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고 사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해는, 겁날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든 것은 있지만 (고통과 억울함과 불공평과 궁핍함과 실패와 무시당함 조롱당함도 있지만) 절망이나 원망이나 분노는 불평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 전체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신다는 약속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식이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주는 부모가 있겠느냐?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 이것이 기본적인 기독교 신앙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루가 편하기를 바라고 근심이 없어야 하나님이 내 편을 들고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난과 짐은 하나님이 우리를 기르시고 키우시는 진정한 복이다.
하나의 생명이 아무 고민 없이 길게 살다가 천국에 들어가 영원토록 존속하도록 부르시지 않았다.
천국이 대기실이나 거실 정도가 아니라 금면류관과 황금 길과 영생을 약속하고 있는데,
●거기서 살만한 준비된 내용과 결과를 (섬김과 관용의 우리 인격을, 온유와 겸손의 우리 성품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 인생이 있는 것이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이 철저히 침묵하고 외면했다고 하나님께 불평했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하나님이 되기를 중단한 적이 없고 네 생애 속에서 떠난 적이 없다'고 (철저한 침묵과 외면으로 모세를 새로운 온유와 겸손의 인격 성품으로 자라나게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모세가 마지막 40년을 광야에서 살 때, 하나님은 모세를 <겸손하고 온유하기가> 인류역사상 최고였다고 평가한다. <그 실력이 미디안 광야에서 만들어졌다>
(인간이 온유와 겸손의 존재, 성품, 인격이 되는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뜻이길래, 하나님이 무려 40년을 모세의 오해와 원망과 불평을 받으시면서도 철저한 침묵과 외면으로 일하셨겠는가!)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 수난과 고통과 오해와 배신과 십자가의 고통으로 당신의 실력을 증언하신 것 같이,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어 고통과 조롱과 죽음을 당하게 하면서도 그 본을 보여주셔야 할 정도로 우리가 겸손과 온유, 섬김과 용서의 인격이, 성품이, 존재가 되는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가장 상징적으로 십자가를 앞세우는 것 같이,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고 복 주시려는 지혜와 기적의 길이며,(가장 큰 진정한 복은 온유와 겸손의 존재, 섬김과 용서의 존재인데, 그게 고난을 통해 자라남으로,)
이 세상이 소원하는 평화와 행복과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섬김과 관용의 인격, 온유와 겸손의 성품이라는 진정 복되고 평화 행복 정의 사랑의 존재로 사람들을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는 커다란 두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걸려 있다. 정치 사회 문제에서 혼란스러운 현실을 살고 있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있기에, 죄와 사망과 공포가 으르렁거려도 하나님의 자녀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사회현실이 혼란스럽고 어렵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공포스럽고 불안해도, 그런 조건에서도 우리가 남을 섬김과 용서, 온유와 겸손의 인격과 성품으로 성숙되는 그 복된 영광과 생명의 삶을 방해할 수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누구인가? 위협과 시험과 유혹의 정체가 무엇인가? 내 말 안 들으면 죽는다가 아닌가?
우리는 죽음을 벗어난 존재이다. 예수 믿으면 (예수의 성품을 배우고 닮아간다면) 영생을 얻고 부활한다.(그게 곧 영생이고 부활의 인생이 된다)
우리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작은 일은 믿음으로 컨트롤 하면서도, 커다란 재앙 앞에서 불현듯 작은 이기심으로 돌아가서 안심을 구한다.
(우리는 작은 일은 온유와 겸손, 섬김과 용서로 대하면서도, 커다란 일, 사건 앞에서는 곧바로 이기적이 되고 안심을 구한다)
하나님이 역사에 도전하시고 근본을 흔드실 때, 사망밖에 없는 자들이 산속으로 도망가고 바위틈 속으로 도망가며 몸 둘 바를 모를 때, 우리만이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무엇이 더 겁이 나겠는가?
우리가 받은 교육이 무엇인가? 하나님 외에 답이 없다는 것이다. 잠시 가지는 평안이 있다면 숨 쉬게 하는 것이요, 재충전케 하여 다시 십자가의 길을 (남 섬김과 용서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한 것이다. 쉬운 것으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신앙을 대신하고 타협하는 바람에, 별 것 아닌 문제에도 골수가 병드는 심각한 낙심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마스크 하고 다녀야 한다. 기본자세이다. 겁이 나서 쓰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 문제는 물리적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물리적인 사항이 우리의 인격과 성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가진 신앙이 세상을 이기고 병을 이기고 공포와 죽음을 이긴다는 것 기억하고, 신앙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며 공포에 떠는 세상 앞에서 무얼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는지 웃을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의 섬김과 용서, 온유와 겸손이 생명 진리 영광 영생이며, 세상과 병과 공포와 죽음을 이긴다는 걸 기억하고, 공포에 떠는 세상 앞에서 우리는 섬김과 용서, 온유와 겸손의 존재로 담대하게 웃을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오늘 하루 우리를 만나는 사람 앞에 우리가 져야 하는 짐을 져야 한다.
만만치 않겠지만 우리 안에 생명과 진리가 (온유와 겸손, 섬김과 용서가) 채워져,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얼굴에서 광채와 생명과 소망을 보는 기적의 증인이 되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기도>
하나님은 창조주요 심판자요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주실 수 있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세상은 우리를 위협하고 방해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귀한 말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영생의 삶을 삽시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의 귀한 인생이 복 받기 원합니다”
●이런 말과 태도와 표정이 우리 인생의 자랑이고 영광이 되는 생애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부디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0.02.05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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