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소망회 / 박영선목사 / 2022 개강/ 엡 5:15-21 / 2022.04.06]
nazunzaro
2022. 4. 9. 07:45
- 영생이란 말은 '영원토록 산다' 그런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이제부터는 가치가 있고 소망이 있고 긍정적이고 또 《명예롭고 영광되고 하는 쪽으로》 이제는 부름을 받았다' 그런 뜻이다.
- '나쁜 짓, 헛된 일 이런 건 안 해야겠다'라는 것은 그걸로가 전부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잘해야 되는 데까지'로 우리를 밀어야 된다.
그러니까 '무엇을 안 해야 된다'가 아니라 하나씩 적극적으로 《명예 영광 영원한 가치를 담는 일》을 잘 하는 데까지로, 그래서 《위대함과 책임》과 스스로에게 가해야 할 적극적인 소망의 길로 더 가야 된다.
- 지혜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와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의 생애 속에서 《어디로》 데려가시려 하고 《무엇을》 하게 하시려는가?'를 아는 것이다
- '헛되게 살지 말아라,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방탕하다는 것은 도덕적 표현이 아니고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그냥 허비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여기 우리가 꼭 해야 되는 행동지침이 있다;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해야》 된다"는 거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을 만나면 이 말을 꼭 하라; "반갑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의》를 갖춰야 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다. 《상대방의 존재를 대접해줘야》 한다.
"오래 참고, 성내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에서의 《영원한 가치》인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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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15-21;
"그런 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우리 속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신앙 고백을 할 때 또 기도를 할 때도 자주 사용하는 관용어 같은 표현이 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는 고백을 하는데 한국 교회의 현실적인 수준에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함을 받았다 하는 것은 도덕적 구분과 그다음에 죽어서 천국 가는 내세적 신앙으로 그 내용이 이해되고 있고 현실적으로는 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오늘 이 본문에서 보는 거 같이 이제 우리의 존재는 허망하거나 못났거나 망하거나 하는 사망으로 가는 길 죄로 가는 길에서 구원을 받았다 그런 뜻이다.
그러니까 사망으로 가지 않고 죄로 가지 않는다는 것은 죄란 이제 부패하는 것, 거짓된 것.# 망하는 것 이런 것들인데, 사망도 동일한 결론이다. 소망이 없는 것 절망이다 인데 그 반대로 구원을 받았다는 거다.
영생이라는 말을 주로 쓰는데 그러니까 영생이라는 말은 영원토록 산다 그런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그쪽보다는 이쪽 즉 '이제부터는 가치가 있고 소망이 있고 긍정적이고 또 명예롭고 영광되고 하는 쪽으로 이제는 부름을 받았다' 그런 뜻이다.
그러니까 이제 지금도 다른 모임이나 교회에 가보면 기도에는 회개가 너무 많다. 회개가 너무 많은 이유는 '잘못된 것을 안 해야겠다'라는구원에 관한 이해가 도덕적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렇다.
나쁜 짓 헛된 일 이런 건 안 해야겠다라는 것은 《잘 해야 되는 일》로 우리를 밀어야 된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너희는 성령을 따라 살아라' 그런다.
성령을 따르면 육신을 따를 수가 없고 육신을 따르면 성령을 따를 수가 없다. 동으로 가면 서로 갈 수가 없고, 서쪽으로 가면 동을 갈 수가 없는 것 같이, 긍정적으로 성령을 따라 행해야 되는데,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좀 명확치가 않고 '저쪽으로는 가면 안 된다' 하는 죄를 짓지 않는다 하는 일에 너무 깊이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신앙의 점검이 오늘 내가 뭘 잘못했나를 점검하는 데 그치면 이게 굉장히 겁이 난다. 그리고 담력이 없어지고 조심스럽고 살 맛이 없다.
★그러니까 무엇을 안 해야 된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나씩 뭐든지 적극적으로 하는 쪽이 구원받은 자의 말하자면 《위대함 그리고 책임》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해야 할 적극적인 소망의 길이다 이렇게 알아야 된다.
그래서 오늘 여기 본문에도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라. 지혜를 사용해라' 하는 것은 《잘하는 쪽에 최선을 다해라》 하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지혜는《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의 생애 속에서 어디로 데려가시려 하고 무엇을 하게 하시려는가?》 하는 거다.
