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예수 안에서 세상의 법칙을 바꾸셨다 그게 복음이다. 온 천하의 최고의 법은, 예수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의 법이다

nazunzaro 2020. 6. 24. 20:05
하나님이 나를 보내서 나를 만나서 꺽으셨듯이, ●한 영혼을 꺽지 않는 한, 이 길로는 열매가 맺힐 수 없다'를 알아서 이 길을 지금 바울이 걷는거다

예수 믿는 게 뭔지 알아야 된다. 아무도 이해를 못한다.
●본인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예수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나에게 일하셨고, 나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이 바로 이 일을 하신다는 걸 아는 것이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 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의 몰이해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설명해서 되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그 절정에서 예수님께서 오시는 거다. 그의 영광과 거룩과 그의 자비와 긍휼과 그의 성실과 의지를 예수에서 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예수 믿고 사는 현실에 대해서 겁날 게 없어야 된다.
복음을 들고 사는 자의 영광과 자랑을 우리 스스로가 알아야 된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적을 이루시는 줄 알아야 된다.

●세상은 우리를 모르지만, 우리가 그 속에 뛰어들어 하나님의 손길이 되며, 하나님의 발걸음이 되며, 하나님의 초청이 되며, 하나님의 축복이 되는 것을 믿는다.
그 인생 기꺼이 사는 우리의 믿음되어야 한다.

●《복음의 정의》

로마서 1장 16절에 복음의 정의도 뜻밖의 정의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능력이라》. 뭐가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이거나 규칙이거나 수단이 아니라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의지의 소산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반응과 결단은 그 다음 문제이다.

●복음이 뭐냐?
세상이 가졌던 법칙, 죄와 사망의 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꺽으신 거다. 결국 죽는 운명을 결국 사는 운명으로 바꾸셨다.
●예수 안에서 세상의 법칙을 바꾸셨다. 그게 복음이다.

우리는 자꾸 우리의 결단과 이해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위해서 그렇다.
'우리가 이해를 해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시고 당신을 계시하셔서 우리가 이해를 하는 것이지, 이해가 되면 계시고 이해를 못하면 안계시는 분이 아닌 것처럼, 복음은 믿으면 있고 안 믿으면 없는 것이 아닌 얘기다.

이게 지금 바울의 사명이다. '너희들이 믿는냐 안 믿느냐는 두번째 문제고, 이런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고 계시다, 일하고 계시다, 나보고 그것을 온 천하에 가서 선포하라고 하셨다. 그러니 날 잡아먹을려면 잡아먹고 나를 밀려면 밀어라, 나는 그건 모르겠고 난 나한테 맡겨진 일 해야된다' 그러고 있다.

그러니 그는 이 무서운 증오, 위협, 권력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 자기가 들고 간 얘기만 자꾸한다. 도전이 있을 때마다,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얘기를 한다.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그 예수는 우리가 바로 그 십자가에 죽인 그 예수였다. 그 예수의 죽음은 죽을 우리를 부활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찾아오심이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안에서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부르셨다.
●온 천하의 최고의, 최고의 법은, 예수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의 법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다.

《늙어 가는 것이란?》
나이가 들면 배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만일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영원히 아마 예수를 안 믿을 것이다.
갑자기 죽으면 안된다. 늙어 죽어야 된다.
늙으면 뭘 배우느냐? 죽음을 앞에 두면, 정말 가치있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에 대한 당연한 이해가 생긴다. 세상이 거짓말쟁이라는 걸 안다. 이렇게 살고, 이렇게 하면 평생 이길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 보니 '거짓말'이라고 쓰여 있는 거다.
뭐가 거짓말인가? 내가 아는 아닌 얼굴이 나와 있는 거다. 세상이 약속했던 영원한 승리, 영원한 영광, 영원한 자랑이 없다. 말도 안되는 이조시대에 살던 선조가 이름도 모르는 할배와 할멈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다.
무섭다. 세상이 한 약속 중에 하나도 진실인 것이 없다. 그것은 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 뿐이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다르다.
믿음을 가진 자가 늙어 거울을 들여다 보면 뭐가 나오나?
예수님이 나온다. 그게 다르다. 예수님이 나온다. 주름주름 사이에 그늘진 어둔 골짜기마다 십자가가 서 있고, 굴곡진 피부에 부활의 빛이 반사된다.
죽어가니까 마지막으로 붙잡는 게 아니다.
●죽음도 막을 수 없는 예수 안에서의 구원의 영광을 본다. 기꺼이 죽을 수 있다. 기꺼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아쉬울 것이 없다.
내가 유익해서 살아있거나 무익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느껴서 살아 있다.
살아 있는 것이 책임인 줄 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붙드심과 축복 속에 있는 줄 알기에 살아 있는 거다.
왜 그렇게 오래 살았냐구? 하나님이 나랑 하실 일이 더 있단다. 왜 일찍 죽었냐고요? 내 일이 다 끝났단다.
그게 우리가 아는 복음에 대하여 가지는 우리의 자랑이요, 그 복음 안에 우리의 운명과 인생을 다 담아낼 수 있는 성경의 위대함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도덕이나 능력으로 관계의 조건이 설정되어 있지 않고, 물보다 진한 피? 아니다. 그것보다 진한, 창조주 하나님이 목적하셨던 그의 형상, 그의 사랑의 영광으로 묶여 있다.
탕자가 돌아와 아버지께 뭐라고 그랬다고?
'아들이라는 이름을 감당할 수 없으니 종의 하나로 보소서'
'무슨 소리냐? 얘들아, 광화문 태워서 불고기 구워먹자! 그랬다니까. 광화문. 빛 광자, 불 화자 아닌가? 성경이 하는 얘기를 알아들어야 된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적대자와 세상권력과 하나님의 증인이 함께 묶여 역사 현장에 있는데, 누가 제일 큰 힘을 갖고 있는가? 세상권력이 제일 큰 힘을 갖고 있다.
실제로 누가 주인공인가? 바울이 주인공이다.
바울이 유능해야 했나?
아니다. 순종해야 했다. 오래 살아야 했다.
바울이 몇살까지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오래 살아야 했다.
●오래 살아 뭐 당했나? 계속 고난을 당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다만 고난과 수고뿐일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길이다.
우리가 걷는 길이 암담해 보이고 실패같고 아무 것도 아닌 것같고 허허로울 때 조차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일하시는 십자가의 신비요 부활의 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랑이 아니고 더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힘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우시고 신실하시고 거룩하심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 막막한 길을 걸어갈 믿음과 순종과 위대함과 약속에 의한 충성을 해야 된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아야 된다
아멘

(*다보행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