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떤 은사를 줄 때, 그 시대에 필요한 어떤 시대적 필요에 의해서 어떤 특별한 종을 세우곤 합니다. 그러나 그 종들은 다 그것이 모범이거나 표준이 되지않습니다. 어떤 초월한 우월의 존재로서 묘사되지 않습니다.
모세가 그렇고 다윗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중요한 뜻을 담아내기 위하여 쓰임을 받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위대하고 남달랐다` 성경은 결단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많이 쓰시는 건 뭐냐 하면 시간입니다. 하루만큼씩 우리를 키우십니다. 한꺼번에 뭘 만들지 않고 하루씩, 그래서 하루만큼의 경험, 하루만큼의 기회, 하루만큼의 결과를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린 보통은 과거를 돌이킬 때에, 그 과거로 돌아가서 그 잘못한 것을 고치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고, `그 잘못을 이제 깨달았다면 지금은 그러지 마라,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더 낫게 굴어라` 이렇게 우리의 과거를, 우리 경험을, 우리의 후회를 우리 안에 담아서 우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중의 제일 많이 하는 게 뭘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인생에서 그 과정을 이런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충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가지는 과정의 제일 많은 도전이 고난입니다.
●고난은 왜 필요하죠? 고난은 우리로 한계를 깨닫게 합니다. 최선을 다하게 만들고 그래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하죠.
욥이 친구들과 싸운 데서 욥도 불만이고 세 친구도 불만인데, 욥이 세 친구와 달랐다는 게 뭐죠? 이 이해할 수 없는 건 뭡니까?라고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었던 법칙 속에서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법칙을 벗어나는 이 고난, 이 절망은 왜? 무엇을 만들려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께 묻죠.
세 친구는 계속 우겨서 욥을 하나 잡으려는 것밖에는 더 이상의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아는 체계 속에 안심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큰소리치는 것에 불과하고 욥은 그 체계를 하나님이 깨시는 바람에, 그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고단한 과정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나중에 욥은 하나님을 만나죠.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한 고백은 놀랍죠.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장님들 넷이 코끼리를 만진 우화를 아시죠? 벽같으다, 기둥같으다, 부채같으다, 큰 호스같으다, 그게 우화라는 것은 코끼리를 본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고 한 얘기들이 얼마나 우스운가 하는 것을 알 도리가 없죠. 봐야 합니다.
욥은 봤다는 거죠. 뭘 봤을까요?
우리가 아는 체계, 믿음이 좋으면 된다, 기도하면 된다, 열심으로 하면 된다, 그것에 잡히지 말라 합니다.
그것들이 다 필요하고 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창조로 현실에 개입할 수 있답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해놓고 그치고 방관하고 심사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 언제라도 현실 속에 나에게 창조로 찾아올 수 있답니다.
창조란 뭐죠? 법칙을 넘어서는 겁니다. 우리는 법칙을 깨는 것은 세상에서는 언제나 죄를 지을 때만 법칙을 깨죠. 법칙을 지키면 죄라는 게 있을리가 없는데, 법칙을 깨서 법칙만 못하게 구는 것을 법을 어겼다 그러죠.
하나님이 법을 어기는 것은 더 좋게 그 법칙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을 주려고 법칙을 넘어서십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믿음이라고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것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언제든지 은혜로 기적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지금 보이는 우리의 현실, 대다수의 우리들의 수준, 이런 것은 우리가 완벽한 실력을 갖추어야 하나님께 도움이 된다는 생각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애굽을 나오고 홍해를 건너고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그 손에 들었던 건 지팡이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 지팡이 하나 들고 가라 그랬죠.
그 지팡이로 나일강을 가리키면 나일강이 피로 물들고 그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키면 홍해가 갈라졌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더 실력이 있어야 하고 더 열심히 있어야 하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되는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고 방향이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걸 믿기 때문에, 우리의 자세와 우리의 충성을 우리가 다 바치고 그 이상의 결론을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 거기에 어떤 잘 난 사람이라는 게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죠.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라고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써서 하나님이 일하신다. 우리 입으로 얘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 모든 표정, 만남, 대화에서 모든 사람과 동일한, 혹은 그 수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택하여 큰 일을 행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일상은 하루가 떨립니다.