그것이 이제 '세월을 아끼라.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라' 이런 말들로 계속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 어디서나 보는 것 같이 잘못을 안 하는데 급급해 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는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방탕하는 것이다.
얻은 기회, 우리가 얻은 구원이 우리에게 준 기회, 우리에게 준 지위, 우리에게 준 운명을 살지 않고 이렇게 헛되게 살지 말아라.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
방탕하다는 것은 도덕적 표현이 아니고,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그냥 허비해 버리는 것을 말하니까,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보자.
제가 자주 쓰는 그 행동 지침이지만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해야 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 말을 꼭 해보라. 반갑습니다 그 말을 하면 그다음이 매우 쉽다. 좋은 말이 오가게 된다.
그런데 이게 보고 그냥 지나가면 마음에, 저게 멋대가리 없이.. 그런 생각이 들어온다.
●굉장히 큰 차이이다. 이 아주 분기점이 되는 데, 그러니까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하고, 반갑지 않으면 안녕하세요 그렇게 말하라.
그러니까 안녕하세요는 이게 이제 저급한 인사인거다. 아직도 안 죽었습니까? 그런 말이 될 수 있으니까 반갑습니다를 해야 되고,
여기 이제 나오는 대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서로 격려하고, 서로 편을 들고, 서로 동료의식, 가족 같은 친밀함을 가지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며..",
감사할 수 있다는 거는 놀라운 일이다. 감사할 실력 행동 수준이 돼야 되는 거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거를 약속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스도를 격려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예의》를 갖춰야 된다. 굉장히 중요한 거다. 《상대방의 존재를 대접》해줘야 한다.
그 사랑장에서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오래 참고, 성내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이런 것들이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사랑이 완벽한 표현으로 드러나기를 바라고, 죄는 최악의 경우로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죄는 말하자면 이렇게 《자기 갈 길》을 가지 않는 것이 죄의 길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안 가고 있는 게 죄, 방탕한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나한테 주어진 기회를 살리는 것, 지혜로운 길, 신앙의 길, 그렇다.
●한꺼번에 완성이 되는 게 아니라 작게 시작을 해야 되는데, 그 《작게 시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런 거는 가치 없게 생각을 해서, 이렇게 명분에 치우치고 보란 듯한 업적을 남기려고 하는 바람에, 실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우리 일상은 매우 작은 일들로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 작은 일들에서 이 방향, 이 선택, 이 용기, 이런 각오, 이런 명예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첫 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다.
우리가 소망회로 모이면 분위기에 매우 좋다. 다 늙은 사람끼리 모여서 그럴 거다. 근데 어디 밖에 나가보면 젊은이들 많은 데는 들어가 있으면 위축이 되더라. 그 어느 뭐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전부 애들 뿐인 거다. 나는 내가 늙은 줄 몰랐는데 다 날 쳐다봐서 나는 순간적으로 나를 다 알아보는구나 그랬더니, 표정이 나쁘더라. '노인네가 여긴 왜 들어왔습니까?' 이런 표정이더라. 그때 뭐 시침이 떼고 얼른 하나 사 가지고 빨리 나와야지.
그리고 우리가 모이면 우리는 친숙하다.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많은 세월 속에서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온 베테랑들이기 때문에 함께 웃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 하나 더 가서 아까 같은 경우 제가 예를 들었던 것 같이, '늙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 섰을 때 그 어른다워야 된다.
어른다운 거는 제일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를 떳떳이 하고 있으면 된다. 커피 먹으러 들어왔으면 떳떳하게, '뭐 드실래요?' 그러면 '아메리카노, 라떼?' 하고 떳떳하게 시키고 지불하고 그리고 당당하게 나가면 된다. 거기서 뭐 이렇게 휘둘러 보고 무슨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내가 떳떳한 것이 신앙상의 첫 번째 태도이다.
오해를 받든가 또는 세상에서 푸대접하는데, 나이가 든다는 게 뭔지 모르는 그들과 우린 다르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겪어 온 사람이다. 우리는 할 말이 있는 사람이고, 듣지 않으면 우리가 솔선수범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예수 믿은 나이값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놓았으면 살려놓은 이유에 적극적인 책임들이 있다.
혹시 상대방에게 오해를 사지 않았을까, 상대방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을까 하는 이런 마음들을 딱 지워야 된다.
