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하루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내는, 진정한 하루를 살아내는 실력이 있어야 된다

nazunzaro 2020. 4. 7. 22:07

저들이 사도바울에게서 《약점과 부족함으로 지적한 것들이 복음 자체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사도방울에게 부족한 것으로 지적한 내용들은, 세상이 기대하는 영광, 세상이 알아주는 어떤 권력이다.

 

그에 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과 복을 주시기 위하여 허락하신 복음은, 그 복음 안에 폭력이나 보이는 겉치장이 없고, 《오히려 연약하고 감추어진 모습으로 주어졌다》.

진정한 복음의 사도는(진정한 기독 신앙인은) 《그 자신이 이런 감추어진 모습으로 복음을(십사가를) 스스로 짊어지고 다닐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진정한 신자들이 어떻게 그 어려움을 겪어 죽음에 놓여지고 그러면서 생명과 영광을 드러내는가》로 연결될 것이다.

 

이런 식의 이율배반적 대조는 고린도후서에 몇 번에 걸쳐서 반복된다.

그것은 우리가 신자의 인생을 살면서 내가 내 자신을 위하여 욕심을 내고 사는 것이 아니고, 또 폭력이나 못된 짓으로 누구를 손해보게 하는 방식으로 나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데도, 《왜 신자의 인생이 이렇게도 어려운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성경의 아주 모범적인 답이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해시키고 신자된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하루를 살 힘을 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등장하는

●하나님의 복음은 《그 모습이 연약한 모습으로,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권력을 내려놓은 섬기는 모습과 어린 양의 모습으로 찾아오고, 그래서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공포와 권력으로 조작하지 않으시고, 다정하게 그리고 우리 마음 깊은 영혼의 새로운 창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복음이고 하나님의 방법

》이고,

 

그래서 이 복음을 전하는 종들의 그런 모습, 또는 《세상사람들이 볼 때 연약한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나에게 복음을 맡긴 것같이, 그 복음을 담는 그릇을 질그릇같이, 깨진 바가지같이 그렇게 나를 요구하신 것을 나는 감출 필요없이 담대하게 너희 앞에 그대로 섰다》'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영광 또 우리 자신에게 주시고 싶어하는 영광은 말하자면 `살리는 것`이다》.

 

《영광이 다만 권력이냐? 영광이 다만 폭력이냐? 영광이란 인간에게 진정한 정체성을 주는 게 영광아니냐?》

 

우리가 율법을 은혜와 대비시킬 때, 은혜가 율법보다 크다고 하는 것은 율법은 결국 부정적인 역할 밖에 하지못하기 때문이다. 이 `돌에 새긴 율법`이라고 되어있는데,

율법을 돌에 새겨 놓았다는 것은 율법 자신이 의지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명분에 불과하다. 규칙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그것을 사용해야 할 자는 의지를 가진, 분별을 해야 되는, 책임져야 하는 인격이다. 그 인격이 변화되지 않는 한, 이런 조문들은 다 적극적인 것을 만들지 못하고 부정적인 결과 밖에 못 만든다.

 

율법주의의 무서움은 잘 하자는 뜻으로 사용했을지라도 결국 그것은 잘 할 방법이, 율법을 어기지 않는 가장 소극적인 데까지 밖에 우리를 인도하지 못한다. 거짓말하지 않는 것, 살인하지 않는 것,, 이게 다이다. 살리는 것은 율법에 들어있지 않다.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준 '우리의 영에 새김', 하나님의 새 언약, 성령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우리를 살렸고,

우리에게 맡겨진 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지금의 자리에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신비에 들어오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살리시는 일에 참여하는 그의 동역자로서, 우리의 삶과 우리의 존재가 살리는 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영이고, 살리는 성령에 동참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살린다`는 건 대단한 것이다. 사람을 치료하는 것같이, 죽을 자를 살려내는 것같이, 아니 성경적으로 얘기하면 시체를 살려내는 부활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건 너무나 놀라운 영광이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이렇게 사용해야 된다. 율법, 도덕, 양심의 가치는 그 그릇이다. 그것 자체가 내용일 수 없고 그것은 그릇이다. 그릇이 없으면 내용을 담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릇 자체가 내용을 만드는 건 아니다.

