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우리에게 종종 하나의 명분이나 어떤 추상명사 또는 방법론 같이 많이 이해되는데,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개입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생애는 그가 얼마나 훌륭했느냐 하는 일로 쓰이지 않고,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이 인류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과정 내용 그리고 그 방법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제부터 우리에게 주고 우리 인류에게 베풀려는 당신의 구원을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만드시는데,
세상적인 것은 거기에 하나도 조건이거나 근거거나 방법으로 쓰이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이해하는 자 아브라함의 생애에 참여하는 자는 복되고,
아브라함의 생애를 외면하는 자 그 가치를 모르는 자는 그저 죄 아래 죽고 만다, 그런 뜻이 될 것이다.
하나님 스스로의 명예와, 우리 인간적으로 얘기하면 목숨을 걸고, 이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주신다.
원래 이 약속은 약속의 당사자 둘이 자나가야 되는 쌍방간의 약속이어야 맞는데, 이 약속에서는 하나님 홀로 지나가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인류에게 하나님이 타락한 범죄한 인류를 회복하겠다고 얘기하신다
그럼 기왕 회복하고 구원할 것이라면 왜 타락을 막지 않으셨는가? 왜 인류가 선악과를 따먹게 놔두셨는가?
선악과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라는 질문으로 돌아오는데, 지난 시간에 얘기한 것과 같이 그것은
선악과의 문제이기 전에 그것을 따먹을 수도 있고 따먹지 않을 수도 있는 인간에게 준 자유라는 특권에 관한 문제였다고 했다.
인간은 그 자유로 하나님을 외면하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책임을 쥐고있는 것이다. 죄가 왕노릇하는 세상으로 쫓겨났다.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로 한 하나님의 개입이 왜 아직도 죄와 실패와 절망이라는 사망의 공포 속에서 역사가 이어져 와야 되느냐?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자유가 우리의 선조 아담이 실패했던 그 선택의 결과를 봄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자유를,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리까지 가는 시간, 과정을 인류에게 주는 것이다
우리가 회복되기까지 세상은 아직 회복이 되어있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 회복되는 인생이 된다.
최종적 회복, 모든 우주만물이 회복되는 시기는 뒤에 아직 미루어져 있지만,
우리 예수를 믿는 신약의 신자들은 다같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롭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는 참다운 인간으로 살 수 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기꺼이 지신 것같이, 우리 인생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그 지킴이 그냥 쉽게 한번 마음에 결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가 저질렀던 그 실패, 그래서 일어난 모든 시험과 걱정과 오해와 공포 속에서 그 모든 걸 극복하는 책임있는 자리에까지 와야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처음 겪어보는 전염병의 위협 앞에서 온나라 온세계가 겁을 먹고 있다.
교회 모임도 함께 모여서 함께 찬송하며 함께 기뻐하는 일을 잠시 중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들었다.
예수를 믿었으면 하나님께서 이런 병도 면제해 주시고 적어도 예배를 볼 때만은 천사들이 와서 붙들어 주시고 그래야 맞지않나?
그렇게 하는 얘기에 대해서 하나님 웃으신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도 너희를 헤치거나 손해케하는 일은 없다.
너희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물었지? 내가 너희에게 그럴 수 있다. 너희는 내게 의심과 원망으로 그 질문을 했다마는 나는 너희에게 감탄과 감격과 놀라움과 기쁨으로 답하리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삭의 출생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서 뭘 하셨는지, 우리가 그 속에서 겪는 일 속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면제하셔서 쉽게 가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아담의 실패가 가졌던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깨우치시고 우리에게 준 자유라는 권리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지위와 특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요구하시는가, 어떻게 만들어가시는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답하는 그런 책임있는 기도와 깊은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 나이에 무슨 낙이 있다고,,?`라고 말할 수 있다. 나이가 상관있나? 하나님 하시는 일에 얼마든지이다.
다윗은 물멧돌 하나로 골리앗을 죽여버릴 수 있었다. 무엇이든지이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면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신다.
●지금 문제를 해결하자 그러지 말고 우리의 인생에 언제나 우리 앞에서 도전하고 위협하는 죽음, 그 헛됨과 거짓말, 그래서 타협과 절망과 원망으로 가득찬 생애를 이제쯤 찬송과 기도와 믿음과 감격으로 살아내야 나이먹은 값을 하는 게 아닐까?
그러한 깊은 우리 나이가 되어야 깨닫게 되는 말없는 증언, 움직이는 증언, 살아있는 기적이 되는 우리들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가 가장 크고 단단해지는 것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이다.
우리 칠십이 넘도록 인생을 살았는데 돌아보면 잘살았던 것은 기억이 없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이다.
건강했던 것, 잘 살았던 것 다 소용없고, 인생이 뭔가, 인간이 뭔가,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죽으면 천국가는 것말고, 아직도 살아있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우리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서 무얼 하시는지, 우리가 증언해야 된다. 그것은 권력도 주술도 아니고,
그것은 기도며 그것은 믿음이며 그것은 찬송이며 순종이며 감사여야 맞다.
<2020.03.25.소망회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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