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소망회 / 잠언 3:27-35 / 2021.11.17.]

nazunzaro 2021. 11. 25. 22:22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거냐, 아니면 명예롭고 영광되고 위대하고 복될거냐? 그 선택의 책임은 나의 기회,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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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회 / 잠언 3:27-35 / 2021.11.17.]

​★예수 믿는 일에 가장 큰 특징은 관대함이라고 한다. 관대함.
이해관계와 시비를 따짐에 있어서 관대해지는 것이 기독교인의 가장 우선적인 특징이다.

아마 우리는 우리 국민적 정서가 유교의 가르침을 제일 많이 이어받아서 우리는 완벽을 추구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결함이 없기를 바라고, 그래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에 매우 열심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회개가 많다.
그러나 동시에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많다. 그것도 길게 설명한다. '넌 좀 얄밉게 굴어' 그렇게 말하고 마치는 것이 아니라, 왜 얄밉고 언제 얄밉게 굴었는지를 또 다 일일이 가르쳐준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일들을 하지 말라고 한다.
성경은 우리가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꺼내놓고 하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위대한 일 그리고 긍정적인 일, 복된 일을 하라고 한다.
잘못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잘하는 일을 자꾸만 우리를 격려한다.​

★그래서 여러 번 비유한 것같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정직한 말을 하라는 거다.
여기서 정직한 말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덕이 되는 말, 복된 말, 격려의 말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제일 처음 연습해야 할 말이, 만났을 때 '반갑습니다.를 하라 그랬다. 인사를 하라.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갑습니다.' '여전히 좋으신 얼굴이군요.' 좋은 말을 하라.

우리와 특별히 시비가 걸리지 않은 사람들과 우리가 마음에 어떤 책임감을 갖고 부담을 갖고 나서지 말라고까지 한다.
우리 자신에게 이해관계가 걸리고 시비가 걸렸을 때는 물론 정당히 따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너무 나서서 우리의 정당함을 증명하는 것이 신앙 행위가 아니라, 돌아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기억하고,
■잘못을 고치려 하지 말고, 불쌍한 곳을 돌아보는 일로 우선적인 행동 규칙을 가져라 그렇게 얘기한다.​

그러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끝절에 보면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이렇게 얘기하는데, 우리는 그 예수 믿는 것이 잘잘못으로 나뉘는, 지금까지 얘기한 유교적 정서에 그 DNA가 있다.
그 잘하고 잘못하고가 신앙 문제에도 중요하게, 기도를 많이 했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 전도를 많이 했다가 잘한 일이고, 그렇지 않고 다른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책임에 등한한 것이 잘못한 것 이렇게 돼 있는데,
★실제로 성경이 얘기하는 구원은, 부끄러운 곳에서 구원함을 얻어 영광된 자리로 오는 것이다.
그 영광된 자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의 복된 존재론이다.

로마서 3장 23절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이것이 죄에 대한 지적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형상으로 그리고 우리를 사랑과 믿음의 상대자로 부르고 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잘못한 것이라는 개념을 가지면 잘못하지 않는 것이 전부인데, 그걸 수치로 생각을 해야 된다.
그게 부끄러운 짓이라면 반대말은 영광된 것이다.
그러니까 잘못한 것을 그만두는 데 급급하지 말고, 잘못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위대하고 복되고 명예롭고 영광된 자리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신앙에 도전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하루는 늘 반복되고 그날이 그날 같지만, 같은 일, 같은 사람, 같은 사건 속에서 우리의 반응과 우리의 태도는 점점 나아져야 된다.

우리가 젊었을 때와 어린 아이를 길러 기르고 있을 때와 지금 손주를 키우고 있는 때는 다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우리의 아들 딸을 가르칠 때 하고 손자손녀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그 마음을 가져야 된다. 우리는 아이들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런 의무와 책임, 꼭 시켜야 되는 일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자식에게 가지는, 우리 삶의 그것이 굉장한 책임이 되고 짐이 되어서 우리를 고단케 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기꺼이 그 고난을 감수한다. 내 눈을 빼서 대신 줄 수 있다. 거기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우리 인생에서의 우리의 매일매일의 행동 규칙이다. '너는 그런 위대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라.'​

★쉽지 않다. 여러 단계를 거쳐야 된다. 미운 말하는 걸 막아야 되고, 무정하고 외면하고 도망가려는 비겁함에서 돌이켜야 한다. 모른 척하면 그만인데 괜히 그 괜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다. 예수께서 오신다. 우리가 뭐라고 무슨 그런 수고를 그런 처참한 자리를 자원해서 오셨나?
■기독교는 그러니까 대단한 거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려면, 예수 이름으로 오라고 기도를 하려면 우리가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생애가 어떤 기회인지 새삼스러운 이해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우리의 태도와 생각이 바뀔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생각하라. 그 일을 행해야 된다.

우리 늙어서 아직 살아 있다. 천국 가는 게 더 쉽다. 이대로 가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졌던 현장, 우리에게 시켰던 일들이 나의 지금의 조건 속에서 발휘되고 증언되고 책임을 다할 시간이 아직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죽으면 쉽다. 죽으면 책임이 끝나니까.. 그런 비겁한 생각은 집어던지고
★'살아있는 한 나에게 `명예의 기회`가 있다. 내가 아니면 못할 일이 있다.' 이 생각으로 우리 노년이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하루하루, 기적의 하루하루가 되어야 한다.//

(기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이시며 우리의 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예를 원하시고 영광을 원하신다. 감사한 일이다. 뭘 안 하면 그만인 그런 값싸고 쉬운 것에 우리의 인생을 내어놓지 말아야 한다.
힘을 다하여 주의 부르심에 우리의 발걸음과 우리의 생각을 내놓아, 아버지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우리를 통하여 하시려는 그 일들이 우리의 생애에 우리의 책임으로 우리의 명예로 실천되어야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