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게는 문제 해결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이 우리 소원과 어떻게 다른지 제발 알아 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을 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뜻은 하나님은 생명 만 붙어 있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이신 분'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의와 평강과 진리와 생명을 만드시고 유지하시고 풍성케 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며 이 일을 중단할 수 없는 분이라는 뜻이다.
"너희가 나를 배반하고 떠났으나 나는 너희의 이런 반응에도 내가 하나님인 것을 중단할 수 없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음미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예수 믿는 사람이 인생행로 속에서 신자들을 가장 많이 위협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신앙의 소원과 현실 간의 격차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야기하신다. "너희는 내 아들들이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나는 하나님이기를 중단할 수 없으며 너희를 만들어 복을 주기로 작정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희를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결국 복을 받을 것이다. 너는 결국 거룩 해질 것이다."
■우리는 죽고 싶어도 거룩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는 존재이다. 무시무시한 하나님이시다.
복된 약속이지만 앞에 나온 진노가 보복으로 끝나지 않듯이 오늘의 복된 약속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뜻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정신차리라는 뜻이다.
이사야 42 장의 무시무시한 말씀을 읽고 명심해야 한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것이다. 화내고 흔들어 항복을 받아내시지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반응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나아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어코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승리하기까지 결코 포기 하시지 않을 분이라는 뜻이다. 무시무시한 말이다.
우상이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여 파멸에 이르더라도 아무런 개입이나 간섭도 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포기하시지 않고 구경만 하시지 않고 두고 보시기만 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 진심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복하신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불렀노라. 내가 너희를 시내산에서 만났 노라"라는 말씀 속에서 크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크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내 아들을 보내었노라"라는 말씀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신앙은 예수가 누구신지를 얼마나 아느냐에 달려 있다.
'예수는 누구인가?
이는 하나님의 얼마나 무섭고 거룩한 뜻이며 무시무시한 사랑인가?
얼마나 놀라운 소망이기에 성경이 말하는대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리하여 우리가 얼마나 조심해야 하며 애써야 하는 일인가?'
를 생각해야 신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더 큰 힘과 더 큰 사랑과 더 큰 능력에 붙잡힌 존재이다.
이 사실을 아는 깨달음과 거기서 얻는 운명적 승리와 도망갈 수 없는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삶에는 많은 문제가 가득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신경 쓰고 집중하고 우리 자신을 붙들어 매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이 바꿀 수 없고 타협할 수 없으며 취소할 수 없는 우리의 신분이다.
■이 사실을 알고 신자 된 우리의 현실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목 놓아 울고 억울해하고 분통이 터지는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고 위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눈물을 닦고 입을 닫고 눈을 들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시고 찾아오시고 증거하시고 허락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호세야 설교 p.8~41)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이 우리 소원과 어떻게 다른지 제발 알아 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을 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뜻은 하나님은 생명 만 붙어 있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이신 분'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의와 평강과 진리와 생명을 만드시고 유지하시고 풍성케 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며 이 일을 중단할 수 없는 분이라는 뜻이다.
"너희가 나를 배반하고 떠났으나 나는 너희의 이런 반응에도 내가 하나님인 것을 중단할 수 없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음미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예수 믿는 사람이 인생행로 속에서 신자들을 가장 많이 위협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신앙의 소원과 현실 간의 격차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야기하신다. "너희는 내 아들들이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나는 하나님이기를 중단할 수 없으며 너희를 만들어 복을 주기로 작정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희를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결국 복을 받을 것이다. 너는 결국 거룩 해질 것이다."
■우리는 죽고 싶어도 거룩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는 존재이다. 무시무시한 하나님이시다.
복된 약속이지만 앞에 나온 진노가 보복으로 끝나지 않듯이 오늘의 복된 약속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뜻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정신차리라는 뜻이다.
이사야 42 장의 무시무시한 말씀을 읽고 명심해야 한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것이다. 화내고 흔들어 항복을 받아내시지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반응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나아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어코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승리하기까지 결코 포기 하시지 않을 분이라는 뜻이다. 무시무시한 말이다.
우상이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여 파멸에 이르더라도 아무런 개입이나 간섭도 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포기하시지 않고 구경만 하시지 않고 두고 보시기만 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 진심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복하신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불렀노라. 내가 너희를 시내산에서 만났 노라"라는 말씀 속에서 크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크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내 아들을 보내었노라"라는 말씀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신앙은 예수가 누구신지를 얼마나 아느냐에 달려 있다.
'예수는 누구인가?
이는 하나님의 얼마나 무섭고 거룩한 뜻이며 무시무시한 사랑인가?
얼마나 놀라운 소망이기에 성경이 말하는대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리하여 우리가 얼마나 조심해야 하며 애써야 하는 일인가?'
를 생각해야 신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더 큰 힘과 더 큰 사랑과 더 큰 능력에 붙잡힌 존재이다.
이 사실을 아는 깨달음과 거기서 얻는 운명적 승리와 도망갈 수 없는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삶에는 많은 문제가 가득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신경 쓰고 집중하고 우리 자신을 붙들어 매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이 바꿀 수 없고 타협할 수 없으며 취소할 수 없는 우리의 신분이다.
■이 사실을 알고 신자 된 우리의 현실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목 놓아 울고 억울해하고 분통이 터지는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고 위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눈물을 닦고 입을 닫고 눈을 들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시고 찾아오시고 증거하시고 허락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호세야 설교 p.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