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그 온유와 겸손의 실력이 40년동안의 미디안광야 생활을 통하여 만들어졌다
우리는 하루가 편하기를 바라고 근심이 없어야 하나님이 내 편을 들고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난과 짐은 하나님이 우리를 기르시고 키우시는 진정한 복이다.
하나의 생명이 아무 고민 없이 길게 살다가 천국에 들어가 영원토록 존속하도록 부르시지 않았다.
천국이 대기실이나 거실 정도가 아니라 금면류관과 황금 길과 영생을 약속하고 있는데,
거기서 살만한 준비된 내용과 결과를 만들기 위하여 우리 인생이 있는 것이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이 철저히 침묵하고 외면했다고 하나님께 불평했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하나님이 되기를 중단한 적이 없고 네 생애 속에서 떠난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모세가 마지막 40년을 광야에서 살 때, 하나님은 모세를 <겸손하고 온유하기가> 인류역사상 최고였다고 평가한다.
모세의 그 실력이, 그의 겸손과 온유가, 미디안광야 40년 생활에서 만들어졌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 수난과 고통과 오해와 배신과 십자가의 고통으로 당신의 실력을 증언하신 것 같이,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가장 상징적으로 십자가를 앞세우는 것 같이,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고 복 주시려는 지혜와 기적의 길이며,
이 세상이 소원하는 평화와 행복과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는 커다란 두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걸려 있다. 정치 사회 문제에서 혼란스러운 현실을 살고 있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있기에, 죄와 사망과 공포가 으르렁거려도 하나님의 자녀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작은 일은 믿음으로 컨트롤 하면서도, 커다란 재앙 앞에서 불현듯 작은 이기심으로 돌아가서 안심을 구한다.
하나님이 역사에 도전하시고 근본을 흔드실 때, 사망밖에 없는 자들이 산속으로 도망가고 바위틈 속으로 도망가며 몸 둘 바를 모를 때, 우리만이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무엇이 더 겁이 나겠는가?
우리가 받은 교육이 무엇인가? 하나님 외에 답이 없다는 것이다.
잠시 가지는 평안이 있다면 숨 쉬게 하는 것이요, 재충전케 하여 다시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한 것이다.
쉬운 것으로 신앙을 대신하고 타협하는 바람에, 별 것 아닌 문제에도 골수가 병드는 심각한 낙심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마스크 하고 다녀야 한다. 기본자세이다. 겁이 나서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이 세상을 이기고 병을 이기고 공포와 죽음을 이긴다는 것 기억하고,
신앙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며 공포에 떠는 세상 앞에서 무얼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는지 웃을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 하루 우리를 만나는 사람 앞에 우리가 져야 하는 짐을 져야 한다.
만만치 않겠지만, 우리 안에 생명과 진리가 채워져,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얼굴에서 광채와 생명과 소망을 보는
기적의 증인이 되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우리를 위협하고 방해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는다.
우리는 귀한 말을 할 수 있다. '예수 믿고 영생의 삶을 삽시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의 귀한 인생이 복 받기 원합니다'
이런 말과 태도와 표정이 우리 인생의 자랑이고 영광이 되는 생애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