●십자가를 지는 거다. '이게 비참하고, 힘들고.. 너희 때문이야..' 이런 표정 안 지으신다. 그저 자기 고난을 홀로 지고 가신다. 굉장히 멋있다. 오죽하면 넘어지셨겠는가? 오죽하면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갔겠는가? 그러나 당당히 가신다.
●이 신앙인으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이런 자부심, 자존심, 그리고 현실을 우리 소망회 여러분들이 기억해서,
세상이 우리를 몰라보는 건 세상이 예수를 몰라보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인류의 운명을 바꾼 일이고, 우리가 우리의 나이에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 속에 서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만 소망과 진리와 빛과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누가 알아보느냐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존재론적인 《이 명예와 책임을 감수하는》, 그 즐길 수 있는 자리까지 가는 우리 소망회원들 그리고 우리 모임 되어야 한다.///
(기도)
우리 소망회, 이제 다시 영상으로나마 만나고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함께 모여 우리 인생에서 누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들과 명예들과 그리고 기적들을 나누고 싶다.
속히 함께 모일 시간을 주시고 모이기까지 위하여 기도하고 연락하고 반가워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동안 겪은 모든 일에서 깨달은 예수를 믿는 위대함, 그 운명의 기가 막힌 기적들에 대하여 더 깊어진 신앙의 내용들이 함께 공유되고 함께 폭발하여,
희망 없는 시대에, 이 들을 것 없고 볼 것 없는 그 현실에 ●우리가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신 예수님의 제자요 축복과 기적을 증언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대사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에게 언제나 함께하셔서 그 손길들이 언제나 기적을 이루게 하시고, 그 눈들이 언제나 따뜻한 위로와 행복이 되게 하여 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
오늘 떠밀려서 할 수 없이 이제 또 소망의 설교를 매주 해야 되게 생겼다. 나이가 들면 이제 제일 강해지는 게 뭐냐 하면 '누가 뭐래도 고집을 부릴 수 있는 거' 이게 그저 최고의 특권이 아닌가 싶다.
우리 열심히 해서 다들 만났을 때에 우리 기쁜 얼굴로 만나는 소망회 되기로 하자. 집에서 이 영상 보시는 분들께도, 동일한 은혜와 동일한 찬송과 그리고 넘치는 기적들의 증거가 있으시기 바란다.
- '나쁜 짓, 헛된 일 이런 건 안 해야겠다'라는 것은 그걸로가 전부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잘해야 되는 데까지'로 우리를 밀어야 된다.
그러니까 '무엇을 안 해야 된다'가 아니라 하나씩 적극적으로 《명예 영광 영원한 가치를 담는 일》을 잘 하는 데까지로, 그래서 《위대함과 책임》과 스스로에게 가해야 할 적극적인 소망의 길로 더 가야 된다.
- 지혜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와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의 생애 속에서 《어디로》 데려가시려 하고 《무엇을》 하게 하시려는가?'를 아는 것이다
- '헛되게 살지 말아라,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방탕하다는 것은 도덕적 표현이 아니고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그냥 허비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여기 우리가 꼭 해야 되는 행동지침이 있다;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해야》 된다"는 거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을 만나면 이 말을 꼭 하라; "반갑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의》를 갖춰야 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다. 《상대방의 존재를 대접해줘야》 한다.
"오래 참고, 성내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에서의 《영원한 가치》인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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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15-21;
"그런 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우리 속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신앙 고백을 할 때 또 기도를 할 때도 자주 사용하는 관용어 같은 표현이 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는 고백을 하는데 한국 교회의 현실적인 수준에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함을 받았다 하는 것은 도덕적 구분과 그다음에 죽어서 천국 가는 내세적 신앙으로 그 내용이 이해되고 있고 현실적으로는 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오늘 이 본문에서 보는 거 같이 이제 우리의 존재는 허망하거나 못났거나 망하거나 하는 사망으로 가는 길 죄로 가는 길에서 구원을 받았다 그런 뜻이다.
그러니까 사망으로 가지 않고 죄로 가지 않는다는 것은 죄란 이제 부패하는 것, 거짓된 것.# 망하는 것 이런 것들인데, 사망도 동일한 결론이다. 소망이 없는 것 절망이다 인데 그 반대로 구원을 받았다는 거다.
