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현실에서 겪는 고난, 나의 무력함과 한계, 이유없는 억울함, 앞날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까지도 감수하고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기쁨 영광 명예 생명이 아닌가?

nazunzaro 2021. 5. 27. 13:29
인생을 살아보면 즐겁고 재미있는 건 어린시절에나 해당되는 말일 뿐이다. 
그후부터는 산다는게 사실 고난의 연속이다. 좋은것 치고 쉬운 건 하나도 없다. 
모든 좋다는 일들은 대부분이 다 어렵고, 수고롭고, 억울한 경우도 많다.
산다는건 한마디로 고난스럽다.

자신이 잘못해서 겪는 어려움과 고난도 있다. 
그러나 또한 자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겪는 어려움과 고난과 억울함도 많다.  

이러한 고난스러운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대개 그런 억울한 일이나, 문제거리들, 고난을 적극 해결하거나 혹은 피하거나 완화시켜야만 한다고 여긴다.
그래야만 편안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좀처럼 해결이 되지 않는 고난이나 어려움들이 많다는 거다.
어쩔 수 없이 고스란히 당하게 된다. 

게다가 더욱 힘든 건 내 잘못과는 무관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다. 당연히 불평불만이 생긴다. 
그 원인이 되는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탓하게 되기 쉽다. 

이 인생살이의 고난들이 종교를 믿으면 해결이 될까 싶어서 교회나 절에도 가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가 살면서 겪는 고난에 대하여 귀담아 들을만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성경은 우리의 일반적 기대와는 다르게 말하고 있다. 
창조주요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믿음으로 구하면 고난이 해결이 된다고 말하지를 않는다. 
실제에서도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도 실제에서는 대부분의 고난은 해결이 되지를 않는다. 

전혀 뜻밖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께 간절히 진정으로 염원해도 그걸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뭐하러 믿는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혹시 내 기도가, 믿음이, 헌신이, 성의가 부족해서일까? 
성령충만, 말씀충만 하지 않아서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있는 고난에 대해 다르게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설교책을 탐독하면서, 고난에 대한 성경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성경 히브리서는 당시 고난을 당하고 있는 히브리교인들에게 쓴 편지이다. 그 고난을 해결하거나 모면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는다. 그 고난을 모면하는 방법을 말하지도 않는다.
고난이란 무조건 피하거나 거부해야 하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거기에는 더 깊은 뜻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어려움, 수고로움, 억울함, 고난은, 그걸 겪음을 통해서 결국 우리가 보다 깊은 성품과 인격의 존재로 성숙되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살면서 겪는 고난을 이제부터는 다르게, 새롭게 이해를 해야 한다는 거다.
고난은 결국 우리를 유익하게 한다는 거다. 인격적 성품적으로 성숙되게 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게 고난이 단지 해결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고 영광이고 굉장한 거라고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하고 겪는 고난이 우리를 창조주가 원하시는 그 인격과 성품의 수준에 도달하도록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목적하시는 것은, 우리의 인격적 성품적 성숙이다. 
그것을 기독교 용어로 '구원의 완성' 또는 '성화'라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에게 진리를, 그 가치가 영원한 길을, 곧 기독교 용어로 영생의 길, 구원의 길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예수를 보고 배워서 우리들도 각자 자기를 부인하고 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온유와 겸손으로 섬기고 용서하는 그런 인격을 지닌 사람이 되어가라는 거다.
신의 가족과도 같은, 하나님의 자녀와도 같은 그런 성품, 인격의 사람으로 성숙이 되어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러한 우리의 인격적 성품적  변화, 성숙, 즉 성화는 무슨 치성이나 헌신을 드려서나 교회를 다닌다거나 기도를 한다거나 무슨 봉사를 함으로써 단번에 받아 가지는 그런게 아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 변화와 성숙은 우리 각자의 일상에서 그 고난을 겪음으로서 생각을 하게 되고 경험을 하게 됨으로서 한번씩 하루씩 만들어져 가는 일이라는 거다.

각자가 겪는 일상의 어려운 문제들로 인하여 우리는 실패를 하고 자책을 하고 좌절을 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한계와 무력함도 겪게 되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 못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겸손해진다는 거다.
타인에게 냉대와 따돌림을 당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할 줄을 알게 되고 온유해질 수가 있게 된다는 거다.

왜 창조주는 이러한 우리의 인격적 성품적 성숙을 바라고 목적하시는가? 
우리의 인격적 성숙, 성화, 그것만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최상의 복됨과 영광과 명예, 기쁨, 보람, 가치를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건 세상적 가치 권력 힘 재능은 도무지 주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듯이 세상적 가치인 권력이나 성공이 인간에게 진정한 복됨이나 영광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깨닫기 시작한다.

성경은 예수께서도 '고난으로 인하여 순종함을 배워 온전함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자 일상에서 겪는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고 인내로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보다 깊고 큰, 섬김과 용서와 온유와 겸손의 성품과 인격의 존재로 성숙되어,
그 복됨과 그 영광과 그 가치와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메시지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