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소망06_위대하다 훌륭하다 그런 단어로 우리가 하루하루 걸어 도달하는 자리를, 넘어지고 울고 원망 후회로 만들어지는 자리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나, 바로 그런 하루들이 하나님이 일하..

nazunzaro 2020. 5. 24. 20:41
●기억할 것이 있다. 모세가 사십세 때 궐기했던 그의 충심 그것이 거부되었었던 것을 기억해야 된다.
팔십 세에 부름 받아 마지 못해 나왔던 그 자리에서 그가 하나님의 권능과 성실하심을 보고 홍해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기 전에, 큰소리로 선언했던 모세의 신앙고백을 하나님이 들으셨을 거다.
그리고 그의 남은 생이 뭐가 되나? 광야에서 방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진 고난을 당하는 생애를 걸어야 했다.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는 원망은 뭐였나? `왜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서 이 고생을 시키는가?`였다.
하나님은 그때 일하고 계셨다.
광야 사십 년은 중요한 과정이다. 애굽과 약속의 땅 가나안 사이에 있는 광야생활은 중요한 시공간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는, 요셉을 감옥에서 훈련시키셨던, 여호와의 말씀이 그를 단련했던, 그를 만들었던 시간이다.

요셉이 얼마나 멋있는가, 모세가 얼마나 위대한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성경이 하고 싶은 얘기를 전혀 못 듣는 거다.
●위대하다, 훌륭하다 그런 단어로 인해,
우리가 하루하루 걸어서 도달해야 되는 자리를, 넘어지고 울고 원망하고 후회하고 하는 것들로 만들어지는 자리를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나,
그러나 바로 그런 하루하루들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예수님마저도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비켜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하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러면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홍포를 입고 채찍을 맞고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리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와 보라'라는 조롱을 당하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팻말을 거기에 박고 놀린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십시오.' 빌라도가 거부한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다.
왕이 십자가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죽어가는 모습으로 하나님이 그의 일을 하신다.

● 어려움과 고난, 원망 같은 것들이 왜 나오나? 하나님이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거다.
정말일까? 하나님은 그의 일하심을 쉬는 적이 없으시다. "젖먹이는 어미가 어찌 그 아들을 잊겠느냐? 그는 잊을지라도 나는 잊지 않는다."
그 말씀을 명심하고,
우리의 원망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나이가 들었다, 아프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그 따위 말 집어치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열심히 사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성경의 말씀이 우리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위대한 생애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나이 많아 이제 다 세상의 희망을 접을 자리에 왔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오직 절망과 체념, 원망만 남겨놓았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힘이 없을 때에도 기적을, 보잘 것 없을 때에도 위대함을 약속하고 있다.》
지금이 그때다. 우리로 우리의 생애의 결말을, 예수님의 부활의 승리같이 세상적 조건을 뛰어넘는 믿음의 승리를, 생명의 약속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증언하는 감사와 자랑을 열매 맺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소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