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목적하시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 눈에 안 보이게 멀고 심원하고 크고 높아서 당장 확인이 안되었던 것이다.
바알이나 아세라는 다 이 눈앞에 있는 결과물, 인간들이 생존하는데 가장 필요했던 생산물과 그 자손들의 번성에 관한 신들이었다.
그런 신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그런 신을 만들었다. 가을추수가 잘 되기를, 자식들을 많이 낳아서 후손들이 자기 가문이 번성되기를 바란 그런 생산의 신들이었다.
그런 신들을 섬긴다는 것은 현대에 오면 그것이 말하자면 건강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명예라든가 하는, 보다 쉬운 것으로, 그런것들이 나쁘다 좋다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목적한 것을, 우리가 아는 그런 가치로 낮추어서 타협하는 것을 하나님이 매우 심각하게 분노하신다 이렇게 여기 성경에 선언하고 있다.
그러니까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보내셨다,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사하셨다 이런 말들이 갖는 깊은 의미를 알아야 된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이 세계는, 하나님이라는 창조자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목적하신 것을 결국 이루고야 마는 분이라는 대전제 밑에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볶아서, 말하자면 우리에게 겁을 줘서가 아니라, 그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사랑하시며,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신 목적을 타협하시지 않는다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인 것이다.
하나님을 순종하라 하는 것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광이고 우리에게 기쁨이고, 우리에게 자랑할 만한 것들이 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것들로 우리를 채우는, 우리를 만드는, 우리를 결과시키는 그런,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우리가 그것을 받되,
이렇게 순종이라는 아주 중요한 성품, 어떤 선택, 어떤 노력같은 걸 동원하여 우리의 소원이 되고, 우리의 기쁨이 되고, 우리의 어떤 이해가 되는 이런 일들을 수반하여 하나님이 이 열매들을 우리에게 만드시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이유는 그렇게 복을 주시는 것에 더하여,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복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우리에게 하나의 증거로 삼는 복이었다.
그러나 그 복을 받자, 말하자면 재물이 풍성하고 배가 부르자, 거기를 끝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여호와를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호와를 버리고 재물을 섬겼다 이런 뜻이 아니라, 그 재물이나 건강이나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시는 어떤 복들이 있다면, 그 복들로 인하여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진정한 복을 주시는 분이다라는 데로 더 가야 하는데 `그들은 가지 못했다. 여호와를 잊었다` 그러는 거다.
재물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가 복이 아니라, 그 복들이란, 진정한 복,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을 기뻐하는 우리 마음의 항복, 우리 영혼의 항복, 찬송, 그 고백,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라고 부르시는 것같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진정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자리로 가는 그 일을 위하여 광야생활이 있었고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을 너희는 지켜라.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의 갈림길에 너희가 서 있는 셈이다. 복을 받아라. 나를 순종해서 더 복을 받아라. 진정한 복을 받아라" 이걸 요구하시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꾸짖고 벌하시고 징계하신다. 징계는 우리가 타협하는 것을 깨는 부모의 개입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편하게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뭔가?
아직도 더 남았다는 거다. 뭐가? 우리를 위하여 준비한 복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영광이, 아직도 너무나 더 많이 남아 있어서 여기서 중단할 수 없다, 여기서 타협할 수 없다, 끝없이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채근하신다.
우리가 가지는 기독교 세계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로 그 아들을 닮게 하시며, 그 아들이 하신 모든 일들, 그의 온유하심, 그의 겸손하심, 그의 섬김, 그의 권능, 진리 됨, 생명이심, 이 모두가 우리에게 허락된 것들을 예수께서 직접 보이신다.
우리 모두가 마귀를 쫓아낼 권세와 지위가 있고 모든 병을 몰아낼 지위와 권세가 있고 그런 신분이고 그런 운명을 가진 복된 존재이지만,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 모든 것들을 고난 속에서 행하신 것을 기억하여야 된다.
좋은 게 좋은 것으로 가지 않는다. 예수님마저도 아버지와 의논하시고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비켜주시옵소서'라는 기도로 <모든 것이 방해를 받고, 무산되는 것같고, 오해받고 실패할 것같은 속에>, 그 무엇도 하나님의 일하심과 우리를 향한 뜻이 무산되거나 방해되거나 중간에 중간에 중간에 취소되지 않는다고 주께서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까지 가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하나님, 이만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이만하면 되지 않았습니까?`라는 우리의 아우성에 "더 가자" 그러신다.
그건 위대한 길이다.
우리의 눈물과 여러분의 하소연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을 목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가 원치 않는 현실을 맞이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이미 타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만 하면 됐다' 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의 최고의 유혹은 이것이다. 나 편하기 위하여 모든 책임 벗어던지고 편하게 살고 빨리 죽어서 고생 안 하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 됐는데,
예수께서 보이신 그 길을 하나님이 우리 보고 가라고 하신다. `너 고생해라. 네가 기도해라. 네가 고난을 겪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는 것을 세상으로 보게 하여 너는 빛이 돼라. 너는 생명이 되라. 너는 진리가 되고, 너는 소망이 되고, 너는 권능이 되고, 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의 영광을 증언하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 길에 부름 받고 있고, 지금 그 현실을 살고 있다.
우리를 훼방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없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 상에서야 이 말을 하셨다. "다 이루었다"
우리 인생에 고단한 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 내 인생을 쓰시고,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여, 더 깊은 기도와 이해와 우리의 인생을 살아내는, 책임있는 깊고 깊은 믿음과 소망의 영광을 살아내는 말년이 되기를 바란다
(*소망회14)
바알이나 아세라는 다 이 눈앞에 있는 결과물, 인간들이 생존하는데 가장 필요했던 생산물과 그 자손들의 번성에 관한 신들이었다.