영생이라는 말을 주로 쓰는데 그러니까 영생이라는 말은 영원토록 산다 그런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그쪽보다는 이쪽 즉 '이제부터는 가치가 있고 소망이 있고 긍정적이고 또 명예롭고 영광되고 하는 쪽으로 이제는 부름을 받았다' 그런 뜻이다.
그러니까 이제 지금도 다른 모임이나 교회에 가보면 기도에는 회개가 너무 많다. 회개가 너무 많은 이유는 '잘못된 것을 안 해야겠다'라는구원에 관한 이해가 도덕적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렇다.
나쁜 짓 헛된 일 이런 건 안 해야겠다라는 것은 《잘 해야 되는 일》로 우리를 밀어야 된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너희는 성령을 따라 살아라' 그런다.
성령을 따르면 육신을 따를 수가 없고 육신을 따르면 성령을 따를 수가 없다. 동으로 가면 서로 갈 수가 없고, 서쪽으로 가면 동을 갈 수가 없는 것 같이, 긍정적으로 성령을 따라 행해야 되는데,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좀 명확치가 않고 '저쪽으로는 가면 안 된다' 하는 죄를 짓지 않는다 하는 일에 너무 깊이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신앙의 점검이 오늘 내가 뭘 잘못했나를 점검하는 데 그치면 이게 굉장히 겁이 난다. 그리고 담력이 없어지고 조심스럽고 살 맛이 없다.
★그러니까 무엇을 안 해야 된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나씩 뭐든지 적극적으로 하는 쪽이 구원받은 자의 말하자면 《위대함 그리고 책임》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해야 할 적극적인 소망의 길이다 이렇게 알아야 된다.
그래서 오늘 여기 본문에도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라. 지혜를 사용해라' 하는 것은 《잘하는 쪽에 최선을 다해라》 하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지혜는《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의 생애 속에서 어디로 데려가시려 하고 무엇을 하게 하시려는가?》 하는 거다.
그것이 이제 '세월을 아끼라.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라' 이런 말들로 계속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 어디서나 보는 것 같이 잘못을 안 하는데 급급해 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는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방탕하는 것이다.
얻은 기회, 우리가 얻은 구원이 우리에게 준 기회, 우리에게 준 지위, 우리에게 준 운명을 살지 않고 이렇게 헛되게 살지 말아라.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
방탕하다는 것은 도덕적 표현이 아니고,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그냥 허비해 버리는 것을 말하니까,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보자.
제가 자주 쓰는 그 행동 지침이지만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해야 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 말을 꼭 해보라. 반갑습니다 그 말을 하면 그다음이 매우 쉽다. 좋은 말이 오가게 된다.
그런데 이게 보고 그냥 지나가면 마음에, 저게 멋대가리 없이.. 그런 생각이 들어온다.
●굉장히 큰 차이이다. 이 아주 분기점이 되는 데, 그러니까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하고, 반갑지 않으면 안녕하세요 그렇게 말하라.
그러니까 안녕하세요는 이게 이제 저급한 인사인거다. 아직도 안 죽었습니까? 그런 말이 될 수 있으니까 반갑습니다를 해야 되고,
여기 이제 나오는 대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서로 격려하고, 서로 편을 들고, 서로 동료의식, 가족 같은 친밀함을 가지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며..",
감사할 수 있다는 거는 놀라운 일이다. 감사할 실력 행동 수준이 돼야 되는 거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거를 약속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스도를 격려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예의》를 갖춰야 된다. 굉장히 중요한 거다. 《상대방의 존재를 대접》해줘야 한다.
그 사랑장에서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오래 참고, 성내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이런 것들이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사랑이 완벽한 표현으로 드러나기를 바라고, 죄는 최악의 경우로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죄는 말하자면 이렇게 《자기 갈 길》을 가지 않는 것이 죄의 길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안 가고 있는 게 죄, 방탕한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나한테 주어진 기회를 살리는 것, 지혜로운 길, 신앙의 길, 그렇다.
●한꺼번에 완성이 되는 게 아니라 작게 시작을 해야 되는데, 그 《작게 시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런 거는 가치 없게 생각을 해서, 이렇게 명분에 치우치고 보란 듯한 업적을 남기려고 하는 바람에, 실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우리 일상은 매우 작은 일들로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 작은 일들에서 이 방향, 이 선택, 이 용기, 이런 각오, 이런 명예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첫 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다.
