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
우리가 속한 이 조건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조건이었다.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필요하다고 하나님이 작정한 하나님의 지혜이고 권능이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이고 권능이다,라는 선언과 선을 잇지 않으면 이스라엘 하나님의 지혜이고 권능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원망을 해결하는 방법은 뭔가?
누구를 죽이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런 것은 없다.
하나님 모르는 바벨론이 일어나서 선민인 이스라엘을 이기고 성전을 훼파하고 자기네 신들에게 그 보석을 갖다가 바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다.
'우리는 범죄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어찌 모욕을 자초하십니까?'
거기에 하나님이 대꾸하신다; '나는 이 수치보다 너희를 가르치는 것이 더 우선한다. 나는 이 값을 치루겠다.'
그것은 이스라엘 멸망에서도 나타났고 십자가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면 우리 정신차려야 되지 않는가?
정신 차려야 되는게 뭔가? 곰곰히 생각해 보자.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자. 할 수 있는 일. 체념하는 거 없고 원망하는 것 안된다. 그건 둘 다 책임을 어디다 버리는 거다.
<우리가 돼야 된다. 우리가 돼야 된다고.> 하나님이 우리의 원망을 해결해주기 위해 누구를 죽이는 걸 바랄게 아니다.
수요일날 교회 나오는 건 굉장한 점수이다. 같이 기도하러 교회에 나온다. 이런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오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많은데.. 일단 목사가 좋은 말 안한다, 이건 큰 걸림돌이다. 그리고 남성성가대가 늘 화음이 틀린다.. 이런 것들을 뚫고 교회에 나오는 거다.
거기에 하나씩 더 해야 된다. 교회에 와서 우리끼리 종교행위를 하면 다 끝나는 게 아니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발휘되지 않는다면 아무 쓸데가 없다.
그게 발휘되기 위해서는 우리만은 어떤 어떤 시험과 협박을 뚫어야 된다. 그 싸움이 각각에게 있는 거다.
우리 다 그거 아닌가? '하나님 저한테 뭐 큰 걸 바라세요?' 이렇게 예레미야도 똑같이 한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세운다'는 이 말은 '도끼로 찍는다' 그런 의미쯤 된다. 하나님이 그냥 우리 역사에 진입하셔서 하나님의 고집을 이루신다 그런 의지에 찬 표현이다.
'내가 너를 세워서 내 나라를 완성하고 내 뜻을 관철할 것이다. 그래서 여러 나라를 네가 짓밟을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 이 나라를 다시 재건할 것이다'가 포함되는 것이다.
우리 하나에 하나님께서 뭐 세계까지 끌고 갈 것없이, 우리나라와 우리 교회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의 일하심이 좌우될 것이다.
그러니 각각 책임을 가진 인생으로 살되, 그것이 예레미야의 억울함보다는 우리가 덜하다는 것을 위로로 삼고 살아내야 된다.
우리 인생에 우리의 고달픔을 들어주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들어주면 안된다. 그러면 거기가서 자꾸 털어놓고 우리는 도망치게 된다.
우리는 얻어 맞아야 된다. 그래서 고치고 일어나고, 하나님의 손길이 되는 그 영광을 누리는 인생을 살아 내야 된다.
(*예레미야 강해 0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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