두려워서 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씨를 하나씩 심는 것 같은 날이고, 우리가 하나님 피운 꽃을 보는 날이고, 우가 하나님의 결실한 열매들을 보는 날들이 매일입니다.
비가 안 와서 안타까운 날도 물론 있고 날이 추워서 안타까운 날도 있겠지만, 세상이 이기겠는가? 하나님이 이기겠는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시면 당연히 하나님이 이기시죠.
그 분명한 결국을 알고 있으면서 오늘 하루의 이 세상의 위협과 도전 앞에서 우리가 쩔쩔 매고 있다는 것은 내 자식들을 위하여 내가 염려하므로 내가 쩔쩔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겁에 질려 있다면 우리는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요즘 한국 교회가 어떻고, 이렇게 말로 분하고 걱정하는 것으로 책임을 떠넘기지 마시고,
여러분 교회, 여러분 성도,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일하고 계시다는 약속 속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든든하고 넉넉하고 인내하고 충성하고 감사하고 함께 울 수 있고, 함께 죽을 각오를 하는, 그 멋진 역할을 감당해내는 귀한 신자들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우리 마음에 복음을 위한 열심히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열심이 있어서 우리는 자꾸 유명해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명하지 말라 하십니다. 너희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진 자다, 내가 너를 세웠고 창세 전에 예정했다, 너희에게 이 많은 영혼들을 맡겼으니 이들과 함께 은혜와 영광을 담아 내게로 오라` 이 명령을 주었습니다.
감사하며 우리 책임 다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믿고 우리 사명을 감당케 하여주옵소서.
세상이 온통 교회에 손가락질을 하는데 하나님은 하늘에서 웃으십니다.
지금은 한번 숨을 고르는 정도일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정신을 차릴 것이며 복음의 진정한 보석을 확인 할 것이며
그 자랑과 영광을 이 세상에 다시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자고 그 아들을 보내셨고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들을 세우신 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결국을 우리 시대에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세가 그렇고 다윗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중요한 뜻을 담아내기 위하여 쓰임을 받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위대하고 남달랐다` 성경은 결단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많이 쓰시는 건 뭐냐 하면 시간입니다. 하루만큼씩 우리를 키우십니다. 한꺼번에 뭘 만들지 않고 하루씩, 그래서 하루만큼의 경험, 하루만큼의 기회, 하루만큼의 결과를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린 보통은 과거를 돌이킬 때에, 그 과거로 돌아가서 그 잘못한 것을 고치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고, `그 잘못을 이제 깨달았다면 지금은 그러지 마라,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더 낫게 굴어라` 이렇게 우리의 과거를, 우리 경험을, 우리의 후회를 우리 안에 담아서 우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중의 제일 많이 하는 게 뭘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인생에서 그 과정을 이런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충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가지는 과정의 제일 많은 도전이 고난입니다.
●고난은 왜 필요하죠? 고난은 우리로 한계를 깨닫게 합니다. 최선을 다하게 만들고 그래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하죠.
욥이 친구들과 싸운 데서 욥도 불만이고 세 친구도 불만인데, 욥이 세 친구와 달랐다는 게 뭐죠? 이 이해할 수 없는 건 뭡니까?라고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었던 법칙 속에서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법칙을 벗어나는 이 고난, 이 절망은 왜? 무엇을 만들려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께 묻죠.
세 친구는 계속 우겨서 욥을 하나 잡으려는 것밖에는 더 이상의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아는 체계 속에 안심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큰소리치는 것에 불과하고 욥은 그 체계를 하나님이 깨시는 바람에, 그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고단한 과정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나중에 욥은 하나님을 만나죠.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한 고백은 놀랍죠.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장님들 넷이 코끼리를 만진 우화를 아시죠? 벽같으다, 기둥같으다, 부채같으다, 큰 호스같으다, 그게 우화라는 것은 코끼리를 본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고 한 얘기들이 얼마나 우스운가 하는 것을 알 도리가 없죠. 봐야 합니다.