우리가 소망회로 모이면 분위기에 매우 좋다. 다 늙은 사람끼리 모여서 그럴 거다. 근데 어디 밖에 나가보면 젊은이들 많은 데는 들어가 있으면 위축이 되더라. 그 어느 뭐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전부 애들 뿐인 거다. 나는 내가 늙은 줄 몰랐는데 다 날 쳐다봐서 나는 순간적으로 나를 다 알아보는구나 그랬더니, 표정이 나쁘더라. '노인네가 여긴 왜 들어왔습니까?' 이런 표정이더라. 그때 뭐 시침이 떼고 얼른 하나 사 가지고 빨리 나와야지.
그리고 우리가 모이면 우리는 친숙하다.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많은 세월 속에서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온 베테랑들이기 때문에 함께 웃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 하나 더 가서 아까 같은 경우 제가 예를 들었던 것 같이, '늙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 섰을 때 그 어른다워야 된다.
어른다운 거는 제일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를 떳떳이 하고 있으면 된다. 커피 먹으러 들어왔으면 떳떳하게, '뭐 드실래요?' 그러면 '아메리카노, 라떼?' 하고 떳떳하게 시키고 지불하고 그리고 당당하게 나가면 된다. 거기서 뭐 이렇게 휘둘러 보고 무슨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내가 떳떳한 것이 신앙상의 첫 번째 태도이다.
오해를 받든가 또는 세상에서 푸대접하는데, 나이가 든다는 게 뭔지 모르는 그들과 우린 다르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겪어 온 사람이다. 우리는 할 말이 있는 사람이고, 듣지 않으면 우리가 솔선수범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예수 믿은 나이값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놓았으면 살려놓은 이유에 적극적인 책임들이 있다.
혹시 상대방에게 오해를 사지 않았을까, 상대방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을까 하는 이런 마음들을 딱 지워야 된다.
●십자가를 지는 거다. '이게 비참하고, 힘들고.. 너희 때문이야..' 이런 표정 안 지으신다. 그저 자기 고난을 홀로 지고 가신다. 굉장히 멋있다. 오죽하면 넘어지셨겠는가? 오죽하면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갔겠는가? 그러나 당당히 가신다.
●이 신앙인으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이런 자부심, 자존심, 그리고 현실을 우리 소망회 여러분들이 기억해서,
세상이 우리를 몰라보는 건 세상이 예수를 몰라보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인류의 운명을 바꾼 일이고, 우리가 우리의 나이에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 속에 서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만 소망과 진리와 빛과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누가 알아보느냐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존재론적인 《이 명예와 책임을 감수하는》, 그 즐길 수 있는 자리까지 가는 우리 소망회원들 그리고 우리 모임 되어야 한다.///
(기도)
우리 소망회, 이제 다시 영상으로나마 만나고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함께 모여 우리 인생에서 누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들과 명예들과 그리고 기적들을 나누고 싶다.
속히 함께 모일 시간을 주시고 모이기까지 위하여 기도하고 연락하고 반가워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동안 겪은 모든 일에서 깨달은 예수를 믿는 위대함, 그 운명의 기가 막힌 기적들에 대하여 더 깊어진 신앙의 내용들이 함께 공유되고 함께 폭발하여,
희망 없는 시대에, 이 들을 것 없고 볼 것 없는 그 현실에 ●우리가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신 예수님의 제자요 축복과 기적을 증언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대사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에게 언제나 함께하셔서 그 손길들이 언제나 기적을 이루게 하시고, 그 눈들이 언제나 따뜻한 위로와 행복이 되게 하여 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
오늘 떠밀려서 할 수 없이 이제 또 소망의 설교를 매주 해야 되게 생겼다. 나이가 들면 이제 제일 강해지는 게 뭐냐 하면 '누가 뭐래도 고집을 부릴 수 있는 거' 이게 그저 최고의 특권이 아닌가 싶다.
우리 열심히 해서 다들 만났을 때에 우리 기쁜 얼굴로 만나는 소망회 되기로 하자. 집에서 이 영상 보시는 분들께도, 동일한 은혜와 동일한 찬송과 그리고 넘치는 기적들의 증거가 있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