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애굽을 벗어나는 것이 해방의 내용이기보다, 해방은 자유와 승리의 자리에 가야 그게 해방이다.
구원은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소극적인 것이기보다, 무엇을 위하여 어디로의 명예와 영광의 자리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출애굽 사건에서의 여러 경우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원망과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우리가 보면 말도 안되는 이 넋두리들이, 원망과 비명들이 실상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거다.
애굽이라는 그 제국이 가지고 있는 폭력과 죽음이 전부인 세상에 하나님이 이렇게 문을 내시는 것이 출애굽 사건의 인류사적, 인류역사적 가치인 것이다.
그 구원은 다만 폭력과 압제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야 되는데,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듯이 이렇게 물질의 풍요와 어떤 후생의 만족과 소비와 끝없는 만족을 위한 욕심들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허락됨으로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그 통치를 실현하는, 그 통치를 살아내는 땅으로써 허락되는 것이다.
자유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 피조물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다. 자기 의사와 선택과 책임을 지는 것, 그 책임을 짐으로, 고통으로,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유는 책임을 진다는 것을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들 이해하는데,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명예인 것이다.
정의사회, 평등사회를 부르짖는 현대까지 우리가 왔는데, 실상 사회는 평등하거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 세상에서는 정의나 평등을 위해서 꼭 폭력으로 그 반대자를 쳐부수어야 되는 폭력에 불과하지만, 성경은 정의와 평화를 얘기할 때, 기꺼운 자발적인 희생을 선택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그리 하듯이,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우리의 신자된 자리를 이해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지만 우리를 섬겼고 폭력으로, 강요로 우리를 몰아내지 않았다,라는 데에 우리의 제일 큰 항복이 있는거다.
우리 인생에게 요구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다가 담아낸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있고, 문둥병자를 고칠 수 있고 오병이어의 기적과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그것을 우리에게 폭력으로 휘두르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기꺼이 당신이 희생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고, 예수님의 '기쁨'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명예'이다.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실패를 성경이 기록한다. '너희는 그들같이 굴지마라' 그럴 때, '순종하지 않으면 벌받는다'라는 차원에서 그 사건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로워라. 너희는 더 영광스러워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하나님이 인류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그 완성과 그 결국을 이루실거라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이다.
어떤 순종? 자유로운 순종.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의 생명이요, 양식이요, 명예요, 자랑이라고 아는 그것을 우리에게 심어주시는 것. 항복할 기회를 주시는 것.
이스라엘은 여기서 실패한다. 그러나 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 사실이 교훈이 된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한다. 지지 말라. 실패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더 많이 훈련받는 대로, 시험받는 대로, 도전받는 대로 이 말씀들이 가진 뜻,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이 영광과 명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그런 귀한 인생의 열매가 맺히는 노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나이들어 늙어 죽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된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의 평생 우리를 지키셨고 우리에게 늘 도전하셨다.
'인생이 뭐냐? 너는 뭐냐? 네 소원은 뭐냐? 뭐가 너희에게 큰 자랑이고 의미이고 가치이고 소원이냐?' 하는 이 싸움을 아직까지 하신다.
우리가 나이 들어 보니까, 우리 자식들 사랑하고 걱정하는 게 최고의 복이다.
하나님께서 그 복의 가장 중요한 열쇠, 자유로운, 기꺼이 드리는 우리의 헌신, 순종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라고,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으니,
우리의 말년이 감사로 충만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고 우리가 우리 자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그런 기적의 날들이 되어야 한다.
(*소망회 민수기 11)
구원은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소극적인 것이기보다, 무엇을 위하여 어디로의 명예와 영광의 자리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출애굽 사건에서의 여러 경우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원망과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우리가 보면 말도 안되는 이 넋두리들이, 원망과 비명들이 실상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거다.
애굽이라는 그 제국이 가지고 있는 폭력과 죽음이 전부인 세상에 하나님이 이렇게 문을 내시는 것이 출애굽 사건의 인류사적, 인류역사적 가치인 것이다.
그 구원은 다만 폭력과 압제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야 되는데,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듯이 이렇게 물질의 풍요와 어떤 후생의 만족과 소비와 끝없는 만족을 위한 욕심들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허락됨으로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그 통치를 실현하는, 그 통치를 살아내는 땅으로써 허락되는 것이다.
자유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 피조물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다. 자기 의사와 선택과 책임을 지는 것, 그 책임을 짐으로, 고통으로,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유는 책임을 진다는 것을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들 이해하는데,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명예인 것이다.
정의사회, 평등사회를 부르짖는 현대까지 우리가 왔는데, 실상 사회는 평등하거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 세상에서는 정의나 평등을 위해서 꼭 폭력으로 그 반대자를 쳐부수어야 되는 폭력에 불과하지만, 성경은 정의와 평화를 얘기할 때, 기꺼운 자발적인 희생을 선택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그리 하듯이,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우리의 신자된 자리를 이해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지만 우리를 섬겼고 폭력으로, 강요로 우리를 몰아내지 않았다,라는 데에 우리의 제일 큰 항복이 있는거다.
우리 인생에게 요구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다가 담아낸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있고, 문둥병자를 고칠 수 있고 오병이어의 기적과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그것을 우리에게 폭력으로 휘두르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기꺼이 당신이 희생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고, 예수님의 '기쁨'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명예'이다.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실패를 성경이 기록한다. '너희는 그들같이 굴지마라' 그럴 때, '순종하지 않으면 벌받는다'라는 차원에서 그 사건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로워라. 너희는 더 영광스러워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하나님이 인류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그 완성과 그 결국을 이루실거라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이다.
어떤 순종? 자유로운 순종.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의 생명이요, 양식이요, 명예요, 자랑이라고 아는 그것을 우리에게 심어주시는 것. 항복할 기회를 주시는 것.
이스라엘은 여기서 실패한다. 그러나 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 사실이 교훈이 된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한다. 지지 말라. 실패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더 많이 훈련받는 대로, 시험받는 대로, 도전받는 대로 이 말씀들이 가진 뜻,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이 영광과 명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그런 귀한 인생의 열매가 맺히는 노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나이들어 늙어 죽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된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의 평생 우리를 지키셨고 우리에게 늘 도전하셨다.
'인생이 뭐냐? 너는 뭐냐? 네 소원은 뭐냐? 뭐가 너희에게 큰 자랑이고 의미이고 가치이고 소원이냐?' 하는 이 싸움을 아직까지 하신다.
우리가 나이 들어 보니까, 우리 자식들 사랑하고 걱정하는 게 최고의 복이다.
하나님께서 그 복의 가장 중요한 열쇠, 자유로운, 기꺼이 드리는 우리의 헌신, 순종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라고,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으니,
우리의 말년이 감사로 충만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고 우리가 우리 자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그런 기적의 날들이 되어야 한다.
(*소망회 민수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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