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인이란, 기독교인이란, 크리스챤(그리스도인)이란 쉽게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본받아 살고자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교회를 다니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하고 읽고 기도를 하는 일련의 신앙행위를 하는 목적도 바로 이 그리스도 예수를 배우고 본받기 위함이다.
이 예수를 배우고 본받는 일을 기독교의 어떤 종교적 계명이나 명령이나 혹은 책무이기에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잘 알지 못하고 오해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를 배우고 본받고 닮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야 말로 우리 존재와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 멋, 위대함이고 기쁨이고 보람이고 영광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 되고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를 배우고 본받고 닮는 일은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서 결코 쉽지 않고 상당히 어렵다.
그 까닭은 우리가 예수처럼 사는 일이, 그를 배우고 본받은 존재가 되는 일이 인생 최고의 가치요 멋이요 영광이라고는 도무지 여겨지지 않는 그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서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돈 권력 건강 지식 재능 쾌락 등이 행복과 기쁨을 주는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시하고 추구한 그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자기를 부인하고 신과 남을 섬기고 용서하며 온유와 겸손으로 대하는 일이 최고의 가치요 영광이요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참 어렵다. 이를 알고 인정하게 되는 데에는 많은 고난과 실패 좌절 슬픔의 경험의 세월이 걸린다. 그런 걸 겪은 후에야 비로소 조금씩 알게 된다.
내 존재와 삶에서 진정한 가치 기쁨 영광은 무언가를 매일 매순간 난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가?
그것이 신과 타인을 복종하고 섬기는 것이며, 타인을 용서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신과 타인을 대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늘 믿고 행하고 누리고 있다면,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러하지 않고 있다면 난 기독교인이라 말할 수 없다.
내가 현실 일상 속에서 신과 모든 조건과 타인에 대하여 섬기고 용서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져주고 양보하고 참아주고 예의있고 따뜻하고 친절하다면,
그리고 그것을 어떤 계명이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그리 사는 자체가 바로 최고의 가치 명예 영광 구원 생명이라는 생각과 이해와 믿음으로 그리 행하고 있다면, 비로소 난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를 따라가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를 다니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하고 읽고 기도를 하는 일련의 신앙행위를 하는 목적도 바로 이 그리스도 예수를 배우고 본받기 위함이다.
이 예수를 배우고 본받는 일을 기독교의 어떤 종교적 계명이나 명령이나 혹은 책무이기에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잘 알지 못하고 오해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를 배우고 본받고 닮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야 말로 우리 존재와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 멋, 위대함이고 기쁨이고 보람이고 영광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 되고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를 배우고 본받고 닮는 일은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서 결코 쉽지 않고 상당히 어렵다.
그 까닭은 우리가 예수처럼 사는 일이, 그를 배우고 본받은 존재가 되는 일이 인생 최고의 가치요 멋이요 영광이라고는 도무지 여겨지지 않는 그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서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돈 권력 건강 지식 재능 쾌락 등이 행복과 기쁨을 주는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시하고 추구한 그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자기를 부인하고 신과 남을 섬기고 용서하며 온유와 겸손으로 대하는 일이 최고의 가치요 영광이요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참 어렵다. 이를 알고 인정하게 되는 데에는 많은 고난과 실패 좌절 슬픔의 경험의 세월이 걸린다. 그런 걸 겪은 후에야 비로소 조금씩 알게 된다.
내 존재와 삶에서 진정한 가치 기쁨 영광은 무언가를 매일 매순간 난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가?
그것이 신과 타인을 복종하고 섬기는 것이며, 타인을 용서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신과 타인을 대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늘 믿고 행하고 누리고 있다면,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러하지 않고 있다면 난 기독교인이라 말할 수 없다.
내가 현실 일상 속에서 신과 모든 조건과 타인에 대하여 섬기고 용서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져주고 양보하고 참아주고 예의있고 따뜻하고 친절하다면,
그리고 그것을 어떤 계명이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그리 사는 자체가 바로 최고의 가치 명예 영광 구원 생명이라는 생각과 이해와 믿음으로 그리 행하고 있다면, 비로소 난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를 따라가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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