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이 보상없이 희생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자녀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억울해도 좋고, 자녀가 못되게 놀아도 좋고, 자녀가 섭섭해도 좋습니다.
뭐만 되면 되죠? 자녀가 잘되기만 하면 됩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마음이고, 우리를 불러 거기에 동참시키는 하나님의 특별한 복입니다.
자녀가 크면 알죠. '아, 우리 엄마가 그때 그랬구나, 우리 아버지가 그때 그랬구나, 참 힘들었셨겠구나..' 그런 고백들을 다 하게 되는데,
나중에 이렇게 후회하고 옛날에 좀 더 잘했을 걸, 이라는 생각이 꼭 우리로 하여금 `나이 먹어서는 더 잘해야 된다`라는 현실이 되게 해야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노릇 잘해야 되고, 나이 든 값을 해야 됩니다.
자식들한테 부모가 얼마나 힘든가 얘기는 안 하는 겁니다. 내일 밥 지을 쌀이 없어도 자식들한테는 그 말하지 않습니다.
자식들 밥 먹이고 재워놓고 밤에 어디를 가서 얻어오든 무슨 수를 쓰든, 아니면 아침에 일어나서 정말 방법이 없어서, `얘들아, 글쎄 밤에 도둑이 와서 쌀독 채 집어 갔단다` 그렇게 말하는 법이지, `내가 얼마나 애쓰고 노력했는데도 밥 먹을 것 없게 된 지 아냐? 너희들은 밤낮 때만 되면 밥만 달라냐?` 그러지 않는 겁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모범이 어디나 있죠. 뭐라고 하십니까?
'주여, 오늘 낙원에 이를 때에 저를 기억하소서'
'임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넌 네 잘못으로 죽는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그런 말하냐? 그렇게 대꾸 안하십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렇게 말할 수 있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와 보라. 네가 다른 사람은 죽은 사람은 살려냈는데 왜 너는 죽냐? 내려와 보라`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불쌍히 여겼다, 용서했다 이런 단어들 말고, 이 지위, 이 신분을 생각하라고요.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마음. 자식이 엄마 쌀 사려고 감추어놓은 돈 갖고 도망갔으면, 자식을 돈 갖고 간 것 때문에 찾아요?
가서 어디 사기나 당하고 허랑방탕하고 굶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찾죠. 그렇지 않나요?
그게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이 걸으신 길, 그게 우리가 믿는 이 복음.. 이게 왜 복음이겠어요?
하나님이 부모로서 우리를 대하신다, 우리를 그 사랑하는 자식으로 대하셔서 `우리를 위해서라면 하나님이 뭐든지 양보하실 수 있고, 질 수 있다`라고 말하신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거야'라는 식의 훈계는 사실 성경엔 그렇게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건 사람들이 하는 방법이고, 하나님은 애타 하시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잡아 오는 걸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십니다.
제자들이 물었죠. `주님 우리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잘못했을 때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많이 양보하시는 것은 하나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문제를 고치고, 채우고, 자라게 하고, 영광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일들을 모두 고치고 다듬고 새로 채우고 하는 일들로 인하여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는 것이죠.
《신자가 된다 그러면, 우리는 정말 세상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같이 우리는 빛입니다. 우리만이 소망이 되는 겁니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가졌길래 저렇게 넉넉할까? 저렇게 따뜻할까? 저렇게 모든 것을 견딜까? 보복하지 않고 분내지 않고 어떻게 어떻게 다 끌어안을 수 있을까?
신자로서 잘 해야 되는 것이, 나중에 나이가 붙게 되면 정말로 멋진 자리, 멋진 실력의 자리에 가게 된다고 믿고 살아내셔야 됩니다.
그렇게 신자된 우리는 하나의 기적으로, 증인으로 서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너무나 소중하죠. 우리를 보는 우리들 이웃 앞에 우리는 정말 귀한,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로 천국을 만들겠다고 우리를 세운 것입니다.》
(*일병목회강좌-고후24 중에서)
자녀들에게는 억울해도 좋고, 자녀가 못되게 놀아도 좋고, 자녀가 섭섭해도 좋습니다.
