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nazunzaro 2020. 3. 5. 23:03

타인에 대하여, 내가 처하는 정황에 대하여, 사랑으로 - 곧 순종,감수함,섬김으로, 관용,용서,포용으로, 온유 겸손으로, 친절,따뜻함,예의로 - 반응하기로, 대하기로 하는 오늘부터 내 하루가 달라진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수십년 동안의 날들의 미숙함, 오류, 미완성의 길을 거쳐서 이제야 제대로 된 길에 접어들게 된 기독신앙의 길이다.

마치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오류를 거쳐 어깨가 아프고 힘이 빠진 노구가 된 지금에서야 제대로 이르게 된 골프 스윙과 같이.

물론 오늘이 있기 까지는 그동안 방황과 좌절이 있었기에 가능한거다. 산이 높으면 그 골도 깊듯이, 그간 방황이 컸던 만큼 길도 분명하다.

 

사랑이라는 일견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그 정의 자체가 너무 광범위하여 오해되기 십상인 덕목의 구체적 모습 양태는, 남 섬김 용서 온유 겸손 따뜻함 배려 공감 친절 예의 절제 자비 양선이다.

 

이러한 사랑의 덕목들은 별개로 독립적으로 다니지 않는다. 그 자체로만 추구되면 추상화되고 관념화되어 허상이 되고 만다.

이는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 처한 정황, 타인에 대한 자신의 반응, 태도, 자세, 마음가짐을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만 구현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말은 너무 광범위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일과 행위에 붙어서만 존재하는, 태도 자세 마음가짐으로 구현되는 덕목이다.

그래서 가능한 구체적 모습, 양태로 표현하는게 더 바람직하다. 즉 사랑이란 말 보다는 남을 섬김, 용서, 포용, 관용, 온유, 겸손, 따뜻함, 예의, 찬절이란 말을 쓰는게 좋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30-31)

 

예수께서 말하신 가장 복되고 큰 이 계명은 다음과 같이 보다 더 구체적이고 적확한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네 모든 삶의 일에 정황에 임하고 반응함에 있어서, 그리고 네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섬기고 용서하고 관용하고 포용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복종과 충성의 마음으로, 친절과 예의의 태도로, 분위기로, 자세로, 마음가짐으로 반응하고 임하고 대하라>

 

이렇게 반응하고 대하기로, 존재하기로 하면, 우리의 오늘 하루는 기대와 복과 기쁨과 영광과 명예와 생명이 충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