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박영선목사 / 다시 보는 열왕기(8) / 2021.10.31.]

nazunzaro 2021. 11. 7. 15:21

● 하나님이 왜 이렇게 긴 시간에 걸쳐서 이 씨름을 하겠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에 그렇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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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열왕기_8 / 2021.10.31.]

성경에 이런 기록들을 남기는 이유가, 이 역사를 남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적인 현실이 있다. 이스라엘 선민이 하나님을 모르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왕실의 왕들이 붙잡혀 가고 하는 일들이 도대체 왜 일어났느냐,에 그런 분함과 비난 일색으로 이 과거를 돌아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아수르에 팔고 남왕국을 바벨론에 판, 내어준 바 된 일들을 뭘 그게 교훈이 된다고 남겼는가? 하는 게 이제 우리의, 독자의 질문이 된다.

쉬운 이해는 이분법이다. 여호와를 따르면 성공하고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면 망한다, 그게 쉽다.

그 쉬운 얘기를 이 긴 세월, 북왕국이 약 200년, 남왕국이 약 350년간을 반복적으로 행해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거다.

그러니까 아비야가 왕이 될 때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아들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해서 스물여덟 명의 아들 중에 아비야를 택하고 나머지는 혹시 문제가 있을까 봐 왕위에 오르지 못한 다른 형제들은 전국에 분산시켜서 탈이 없게 했다, 아까 우리 봤다, 지혜롭게 행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쯤은 우리가 안다. 이 왕권을 둘러싼 정치세력의 충돌이라는 것은 끝까지 귀추를 알 수가 없다. 여기에는 또 왕족의 모든 친척들이 섞이고 외척이 있고 친족들이 있는데, 보통 외척의 세력이 크다. 왜 크냐 하면 그 자식을 그 부인이 낳지 않은가? 왕비와 처가 쪽이 자식에 대한 애착심은 친가 쪽보다 더 강하다.
그런 일들을 어떤 참혹한, 반복되는,여호와의 신앙과 우상을 섬기는 헛된 신앙의 대치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정치력 싸움, 파벌 싸움, 누가 왕권을 차지해야 되나 하는 권력의 싸움으로 점철된 역사가 350년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효과가 있냐? 이 기록이 뭐냐?

이스라엘은 이것을 자기네 역사로 가짐으로써 이스라엘이, 이게 통칭이다, 남북왕조를 합쳐서, 이스라엘의 정신을 여기에 담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신을 담는다는 것은, 우리는 정신이라는 것이 완벽한 명분으로 초시간적인 진리라고 생각하는데, 역사를 보면 그런 모두가 항복할 만한 명분을 얻는 데는 길고 지난한 그 모순과 갈등과 실패의 역사를 갖는다고 얘기를 하는 거다.
쉽게 하나님만이 최선이다, 하나님만이 유일하다, 이렇게 답을 얻는 과정은 마치 하나님과 우상 중에 아무도 다 신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고 변명에 불과했었다 하는 역사가 있었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가장 크게 얻어 걸리는 시험이 뭐냐 하면, 예수를 믿기로 하면 그걸로 내가 할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을 하고, 다 끝났는데 왜 현실적으로 다 끝난 고백, 그리고 다 바친 진심이 보상을 받지 못하는가에서 헤매게 된다.

우리는 사실 하루가 바쁘다. 하루는 일주일보다 길고, 일주일은 1년보다 길고, 눈 깜빡하면 7, 80년이 후딱 지나간다.
그동안 뭘 했냐? 실패한 것밖에 없다. 잘한 건 기억이 안 나고, 잘못한 것만 기억이 나는데, 그게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갔느냐? 이렇게 묻는 것이다.
어디로 데려가나? 우리는 분명히 자책도 겪었을 것이고, 절망도 겪었을 것이고, 그래서 분노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일 많이 하는 게 체념이다. 믿는 건 믿는 거고, 현실은 현실인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저 내가 죄인이지. 그거 내가 죄인이지.'​
우리 어른 선배님들, 목사님들 다 돌아가신 분들이 평생 하는 말이 설교를 하든, 기도를 하든, 대화를 하든 '내가 죄인입니다' 이 말을 해야 '저는 아무개입니다' 이렇게 명함을 내밀듯이, 다 그냥 외운 구절 같이, 그렇게 얘기를 하곤 했다.

그래야 참으로 진실하고 말이 되고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얘기하는 건 사실은, 우리가 우리 인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이렇게 한 번의 진심 한 번의 각오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각오를 현실적 도전, 여기 지금 열왕기에서는 권력의 싸움 속에 들어가면 권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하는 수 밖에 없다. 살고 봐야 되니까.
'그까짓 거 그냥 목숨을 바치면 되잖아?' 그건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의 얘기고, 선택의 여지가 있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사는 것이 첫 번째 책임이다. 왜냐하면 비겁하게 다 타협하고 사는 게 그게 신앙이야? 죽는 게 최고의 포기이다. 죽으면 끝이다. 죽으면 더 이상 아무 책임이 없어진다.

