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신자의 성숙이란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자(질그릇)를 축복하지 않으신다. 신앙생활은 당하는 것이지 승리하는게 아니다.

nazunzaro 2021. 4. 8. 15:36
I.
우리 신자들이 예수를 믿고 신앙적으로 성숙해져서 상당한 수준에 올라가면 '사람이 달라진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성서는 한 신자가 성숙하는, 즉 신자가 어떤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을 그가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사람]이 된다고 말씀한 적이 없다.

고린도후서 4:7 말씀이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믿어서 변화했다는 것은 질그릇이 변화했다는 것이 아니라,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졌다는 것 밖에는 바뀐 것이 없는 것이다. 질그릇 자체는 결코 변화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를 천사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각에는 우리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죄를 더이상 저지르지 않고 거룩해지면 완벽해지는 것이 하나님께 도움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그러나 성서는 그렇게 요구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다.

성서가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완벽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뜩같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하는 데 차이가 있고, 이 차이가 너무나 크다는데 문제가 있다.

■세상 사람들과 예수 믿는 사람들과의 차이중에서 가장 큰 것은 우선 인생의 목표가 다르다는 데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목표를 자기를 치장하는 데에 두고 산다. 자기의 명예와 자기의 만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
이는 말하자면 각자가 질그릇으로서 그 질그릇을 어떻게 아름답게 치장하고 고귀하게 만들 것인가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질그릇 때문에 살지는 않는다. 질그릇 자체가 치장되고 영광을 입고 자랑스러워지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에수 믿는 자(질그릇)를 축복하지 않으신다. 다만 그 안에 보석을 넣어 주실 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 사람이 가진 질그릇이 내가 가진 질그릇보다 훨씬 못한 데도 왜 좌절하지 않고, 자포자기하지 않고 오히려 떳떳 무쌍하게 사는가?'라는 의심을 일으키게 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신자인 우리에게 요구되는 성숙이다. 이것을 아는 지식을 성숙된 신앙이라고 말하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싸움인 것이다.
■당하는 것이지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질그릇 차원에서의 승리나 남을 압도하는 것은 기독교인에게는 거의 없다.
대다수의 신자들은 당하는 것으로 에수 믿는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와 내용이 질그릇 치장이 아니라, 그 안에 다른 보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차원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신자란 누가 얼마만큼 질그릇을 의뢰하지 않고 보배를 의뢰하는가의 싸움이다.
■곧, 내가 얼마만큼 나 자신을 주인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삼을 것인가의 싸움이지, 내가 변화되었다든가 질그릇이 세상 사람들 보다 나아졌다는 그런 일은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의 변화는 그가 자기를 주인으로 삼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삼는 일을 얼마나 했느냐의 차이를 말한다.
그의 질그릇이 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얼마만큼의 '가치기준과 중점을 보배로 옮겼는가?'이다.

II.
우리는 자꾸 질그릇이 변해있기를 바란다. 다시는 죄가 생각도 안 나고 유혹이 들어오지도 않고 이상한 곳에 시선이 가지 않는 불혹이순(不惑耳順)의 경지에 도달해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서는 그것이 나아진 적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나아져서 나의 신앙생활이 성숙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만큼 《나의 주장이나 주권을 하나님께 이양시켜야 하는 부단한 노력이 성숙이다.》

성서는 인간이 군자의 도에 이를 수 없다고 선언한다. 질그릇에 보배를 보내심으로 보배로 《우리의 시선을 옮기고 중점을 옮기라》고 말씀한다.

우리 삶은 성공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로도 점철되는 법이다. 내가 가진 내 질그릇이 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있는 보배 때문에 사는 삶이며, 동시에 질그릇이 깨어짐으로써 안에 있는 보배가 제3자에게 더 많이 보이는 삶이 신자의 삶이다.
내가 가진 것, 이 질그릇이 깨진 것이지, 보배가 깨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삶이다.

그리고 적극적인 차원에서도 질그릇에서 어떻게 나의 전 주권을 보배로 옮기는가의 싸움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이며, 나아가 《얼마나 주권을 이양하는가》 하는 것을 성숙한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신앙생활과는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신자의 생애는 《질그릇이 겪어야 하는 모든 풍상을 겪으면서》 《동시에 보배를 가진 것으로 말미암는 자랑과 가치와 의미로서 우리의 인생의 보람을 증명해 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자의 생활이다.

(*출처: 구원 그 이후 2005 3판 p. 7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