욥은 봤다는 거죠. 뭘 봤을까요?
우리가 아는 체계, 믿음이 좋으면 된다, 기도하면 된다, 열심으로 하면 된다, 그것에 잡히지 말라 합니다.
그것들이 다 필요하고 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창조로 현실에 개입할 수 있답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해놓고 그치고 방관하고 심사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 언제라도 현실 속에 나에게 창조로 찾아올 수 있답니다.
창조란 뭐죠? 법칙을 넘어서는 겁니다. 우리는 법칙을 깨는 것은 세상에서는 언제나 죄를 지을 때만 법칙을 깨죠. 법칙을 지키면 죄라는 게 있을리가 없는데, 법칙을 깨서 법칙만 못하게 구는 것을 법을 어겼다 그러죠.
하나님이 법을 어기는 것은 더 좋게 그 법칙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을 주려고 법칙을 넘어서십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믿음이라고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것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언제든지 은혜로 기적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지금 보이는 우리의 현실, 대다수의 우리들의 수준, 이런 것은 우리가 완벽한 실력을 갖추어야 하나님께 도움이 된다는 생각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애굽을 나오고 홍해를 건너고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그 손에 들었던 건 지팡이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 지팡이 하나 들고 가라 그랬죠.
그 지팡이로 나일강을 가리키면 나일강이 피로 물들고 그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키면 홍해가 갈라졌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더 실력이 있어야 하고 더 열심히 있어야 하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되는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고 방향이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걸 믿기 때문에, 우리의 자세와 우리의 충성을 우리가 다 바치고 그 이상의 결론을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 거기에 어떤 잘 난 사람이라는 게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죠.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라고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써서 하나님이 일하신다. 우리 입으로 얘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 모든 표정, 만남, 대화에서 모든 사람과 동일한, 혹은 그 수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택하여 큰 일을 행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일상은 하루가 떨립니다.
두려워서 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씨를 하나씩 심는 것 같은 날이고, 우리가 하나님 피운 꽃을 보는 날이고, 우가 하나님의 결실한 열매들을 보는 날들이 매일입니다.
비가 안 와서 안타까운 날도 물론 있고 날이 추워서 안타까운 날도 있겠지만, 세상이 이기겠는가? 하나님이 이기겠는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시면 당연히 하나님이 이기시죠.
그 분명한 결국을 알고 있으면서 오늘 하루의 이 세상의 위협과 도전 앞에서 우리가 쩔쩔 매고 있다는 것은 내 자식들을 위하여 내가 염려하므로 내가 쩔쩔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겁에 질려 있다면 우리는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요즘 한국 교회가 어떻고, 이렇게 말로 분하고 걱정하는 것으로 책임을 떠넘기지 마시고,
여러분 교회, 여러분 성도,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일하고 계시다는 약속 속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든든하고 넉넉하고 인내하고 충성하고 감사하고 함께 울 수 있고, 함께 죽을 각오를 하는, 그 멋진 역할을 감당해내는 귀한 신자들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우리 마음에 복음을 위한 열심히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열심이 있어서 우리는 자꾸 유명해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명하지 말라 하십니다. 너희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진 자다, 내가 너를 세웠고 창세 전에 예정했다, 너희에게 이 많은 영혼들을 맡겼으니 이들과 함께 은혜와 영광을 담아 내게로 오라` 이 명령을 주었습니다.
감사하며 우리 책임 다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믿고 우리 사명을 감당케 하여주옵소서.
세상이 온통 교회에 손가락질을 하는데 하나님은 하늘에서 웃으십니다.
지금은 한번 숨을 고르는 정도일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정신을 차릴 것이며 복음의 진정한 보석을 확인 할 것이며
그 자랑과 영광을 이 세상에 다시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자고 그 아들을 보내셨고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들을 세우신 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결국을 우리 시대에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