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존재가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개념들을 바꾸는 거다. 행복,승리,성공,자랑,의로움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nazunzaro
2021. 7. 13. 14:56
[다시보는 요한복음_51_2021.07.11.]
성경은 예수께서 생명이라고 이야기한다.
★生命이란 죽음과 대조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존재가 부요하고 풍성하고 충만하고, 아름답게 커가는 것, 끝이 없는 충만을 얘기하는 것이 생명이다.
死亡이란 다만 살다가 죽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의 삶이 허무하고 헛되고 거짓되고, 결과가 없는 것이 사망이다.
이렇게 대조되는 차원에서 우리가 생명이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은, ★새로운 地位, 새로운 身分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存在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를 우리가 보는 것이다.
은혜와 진리는, 은혜를 믿고 진리를 믿는 어떤 조건이나 책임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槪念들이 바뀌는 것이다.
행복이 우선 바뀐다. 승리가 바뀌고, 성공이 바뀌고, 의롭다든가, 자랑한다는 것들이 바뀐다.
예수님의 자랑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었다.
'이 세상 나라에서는 위에 앉은 자들이 아래 있는 자들의 섬김을 받지만, 내 나라에서는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섬기는 나라니라.'
섬기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것이 복이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면, 이 地位로 가는 게 아니라, 성경에서 일어난 개별 사건들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병이 낫고, 자식들이 잘되고, 사람들 앞에 큰소리칠 수 있고, 누구를 만나든지 괄세받지 않고, 자랑할 자존심이 지켜지고, 걱정 할 일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들, 부러움을 받는 그런 것들은 다 성육신 속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는 기꺼이 고난을 받으러 온다.
그건 우리가 가장 못 견디는 것 아닌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이, 복음서에 기록된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 보다 큰 일도 하리라'는 기대와 너무 상반된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가 하고 있다. 그게 무언가? 《아무도 모르는 거다》. 예수가 친히 당한 거다.
■그러나 그 무슨 초자연적 기적들보다 우리가 받은 지위가 얼마나 큰 것인가!!
사망까지도 폭력까지고 다 구원이 되고 영광으로 바뀐다.
■우리의 삶이,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지위가 무언지 깨닫게 되자, 무슨 기적이 일어나고 무슨 보상을 받고 하는 것들은 다 별게 아닌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대접하지 않는다. 예수께 그리 했듯이.
우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 된다고, 힘을 갖고 있어야 된다고 왜곡시키고 있다.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그렇게 되면 위대해질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사랑하며 섬기며 용서하는..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뭐냐? 하나님의 권능은 사랑이다.
★사랑은 쉽지가 않다. 왜 쉽지가 않은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완성되기를, 상대가 복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가 가진 복을 알고 우리에게 허락된 은혜가 그에게도 허락되기를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이다.
[다시보는 요한복음_51_2021.07.11.]
성경은 예수께서 생명이라고 이야기한다.
★生命이란 죽음과 대조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존재가 부요하고 풍성하고 충만하고, 아름답게 커가는 것, 끝이 없는 충만을 얘기하는 것이 생명이다.
死亡이란 다만 살다가 죽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의 삶이 허무하고 헛되고 거짓되고, 결과가 없는 것이 사망이다.
이렇게 대조되는 차원에서 우리가 생명이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은, ★새로운 地位, 새로운 身分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存在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를 우리가 보는 것이다.
은혜와 진리는, 은혜를 믿고 진리를 믿는 어떤 조건이나 책임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槪念들이 바뀌는 것이다.
행복이 우선 바뀐다. 승리가 바뀌고, 성공이 바뀌고, 의롭다든가, 자랑한다는 것들이 바뀐다.
예수님의 자랑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었다.
'이 세상 나라에서는 위에 앉은 자들이 아래 있는 자들의 섬김을 받지만, 내 나라에서는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섬기는 나라니라.'
섬기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것이 복이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면, 이 地位로 가는 게 아니라, 성경에서 일어난 개별 사건들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병이 낫고, 자식들이 잘되고, 사람들 앞에 큰소리칠 수 있고, 누구를 만나든지 괄세받지 않고, 자랑할 자존심이 지켜지고, 걱정 할 일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들, 부러움을 받는 그런 것들은 다 성육신 속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는 기꺼이 고난을 받으러 온다.
그건 우리가 가장 못 견디는 것 아닌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이, 복음서에 기록된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 보다 큰 일도 하리라'는 기대와 너무 상반된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가 하고 있다. 그게 무언가? 《아무도 모르는 거다》. 예수가 친히 당한 거다.
■그러나 그 무슨 초자연적 기적들보다 우리가 받은 지위가 얼마나 큰 것인가!!
사망까지도 폭력까지고 다 구원이 되고 영광으로 바뀐다.
■우리의 삶이,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지위가 무언지 깨닫게 되자, 무슨 기적이 일어나고 무슨 보상을 받고 하는 것들은 다 별게 아닌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대접하지 않는다. 예수께 그리 했듯이.
우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 된다고, 힘을 갖고 있어야 된다고 왜곡시키고 있다.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그렇게 되면 위대해질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사랑하며 섬기며 용서하는..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뭐냐? 하나님의 권능은 사랑이다.
★사랑은 쉽지가 않다. 왜 쉽지가 않은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완성되기를, 상대가 복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가 가진 복을 알고 우리에게 허락된 은혜가 그에게도 허락되기를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이다.
[다시보는 요한복음_51_2021.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