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자유롭게 거리낌도 불안도 없이 기쁨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nazunzaro
2021. 10. 17. 14:39
[소망회 / 2021.10.13.]
환절기가 되어서 일교차가 심해 몸이 시원치 않다.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 모두 어려움 속에 있으나 우리의 마음은 더욱 강건해지고 있다.
세상이 우리에게 가하는 위협은 결국 죽음으로 가자는 것인데, 그것은 다만 육체의 죽음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우리 인생과 우리의 신분을 헛되다고 시험하고 위협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럴 리 없다. 우리 인생은 복되다.
지난주에 이어서 잠언 2장 13절부터 끝절까지 보겠다;
“13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14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15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17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18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20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22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잠언 2:13-22)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을 아는 지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 지혜, 정의와 공의와 정직을 사는 지혜로운 자들, 복된 자들의 길에 대해서 성경 말씀을 나누었다.
오늘은 그 반대되는 자들이다. 그들은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행악하기를 기뻐하고 패역을 즐거워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행위에, 이들의 모습에 가장 현저한 증거, 잘못된 증상은 거기에는 폭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폭력을 쓰는 이유는 스스로의 존재와 인생이 값진 것이 없고 보호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무너졌고 깨어졌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깨고 부셔서 자기 마음을 달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 폭력은 공포에서 기원한다. 공포란 두려운 것이다. 자신이 무서운 것이다. 뭐가 무섭겠는가? 희망이 없다.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할 수가 없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를 못한다. 그는 정직할 수가 없다. 거짓말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이란 헛된 것이다.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서도 얘기하듯이, 15절에,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다. 구부러졌다는 것은 곧은 것과 대비되는, 잘못 가는 길이다. 그들의 인생은 구부러졌다. 잘못되어 있다. 그러니 거기엔 열매가 없고 거기에는 감사할 만한 어떤 성취도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이 두렵다. 그의 영혼에 그의 마음에 어떤 만족도 없기 때문이다. 소망이 없고 하루가 무서울 뿐이다.
우리는 이 지혜를 얻지 못한 자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실패한 자들의 현실을, 그 구체적인 모습들을 어느 사회에서나 본다.
예수를 믿어야 되는 이유는, '이 세상을 살다가 죽고 나면 어디를 갈 것이냐?' 라는 문제가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천국에 갈 것이다. 그 천국에 갈 자로서 지금을 살아야 되고, 지옥에 갈 자들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들로서 현실을 산다. 그들은 악하게 살며 거짓되게 살고, 우린 선하게 살며 정직하게 산다.
정직이 뭐라고?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과 대비되는, 지혜, 정의, 공의, 아름다움, 선함, 용서, 화해, 기쁨, 이것이 정직이다. 그런 것이 없이 이것을 하라 그런 뜻이 아니다.
우리 마음과 영혼을 지키시고 붙잡으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의 생애에서, 많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며 헛된 길로 가서 방황하는 것과 달리, ■우리들은 마음을 정하고 이생을 사는 동안 굳건히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우리 인생에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바람이 불고 어려움이 오고 각종 시험과 유혹이 있지만,
■도덕적으로 그것을 다 지켜내는 문제보다 더 크게, 유혹에 지지 않고 위협을 이기고 인내하고 이런 단어보다 더 크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어느 곳에서나 두려울 것이 없다.
'나는 생명이고 길이고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창조와 부활과 심판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로 인생을 살고 있다. 세상이 나를 구박하는 것보다 내가 세상에 대하여 베풀어야 할, 증언해야 할 많은 진리와 많은 복음이 있다. 나는 명예로운 복음의 증인이다',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에 20절에;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아기는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뽑히리라"이다.
하나님이 땅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로 하여금 이 저주받은 창조 세계가 예수로 인하여 예수를 믿는 그 다음 우리를 인하여 회복되기를 바라심으로 우리의 길을 인정하신다,
정직한 자의 인생을 장려하시고 복되다 하시며 쓸모 있다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나의 동역자라 얘기하신다, 그런 뜻이다.
악한 자들은 남아 있어봤자 쓸모가 없다. 그들의 삶은 이미 죽은 것이다. 그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그러니 악한 길로 가는 일에 대하여 우리가 시험을 받거나 우리의 책임의 정체성을 유혹받거나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지혜를 갖고 믿음을 갖고 소망 속에 살고 있지만 세상은 어렵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육신으로 세상에 보내고 우리 손에 죽게 하신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모든 죄인이 하나님께서 가장 못나고 악한 죄인까지 끌어안은 것이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그 처절한, 그 부끄러운, 고통에 찬 자리에서 우리 모두를 끌어안아 부활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생애와 우리를 필요로 하는 세상에 대하여 우리들이 마음 깊은 믿음의 감격과 각오를 가지고 살아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고 그를 돕지 않았다. 그는 우리 손에 죽어야만 했지만 우리가 죽인 그 죽음이, 우리를 구원한 십자가의 놀라운 신비를 인하여, 우리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형통하고 권력을 쥐고 높은 자리에서 우리에게 모든 억압을, 모든 유혹과 도전을, 위협을 일삼는 세상 권력 아래 피해자같이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십자가의 신비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는 고백을 꼭 마땅히 해야 한다.
게다가 이 길을 걷는 우리는 저들의 위협과 유혹에 여러 번 골탕을 먹고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넘어진 자리에 그대로 있지 말고 일어나야 한다. 힘을 내서 다시 기도하고, 다시 주를 아는 빛을 바라는 참된 신자의 인생에 귀한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오늘도 월터 그루그만의 기도문 속에 오늘 말씀과 이어지는 기도문을 하나 읽겠다;
“주님, 넋이 나간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는 자신을 속이고 현혹하면서 헛된 곳을 찾아 집을 짓고 살아왔습니다.
참으로 오늘 우리가 만나는 당신은 잡으러 오시고 한결같으신 분, 우리가 의지할 반석,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인내하는 분이십니다.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당신이 우리가 기억하는 당신이기를 간구합니다.
언제나 주님이셨던 주님, 오늘도 우리에게 주님이 되소서.
언제나 주님이셨던 주님,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모습으로 오소서.
우리가 꿈 속에서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루게 하소서.
자유롭게 거리낌도 불안도 없이 기쁨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우리가 아닌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아멘//
(기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사명은,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사명을 잇는, 한없이 크고 위대한 사명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교회는 세상 앞에 늘 쩔쩔매고 아첨하고 타협하고 못난 역사로 이어져 와 있다.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교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우리에게 분풀이를 한다.
그러나 교회는 한 번도 진 적이 없고, 끊어진 적도 없고, 그 임무가 취소된 적도 없다.
그러니 오늘 코로나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 한복판 서울에서 우리의 교회와 우리의 성도들은 이 시대와 이 나라 이 자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주님이 신실하신 주님으로 오늘 찾아오시기를 바라는 기도문이 오늘 우리의 기도문이 되어,
우리 인생이 신실한 신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런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주께서 우리를 찾아오셨던 그 시작의 신실함이 결과에 감격과 승리로 이어질 것 같이
우리의 사명도 승리로 결과 되리라 믿는 믿음으로
인내하고 충성하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