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소망회 / 2021.12.08 / 고린도전서 15:50-58]
nazunzaro
2021. 12. 10. 01:22
●예수의 성육신을 따라 사는 것, 이것이 신자의 능력이다. 내 인생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 외로움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신의 영광,구원의 증거,유일한 기쁨,생명,진리가 된다
====================
[소망회 / 2021.12.08 / 고린도전서 15:50-58]
■ 《내 인생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 외로움 같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성육신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영광, 모든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증거, 유일한 기쁨, 생명, 진리가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설명하시는 최고의 내용이 《성육신, 그의 죽음》이다. 그의 사랑은? 그의 죽음이며, 그의 부활이다. 신자된 우리의 능력은? 우리가 그의 성육신을 잇는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고 구원인 증인으로 제자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잇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예수의 성육신을 따라 사는 것, 이것이 신자된 우리의 능력이다
================
오늘 성경 말씀은 고린도전서 15:50부터이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성도들의 영생의 부활을 증언하는 장이다.
그래서 자주 장례식 때 이 본문을 쓴다. 장례식을 하면 대부분 이제 예전에는 장례식이라 그랬는데, 점점 이름을 바꿔서 천국환송식 이렇게 이제 이름이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이 부활장이 증언하는 핵심에서 약간 벗어났고 조금 미흡한 표현이다.
'울지 말고 감사로 보내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는데 그것보다 무슨 깊은 뜻이 있냐 하면, '우리가 그 엘리야 같이 그냥 이렇게 예수 믿다가 늙으면 때가 되면 하나님이 불병거로 데려가시면 훨씬 멋있는데 왜 죽게 하시는가?' 그렇게 더 물어봐야 된다.
죽는 건 비참해 보이고 어쨌든 슬픈 일인데 하나님이 평생 고생한 그리고 충성한 성도들을 기왕 데려가시는 마당에 '이렇게 아픔과 슬픔으로 이별하게 하시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
근데 이 '우리가 다 변화될 것이라' 이렇게 얘기하면서 '마지막 날에 부활 때에는 그리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55절 이하에 보는 대로 사망을 조롱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 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렇게 된다.
사망을 조롱한다는 건 여기서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가 죽으면 마치 사망이 이긴 것 같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예수 믿는 것도 다 뭐 별거 없다, 똑같이 죽는다' 이럴 테지만,
●예수 안에서 이김을 주신다 그런 말은 우리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연상시키고 말하자면《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승리라는 열매를 맺으신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만났을 때 제자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도대체 무슨 그렇게 심각한 얘기를 주고받느냐?' 그러니까,
'아, 당신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단 말이오? 우리는 그가 메시아인 줄 알았는데 그만 죽었단 말이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완악하고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리스도가 즉 메시아가 ●《고난으로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성경이 이렇게 증언했는데, 그걸 모른단 말이냐?'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니까 이걸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살아 생전에도 죽음과 폭력 속에서 예수 믿는 일이 활발한 증언들을 못 얻고, 수동태로 이렇게 고난과 오해를 감수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것도 억울한데 죽음까지 겪는 건 너무하다 하는 데 대하여,
예수를 등장시킴으로, ●세상이 죽었다고 하는 것이 이제 예수로 말미암아서는 너희가 심는 것이 된다. 그 씨를 심으면 땅이 '나는 씨를 삼켰다' 그러는데, 하나님은 땅 보고 '내가 씨를 심었다' 그러신다는 거다.
우리의 죽음은 우리가 이렇게 '잠시 사별한다, 뭐 일단 죽고 다음에 이제 종말에 가서 부활한다'라는 개념보다 크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과 함께하셨고, 그리고 한 알의 밀알로 땅에 심으셨다, 이 일로 더 많은 열매가 맺힌다.
한 알 그대로 있으면 뭐였나? 썩어 없어지고.. 땅에 심으면?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고..
놀라운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죽음을 조롱하는, 그래서 이게 말하는 대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이건 아니다 싶은 거, '왜 이렇게 하셨어요?' 같은 일들이 예수를 믿는다면, 그러니까 기독교는 하나님이 제1의 권세자인데도 예수를 믿는다는 말을 쓰느냐 하면,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어떻게 일하시는가가 구체적으로 증거된, 하나님이 증거된 분이기 때문에 예수를 앞세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의 생애, 그의 성육신과 그의 순환과 그의 죽음이 다 일을 하는 거라는 걸 안다면, 세상은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를 죽이는 것 밖에는, 그 권력의 최고의 절정이 사람을 잡는 게 불과한데,
우리는 살리는 것이라는 걸, 하나님이 우리를 심어서 많은 열매를 맺으신다는 사실 앞에 우리의 인생과 '죽음이잖아, 결국..' 하는 그 말까지,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마지막 카드가 된다, 더 큰 절정이 된다, 이런 것이 신자들에게서는 사별, 장례식이며,
★■우리의 모든 인생에서 겪는 어려움 외로움 같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성육신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영광, 모든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증거, 유일한 기쁨, 생명, 진리 이렇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는 그런 행복에 관한, 위대한 명예에 관한 단어들이 다 추상적이지만, 성경에서는 구체적이다. 예를 들면 사랑, 영광 이런 것들이 우리는 어떤 윤리나 명분으로 설명해야 되지만, 성경에서는 《예수》이다.
예수님의 오심이 아버지의 영광, 아버지께서 당신을 설명하시는 최고의 내용이 성육신, 그의 죽음.
★그의 사랑은? 그의 죽음, 그의 부활.
★우리의 능력은? 우리가 부활 생명을 가졌을 뿐 아니라 우리가 성육신을 잇는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고 구원인 증인으로 제자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잇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여기에 신자된 기쁨과 감격이, '우리 나이 많이 들어서 이제 아무 희망이 없다, 이제 뭐 나 할 거 없다.' 그딴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더 큰 일 하시려고 이 나이 먹게 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 열심히 기도하고 소망 중에 빛과 생명과 진리의 증인이 되고,
기쁨과 감격과 기적이 서로 나누어지는 방학되기를 바란다.//
(기도)
★우리의 생애는 고단하고 불만에 가득 찼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이 성육신이다.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시고 우리의 현실에 오셔서 우리의 생애를 함께 하셨다.
★우리의 슬픔과 기쁨과 고난과 망설임과 절망에 함께 하셨고 심지어 죽음에도 함께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를 주님과 떼어놓을 것은 없다. 그렇게 되자 예수님이 친히 '내가 곧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고 부활이라'고 하신 것 같이,
우리는 우리가 빛이고 생명이고 진리가 되었다.
진리도 생명도 모르는 세상에 그 장님같은 영혼들 앞에 주께서 오신 것같이 우리를 세우셨다.
우리의 생애와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 것이고 얼마나 놀라운 것이며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 자리인지 기억하여
우리의 생애를 주 앞에서 사는, 주의 이름으로 사는 그 감격과 권세와 기적을 누려야 한다.
그렇게 해 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