그런 신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그런 신을 만들었다. 가을추수가 잘 되기를, 자식들을 많이 낳아서 후손들이 자기 가문이 번성되기를 바란 그런 생산의 신들이었다.
그런 신들을 섬긴다는 것은 현대에 오면 그것이 말하자면 건강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명예라든가 하는, 보다 쉬운 것으로, 그런것들이 나쁘다 좋다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목적한 것을, 우리가 아는 그런 가치로 낮추어서 타협하는 것을 하나님이 매우 심각하게 분노하신다 이렇게 여기 성경에 선언하고 있다.
그러니까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보내셨다,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사하셨다 이런 말들이 갖는 깊은 의미를 알아야 된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이 세계는, 하나님이라는 창조자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목적하신 것을 결국 이루고야 마는 분이라는 대전제 밑에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볶아서, 말하자면 우리에게 겁을 줘서가 아니라, 그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사랑하시며,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신 목적을 타협하시지 않는다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인 것이다.
하나님을 순종하라 하는 것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광이고 우리에게 기쁨이고, 우리에게 자랑할 만한 것들이 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것들로 우리를 채우는, 우리를 만드는, 우리를 결과시키는 그런,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우리가 그것을 받되,
이렇게 순종이라는 아주 중요한 성품, 어떤 선택, 어떤 노력같은 걸 동원하여 우리의 소원이 되고, 우리의 기쁨이 되고, 우리의 어떤 이해가 되는 이런 일들을 수반하여 하나님이 이 열매들을 우리에게 만드시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이유는 그렇게 복을 주시는 것에 더하여,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복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우리에게 하나의 증거로 삼는 복이었다.
그러나 그 복을 받자, 말하자면 재물이 풍성하고 배가 부르자, 거기를 끝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여호와를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호와를 버리고 재물을 섬겼다 이런 뜻이 아니라, 그 재물이나 건강이나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시는 어떤 복들이 있다면, 그 복들로 인하여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진정한 복을 주시는 분이다라는 데로 더 가야 하는데 `그들은 가지 못했다. 여호와를 잊었다` 그러는 거다.
재물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가 복이 아니라, 그 복들이란, 진정한 복,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을 기뻐하는 우리 마음의 항복, 우리 영혼의 항복, 찬송, 그 고백,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라고 부르시는 것같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진정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자리로 가는 그 일을 위하여 광야생활이 있었고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을 너희는 지켜라.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의 갈림길에 너희가 서 있는 셈이다. 복을 받아라. 나를 순종해서 더 복을 받아라. 진정한 복을 받아라" 이걸 요구하시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꾸짖고 벌하시고 징계하신다. 징계는 우리가 타협하는 것을 깨는 부모의 개입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편하게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뭔가?
아직도 더 남았다는 거다. 뭐가? 우리를 위하여 준비한 복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영광이, 아직도 너무나 더 많이 남아 있어서 여기서 중단할 수 없다, 여기서 타협할 수 없다, 끝없이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채근하신다.
우리가 가지는 기독교 세계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로 그 아들을 닮게 하시며, 그 아들이 하신 모든 일들, 그의 온유하심, 그의 겸손하심, 그의 섬김, 그의 권능, 진리 됨, 생명이심, 이 모두가 우리에게 허락된 것들을 예수께서 직접 보이신다.
우리 모두가 마귀를 쫓아낼 권세와 지위가 있고 모든 병을 몰아낼 지위와 권세가 있고 그런 신분이고 그런 운명을 가진 복된 존재이지만,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 모든 것들을 고난 속에서 행하신 것을 기억하여야 된다.
좋은 게 좋은 것으로 가지 않는다. 예수님마저도 아버지와 의논하시고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비켜주시옵소서'라는 기도로 <모든 것이 방해를 받고, 무산되는 것같고, 오해받고 실패할 것같은 속에>, 그 무엇도 하나님의 일하심과 우리를 향한 뜻이 무산되거나 방해되거나 중간에 중간에 중간에 취소되지 않는다고 주께서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까지 가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하나님, 이만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이만하면 되지 않았습니까?`라는 우리의 아우성에 "더 가자" 그러신다.
그건 위대한 길이다.
우리의 눈물과 여러분의 하소연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을 목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가 원치 않는 현실을 맞이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이미 타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만 하면 됐다' 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의 최고의 유혹은 이것이다. 나 편하기 위하여 모든 책임 벗어던지고 편하게 살고 빨리 죽어서 고생 안 하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 됐는데,
예수께서 보이신 그 길을 하나님이 우리 보고 가라고 하신다. `너 고생해라. 네가 기도해라. 네가 고난을 겪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는 것을 세상으로 보게 하여 너는 빛이 돼라. 너는 생명이 되라. 너는 진리가 되고, 너는 소망이 되고, 너는 권능이 되고, 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의 영광을 증언하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 길에 부름 받고 있고, 지금 그 현실을 살고 있다.
우리를 훼방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없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 상에서야 이 말을 하셨다. "다 이루었다"
우리 인생에 고단한 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 내 인생을 쓰시고,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여, 더 깊은 기도와 이해와 우리의 인생을 살아내는, 책임있는 깊고 깊은 믿음과 소망의 영광을 살아내는 말년이 되기를 바란다
(*소망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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