 

내용은 셩령이 오셔야 된다. 성령께서 진리와 생명으로 우리의 내용이 되사, 우리가 하나님의 재창조, 구원의 사역에 참여케 하시는 거다.

그릇이 깨져 있으면 그 내용을 보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율볍을, 양심을, 도덕을 인정한다. 그 가치는 얼마든지 인정하지만, 그것이 내용을 담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또는 대체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모세의 얼굴에 빛이 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이 거룩한 구원의 목적을 대면하며 나온 것 때문에 그 얼굴에 빛이 난 것이고, 그가 받아 온 《율법이 결국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와 생명을 담게 할 그릇으로써 주어졌다는 것을 신약성도들은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있는 자유, 그리고 영광으로 가는 자유. 여기서 자유는 우리에게 허락된 성숙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자유란 선택의 권리를 말한다.

《율법이 우리를 붙잡고 묶어놓는 것에 불과했다면, 가장 수동적이고 압박적인 수단에 불과했다면, 이제 자유는 담는 것, 그걸 넘치도록 채우는 것, 이런 것들이 다 자유에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의 영이 들어와 우리와 함께 일하심으로써, 우리가 《마음껏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우리의 것을 만드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영광은 끝이 없다. 《만물의 충만하신 하나님의 마음, 사랑의 성품이, 자기부인의 그릇이, 자라는 것보다 더 크게 마구 밀려옴으로써 무한하며 넘치며 너무나 커서》 누구와 시샘이나 경쟁에 쫓길 필요가 없다.

 

이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이 《우리 자신에게 무한하게 열매 맺을 수 있고 무성해질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우리는 비난이나 원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조건이나 현실 같은 것들은 이 영광을, 이 자유를 속박할 수가 없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는데, 사실 어려움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도 늘 있다.

어떤 어려움이 우리 안에 있느냐 하면,

《이 믿음 생활이 우리의 기대와 다른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

우리가 원하는 건강, 평안, 안심 같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를 곤란케 하고 갈등케 하고 쩔쩔매게 하는 것 때문에, 모두가 다 예수 믿은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나님은 왜 나에겐 박하실까?` 이런 식의 시험에 시달린다》.

 

●내가 뭘 잘못해서 내게 어려움이 생기고 고난이 오는게 아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피상적인 것들을 손을 놓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광은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고 양보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 내가 더 커야 되고 하나님의 구원에 더 성숙해져야 된다고 이렇게 마음을 다잡아야 된다.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도덕에 대한 표현이 아니고 시간에 대한 표현이다. 술에 취하면 시간을 헛되게 보낸다, 시간을 낭비한다 그런 뜻이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방탕했다라는 뜻은 인생을 낭비한 다라는 뜻이다. 나가서 창기들과 놀았다가 큰 죄이기 보다 더 크게 커야 하고 영광과 진정한 성숙을 이룰 시간을 낭비한 것을 말한다.

 

●성령충만은 물론 성령님께서 어느 순간에 단번에 그의 충만하신 어떤 임재를 우리에게 주실 수 있지만 그것 보다, 더 크고 더 보편적인 성령의 사역은,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복되게 《하루하루를 인도하시고 채우시고 우리에게 늘 도전을 하시는 분으로서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의 하루를 다만 편안한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안달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하루라는 시간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큰 기회라 여기고, 책임있게 이 신자의 인생을 내 현실에 적용해야 된다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라나겠다고 생각해야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각각의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는 그런 책임이 있고 승리가 있어야 된다

 

우리는 각각 자유와 기회와 은혜와 주의 권능 아래 인생을 살고 있다.

과거를 원망하거나 오늘에서 도망가는 미련한 짓에서 벗어나, 사도바울을 통하여 증언한 것처럼,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본 바와 같은 복음의 길은, 하나님 영광의 길은, 세상의 것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우리가 방해를 받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하루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내는, 진정한 하루를 살아내는 실력이 있어야 된다.

 

그래서 우리 입술에 찬송과 감사를 담아야 된다

 

(*일병목회강좌-고후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