뭐만 되면 되죠? 자녀가 잘되기만 하면 됩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마음이고, 우리를 불러 거기에 동참시키는 하나님의 특별한 복입니다.
자녀가 크면 알죠. '아, 우리 엄마가 그때 그랬구나, 우리 아버지가 그때 그랬구나, 참 힘들었셨겠구나..' 그런 고백들을 다 하게 되는데,
나중에 이렇게 후회하고 옛날에 좀 더 잘했을 걸, 이라는 생각이 꼭 우리로 하여금 `나이 먹어서는 더 잘해야 된다`라는 현실이 되게 해야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노릇 잘해야 되고, 나이 든 값을 해야 됩니다.
자식들한테 부모가 얼마나 힘든가 얘기는 안 하는 겁니다. 내일 밥 지을 쌀이 없어도 자식들한테는 그 말하지 않습니다.
자식들 밥 먹이고 재워놓고 밤에 어디를 가서 얻어오든 무슨 수를 쓰든, 아니면 아침에 일어나서 정말 방법이 없어서, `얘들아, 글쎄 밤에 도둑이 와서 쌀독 채 집어 갔단다` 그렇게 말하는 법이지, `내가 얼마나 애쓰고 노력했는데도 밥 먹을 것 없게 된 지 아냐? 너희들은 밤낮 때만 되면 밥만 달라냐?` 그러지 않는 겁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모범이 어디나 있죠. 뭐라고 하십니까?
'주여, 오늘 낙원에 이를 때에 저를 기억하소서'
'임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넌 네 잘못으로 죽는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그런 말하냐? 그렇게 대꾸 안하십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렇게 말할 수 있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와 보라. 네가 다른 사람은 죽은 사람은 살려냈는데 왜 너는 죽냐? 내려와 보라`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불쌍히 여겼다, 용서했다 이런 단어들 말고, 이 지위, 이 신분을 생각하라고요.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마음. 자식이 엄마 쌀 사려고 감추어놓은 돈 갖고 도망갔으면, 자식을 돈 갖고 간 것 때문에 찾아요?
가서 어디 사기나 당하고 허랑방탕하고 굶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찾죠. 그렇지 않나요?
그게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이 걸으신 길, 그게 우리가 믿는 이 복음.. 이게 왜 복음이겠어요?
하나님이 부모로서 우리를 대하신다, 우리를 그 사랑하는 자식으로 대하셔서 `우리를 위해서라면 하나님이 뭐든지 양보하실 수 있고, 질 수 있다`라고 말하신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거야'라는 식의 훈계는 사실 성경엔 그렇게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건 사람들이 하는 방법이고, 하나님은 애타 하시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잡아 오는 걸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십니다.
제자들이 물었죠. `주님 우리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잘못했을 때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많이 양보하시는 것은 하나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문제를 고치고, 채우고, 자라게 하고, 영광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일들을 모두 고치고 다듬고 새로 채우고 하는 일들로 인하여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는 것이죠.
《신자가 된다 그러면, 우리는 정말 세상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같이 우리는 빛입니다. 우리만이 소망이 되는 겁니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가졌길래 저렇게 넉넉할까? 저렇게 따뜻할까? 저렇게 모든 것을 견딜까? 보복하지 않고 분내지 않고 어떻게 어떻게 다 끌어안을 수 있을까?
신자로서 잘 해야 되는 것이, 나중에 나이가 붙게 되면 정말로 멋진 자리, 멋진 실력의 자리에 가게 된다고 믿고 살아내셔야 됩니다.
그렇게 신자된 우리는 하나의 기적으로, 증인으로 서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너무나 소중하죠. 우리를 보는 우리들 이웃 앞에 우리는 정말 귀한,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로 천국을 만들겠다고 우리를 세운 것입니다.》
(*일병목회강좌-고후2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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