■살면, 살아있는 동안은 매일이 마치 어제가 없었던 것 같이 새삼스럽게 아슬아슬하다.
여기를 무슨 뚜렷한 어떤 승리의 기억, 뚜렷한 완벽한 해결이 없는 채로 살아야 하는 것이. 사실 우리 신자들에게는 제일 괴로운 것이다.

■그런데 이제 열왕기를 하면서 이 사람들이 350년을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왔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일이 어떻게 만들어져 가는가를 기록하고 있다는 걸, 350년이나 하고도 또 한참 더 해야 되는데, 우리 까짓것 한 7, 80년 인생은
겪을 만하지 않나?

■그리고 그것이 정상적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건 얼마나 위로가 되나?
어떤 정상적인 그 과정이 되나? 우리가 현실을 해결하기 위하여 타협한 것이,
타협해서 얻은 결과물이 별것 아니라는 걸 아는데 평생이 걸리는 거다.

성공, 승리, 만족, 우리 뭐 보통 무병장수, 부귀영화, 만사형통이 살아보면 그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아서, 과거에 자기가 그 눈앞의 해결을 위하여,
그저 실력이 없어서 타협하고 눈 질끈 감고 저질러버린 모든 비겁한 것들이,
이제 내가 나를 버리고 취한 결과가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선택은 딱 하나밖에 없다. 멋있어지는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그런 거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이걸로 확인하면 된다. '내가 다시 젊은 때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하는 거는 가장 어리석은 얘기이다.
그동안 우리가 겪은 게 지금 만들어야 하는 결과를 부인하고, 다시 돌아가면 실패하지 않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
그걸 후회하고 우리가 절망하는 것이 지금 우리를 여기까지 만들어오고 이끌어 왔다는 걸
거부한다면 구약 성경이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도대체 왜 있는 건가?
하나님이 왜 이렇게 긴 시간에 걸쳐서 이 씨름을 하겠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에 그렇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은 쌓인다.

그러니까 여기에 나온 이 이야기들, 아비야는 승승장구하고 마음껏, 마음껏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아내를 열넷, 아들이 스물둘, 딸을 열여섯이나 벌써 그때 왕이 된 지 2년밖에 안 되는 사이에.
그 전부터 왕성한 의욕을 가졌을 것이다. 어떤 왕성한 의욕을 가졌느냐? 여기 이 여로보암과의 싸움에서
그가 아버지를 이렇게 평하는 것을 보게 된다. 13장 6절로 가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자기의 주를 배반하고 난봉꾼과 잡배가 되어
잡배가 모여 따름으로 스스로 강하게 되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였으나 그때 로호보암이
어리고 마음이 연약하여 그들의 입을 능히 막지 못했었느니라"
여로보암은 안다. 자기 아버지가 우유부단했다, 아버지가 갈팡질팡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죽은 거 같다.

그가 죽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교훈을 만들고 있고 하나님이 목적한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우리는 늘 회개가 다이고 정답을 말하는 게 다인 그런 거죽만 신자이지,
■자기의 인생을, 자기의 현실을, 자기가 닥친 문제에서 신자답게 되는 일에 대하여 성경에서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한 자들이 되는 거다.
그러면 불행하지 않은가?
​​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생을 살아서, 빨리 죽어서 천국 갈 생각,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자신 있느냐?'
그게 다인 인생을 산다. 오늘을 살지 못하고. 지금을 살지 못하고.
현실에, 내 앞에 주어진 도전 앞에서 신자가 어떻게 갈등하며, 내가 어떤 과거에 그런 모든 것들을
거쳐 와서 이 자리에 왔는가에 답들이 나오기 시작해야 될 거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코로나가 벌어지자 세상이 그냥 교회에다 다 책임을 집어던졌다.
'교회 책임이라'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세상은 다른 기대가 없어서 그렇다, 소망이 없어서.
교회는 이걸 받자 서로 다 서로 비난했다. '교회가 왜 그래? 그 교회는 왜 그래? '
그 교회는 왜 그래..가 아니다. 교회 보고 말할 문제가 아니고 우리 각각이다.
신자들이 수준이 있어야 된다. 실력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교회가 되는 것이지,
교회가 신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신자들이 모여서 교회를 만들기로 한 거 아닌가?

그러니 우리 각자가 이 시대에, 우리의 현실은 늘 불안하다. 그리고 두렵다. 혼란스럽다.
세상은 그렇게 우리를 친다. 우리가 살아온 나날들의 경험들이 그 정체를,
세상이 우리를 어디 어디에 끌고 가는가를, 이해한다면, 이제 간파할 수 있다면,
정당한 신앙생활이 우리의 책임이고, 우리의 몫이고,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인생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모여서 자기네끼리 웃고 떠들고가 끝이 아니라
이 세상의 빛이고 생명이고 진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우리 교회 되어야 한다.
우리 각각이 신자의 큰 지혜와 용기와 소망의 열매를 맺는 그 생애가 되어야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