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무엇일까?
한국사람들은 유교적 윤리관의 영향 때문에 대부분의 문제를 윤리적 기준으로 판단한다. 신앙의 수준도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면서 지금 당장 그가 얼마나 완벽한 사람인가만 묻는다. 시간이 필요한 과정은 고려하지 않고 완벽함을 따지는 윤리적 명분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 속을 살고 있다. 시간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사이가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성화도 새롭게 이해된다. 성화란 거룩하게 되는 것이므로, 아직은 거룩하지 않다는 현재 상태를 전제한 단어이다. 거룩하게 되어 가는 중이니까 아직 거룩하지 않은 것이다. 과정을 거쳐서 성화가 완성된다는 것을 모르면 신앙생활에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우리는 더 나은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지, 단번에 추호도 흔들림 없는 완벽한 믿음을 가질 수는 없다.
우리는 한 번의 감동으로는 다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살고 있다.
예수께서 2천년 전에 구원을 완성하셨는데,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유효하게 하셨는데 왜 여전히 사람을 죄인으로 태어나게 하실까? 이 문제를 성경은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과거에 일어난 예수의 사건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해 놓았다. 그 든든한 토대 위에서 선조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죄인의 자리에서부터 출발하여 예수가 이루신 구원을 실제로 경험하라고 주어지는 것이 역사이다.
우리는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만 흐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을 넘나드는 듯한 구원의 역동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나중이시다. 시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시간은 하나님 손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된다. 시간은 창조 세계의 질서여서 우리에게는 하나의 규칙이지만 그 질서가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의도하시는 것을 결국 이루시는 분이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을까? 우리에게 항복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를 믿은 다음에도 여전히 헷갈리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아무런 특혜를 받지 못한다. 세상은 여전히. 권력을 휘두르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죄성을 지니고 있다. 선택과 믿음을 고백하며 살려고 하지만 우리가 그런 상태에 머물고 있기에 불안하고 후회스러운 인생만 계속되는 것 같다.
이런 지경에 있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보기 원하시는 것일까?
우리의 항복이다. 그 항복은 세상이 우리에게 주겠다는 것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어떻게 다른지 우리 스스로가 경험을 통해 알게 될 때에야 할 수 있는 항복이다.
이 세상에 서 말하는 모든 약속은 결국 사망을 피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가치, 모든 약속을 헛되게 하며, 모든 것이 헛될 수 밖에 없는 곳으로 우리를 몰아 간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시는 것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역사 내내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명예와 내용을 세상과 대조하여 보이셨다. 우리는 생애 내내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이냐 세상을 따를 것이냐의 갈림길에서 번번이 세상에게 진다… 그런데 지는 것으로 끝나게 하시 않는다. 지면 세상이 하는 거짓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몰랐을 때, 구하지 않았을 때, 의로움을 우리 운명으로 정해 놓으시고 ‘자, 지금부터 살아 보자’ 하고 시작할 수 있도록 주신 것이 오늘 우리에게 허락된 각각의 인생이다.
우리는 이 운명을 가지고 아담의 선택으로 인한 죄인의 자리에서부터 삶을 시작한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이루어진, 돌이킬 수 없는 구원을 운명으로 화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놀라움이다.
억울할 만큼 나쁜 조건 하나하나가 다 기막힌 컨텍스트이며, 오히려 멋있게 굴 기회가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우리가 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멋있는 역을 해라’라고 하신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삶은 잘잘못으로 평가되고 말 것이 아니다. 삶은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이미 확보해 놓은 승리를 누리고 증언하는 명예의 기회이다. 하나님이 확보한 이 승리는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선택하는 책임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각자의 현실을 살아 내라. 위대하게 될 기회를 놓치지 마라,
하나님이 일하여 만들어 놓으신 것이 지금은 비록 보이지 않고 미래로만 미루어져 있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그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기회를 살아 보라고 한다. 어차피 이길 싸움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몸으로 우리가 처한 구체적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말이다. 거울을 한번 보라. 이 눈, 이 코, 이 입, 이 몸뚱이를 가지고 매일 직면하는 현실, 매일 찾아오는 세상의 권세, 위협, 시험 앞에서 살아 보라는 것이다.
매일 이길 필요도 없다. 대리만족하지 말고 실제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같이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라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결정과 선택이 무엇인지 보고 자기 실력을 확인하라, 그리고 실력을 키우라. 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말로 하는 경기가 아니라 자기 몸으로 해내는 경기를 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기경험으로 자기 실력을 쌓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구언이 완성되는 과정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을 멋지게 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