘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빛을 발하라는 거다. 어떤 빛? 자기를 부인하는 빛. 온유함과 겸손함의 빛. 모든 걸 다 관용하고 감수하는 빛을 발하라. 여기가 예수님의 답이고 곧 우리의 답이다.

2019.11.08 09:16

 

10

우리가 세상 사람들 하고 똑같은 조건 속에서, 소원은 많으나 아무 것도 받지 못하는 상태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분노밖에 할 수 없는 그 형편에 우리도 똑같이 들어가서,

거기서 우리는 다르게 반응하는 것. 이것이 전도이다. 그리고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다.

 

무슨 방법을 얘기해서 소원을 풀어내는 게 아니라, 답이 없는 인생을 예수를 믿는다는 이름 때문에 다르게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게 전도이다.

 

그렇게 사는건 힘들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힘들어 한다.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라는 고백까지 하는 자리까지 간다.

그러나 예수가 그 길을 가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버지의 영광이라고 자신의 사역을 얘기하고, 십자가 길을 자신이 영광을 받는 일이라고 소개한다.

 

우리도 그렇게 우리 자신의 신앙과, 그렇게 우리 자신의 인생을 고백해야 마땅하다.

모든 것이 시원하고 모든 것의 보상을 받는 인생을 걷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왜 이런 고난들이 허락이 되는건가?

고난이 뭔가? 믿지 않는 자들의 도전을 받는 것이다. 그들과 다르게 사는 것으로 인한 불안 손해 소외 억울함의 도전..

 

저들의 그런 도전 앞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얻어, 저들과 달리 예수의 공생애를 살아야 한다.

예수의 공생애를, 자기를 부인하고 온유 겸손 용서로 사는 그의 공생애를, 그런 진리 영광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에게도 최고의 영광이다

2019.11.30 18:16

 

11

 

예수를 믿어 그를 믿기로 하는 우리는,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면, 없는 것같은 존재이다. 어리석은 자들이다. 대화가 안되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딱 그 자리에 서 있다. 우리는 이걸 보아야 한다

 

세상에서 부모 노릇, 어른 노릇을 해도 많은 걸 감수해야 되는 거다. 하나님은 우리 부모같이 그렇게 우실 수 있고, 질 수 있고, 죽으실 수 있다. 거기에 <예수를 믿는다는 말의 참뜻>이 있다.

 

예수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이름이다. 우리 보고 그런 인생을, 그런 예수의 공생애를 살라는거다.

우리가 예수의 인생을 살아내는 것은 다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이 위대하고 영광된 것이다.

그게 사람 사는 맛이 나게 하고, 만족과 찬송을 준다고 성경은 약속한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우리 인생이 이 위대한 길에 서 있는거다.

2019.12.18 06:00

 

12

 

영생이란, 거듭남이란, 구원이란,

목숨이 영원토록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듯이, 우리의 생각이 인생 속에서 경험과 우리의 성찰로 인하여 우리를 농익게 하듯이,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누적시킨다. 우리의 모든 과거가 우리에게 유효하다. 그것이 다만 눈물이었고 후회일 지라도, 그게 일을 한다.

 

예수는 이 일을 하러 오신거다.

우리로 하여금 그를 본받아 각자의 인생과 경험 속에서 자라나게 하는 일을 하러 오신거다.

이 땅에 오셔서 그는 우리에게 뭘 보이시나?

하나님이 새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녀들은, 신자들은,

어떤 존재이고 어떤 반응과 책임과 영광을 가지는가를,

이 땅에서 살아 내신 자신의 그 생애로 우리에게 직접 보이신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보고, 우리 각자의 고난스러운 인생 현실 속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을 감수하며 온유 겸손 용서로 반응하는 책임 명예 기쁨을 가지는 그런 가치관 태도를 지신 존재가 되어 그런 복된 인생을 살라는 거다.

 

이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내 살을 먹어라, 내 피를 마셔라'의 진정한 내용이다.

2019.12.22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