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고단하고 어렵다. 원망이 늘 기쁨을 압도한다. 그러나 쉽게 살 생각이란 하지 말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적이다. 왜냐하면 내가 만들어져야 되기 때문이다

nazunzaro 2021. 4. 19. 05:55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려고 하는 일이,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과 평안이라는 이분법과 다르다` 하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을 해야 한다.

■우리는 고난을 잘못한 것이고 싫은 것이고 안 일어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은 '고난을 겪어야 된다'고 하시고, 

늘 얘기하는 히브리서 12장에 의하면, `징계는 모두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너희는 친자식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듯이,
여러분이 자식을 기르면 자식이 만족하는 걸 타협할 수가 없듯이,
여러분이 혼을 내고 매를 들어서라도 꼭 해야 되는 것, 그가 원하는 것보다 더 큰 것, 아이일 때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위하여 여러분들이 애를 다그쳐서 공부하게 하고, 연습하게 하고, 훈련받게 하는 것같이,
성경은 우리에게 인류 역사에 나타나는 이 이분법으로 말하면 `순종하면 될 것을 왜 불순종을 하는가?` 그게 여러분이 성경 읽으면서 제일 많이 하는 기가 막히는 반응이다.
`왜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가? 왜 이 꼴인가? 왜 열왕들은 이렇게 못난 짓을 하는가? 순종하면 되지 않나?`
순종했더니 평안하던가? 행복하던가? 우리들이 순종한 것도 아니다. 
우리들이 최악의 상태가 아니고, 벌 받지 않는 때는 어느 때인가 하면, 고민할 필요 없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잠깐 쉬는 시간 같은 거다.
■그래서 우리들이 평안하면 더 이상 생각도 안 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안 한다.
그러니 밖에 외출 나갔다 오신 어머니가 문 열고 들어오자마자 `숙제는 다했어? 방은 다 치웠어?`라고 묻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다시, 다시 우리를 밀어붙이신다.
그게 이스라엘 역사이고, 우리 모든 인류의 누구도 예외 없이 겪는 인생에서의 현실이다.

■여러분이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꾸 몰아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더 가자고 여러분을 몰아낸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이라 그랬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찬식에서 주의 찢긴 몸, 떡과 흘린 피로서의 잔을 받는데,
원래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과 의로움과 복 주심에 근거해서 얘기하자면, 잔은 기쁜 잔이다. 모든 잔치에서 잔은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내미는 어떤 기쁨의 음료수다.
그러니까 잔은 지금 예수님께는 고난이고 수치이고 말이 안되는 현실이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주시는 잔, 진노의 잔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을 만드는, 아버지의 기쁘신 뜻에 동참하는 영광과 명예와 기회로 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겟세마네 기도도 그렇다.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라고 하고, 아버지께서는 `계속 가자`라고 천사를 보내어 그 기도를 돕는다.
■기도를 도울지언정, 그 고통, 그 수치, 우리가 볼 때는 비극에 불과한 일을 면제해 주시지 않는다.

■쉽게 살 생각이란 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은 그걸 공포로 생각하고 그것은 못할 짓이라고 생각하는 게 불신앙이고,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이게 성경이 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어떤 소원, 기대, 진심이라는 추상명사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되는 거다.
■왜냐하면 내가 만들어져야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약속한 모든 행복, 기쁨, 찬송, 감사라는 것이 단어로 다만 소원으로 빌어지지 말고, 여러분이 실존에서 여러분의 실력에서, 여러분의 존재와 삶에서 여러분이 만들어내는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건 아무 소용이 없는 단어가 되는 거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의지와 그 끝없는 은혜와 그 약속의 현실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힘든다.
그것을 여러분 잘 감내하여야 된다. 울어도 분을 내어도 그 문제는 해결이 되지도 면제되지도 감소되지도 않는다. 잘 견뎌야 된다. 멋있게 굴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 아버지의 잔을 받는 것은 마치 독주를 마시는 것 같고 죽음을 마시는 것같이 `너 죽음을 삼켜라! 죽음을 먹어라!` 그렇게 우리에게 보인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보인다. `너 눈물을 먹어라! 너 내 비명을 먹어라!`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이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그의 권능이고 지혜다.

■이 고비를 못 넘어서면 밤낮 뭐만 하고 만다고? 여러분은 정답만 얘기하고 만다.
실력이 늘지를 않는다. 신자의 인생을 살아갈 실력이 안 생긴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스스로의 여러분 신앙의 현실에 대하여 말씀과 여러분을 비춰보고, 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어쨌든 발걸음을 떼어놓는, 이분법으로 돌아가지 않는, 누구를 비난하고 정답을 제시해서 자신의 책임을 변명하는 자리에서 돌이켜 일어나는, 오늘 이 말씀되기를 바란다.

신자된 우리는 세상과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수를 믿고 죽음을 이기는 부활과 영생과 기적과 하나님의 기쁨의 존재들이다.
■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고단하고 어렵다.원망이 늘 기쁨을 압도한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적이다. 이 위대함과 이 기적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출처: 예레미아 22강해. 2021.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