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세상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신자는 법보다 하나님 성품이 더 가깝다
nazunzaro
2021. 4. 5. 06:34
이 세상 현실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면하는이 현실의 문제는 《하나님》보다 세상적 해결이 가깝다.
그렇지만 신자된 우리는 결국 당면하는 현실문제에 대하여 세상적인 해결보다 《하나님의 자녀다움》이 더 가깝게 될 것이다. 마침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울텐데..
그러나 마침내 그렇게 될것이다. 되고야 말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현실의 문제를 대응하지 않고서는 배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배겨날 수 없도록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라 자율적 자발적 자유의지를 지니고 태어난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기계를 만들듯이 단번에 설정한 대로 만들어 내지 않으셨다. 오랜 인생살이에 걸쳐서, 각자가 처하는 수많은 경우의 고난과 경험을 겪게 함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과 인격으로 자라나게 하신다.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하심으로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고난으로 일하신다
우리라는 존재는 세상적 방법으로는, 세상이 생각하는 진리로는 도무지 영혼의 만족이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인격적 성품적인 면에서 미완성의 존재로, 그것이 일생에 걸쳐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지어져 가는, 완성이 되어가는 존재로 지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영광의 존재로 완성되는 것으로 말고는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지혜가, 진리가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신다. 우리가 고난을 겪게 하심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 지혜, 인도하심, 일하심,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고난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이제 우리는 각자가 처하는 현실에서 부닥치는 모든 문제를 세상적 방법으로 해결하려 들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진리로 대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가 있게 된다. 비로소 삶의 진정한 기쁨 의미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방법론에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면에서는 관념적 신앙이나 초자연적 힘을 기대하는 초기단계의 신앙과 성숙한 단계의 신앙은 같다고 볼 수가 있다.
관념적 신앙이었을 때는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초자연적 도우심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사소한 문제까지도.
이제 성숙된 신앙 단계에 와서도, 크고 작은 현실의 모든 문제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로, 하나님의 자녀다움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은 자로》 대응하기로 하는 것이다. 해결이 아니라 대응하기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힘으로써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는 현실에서 마주하는 모든 문제를 세상적 능력이나, 어떤 관념이나 초자연적 도움으로 해결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고 일하시는 바를 따라, 《우리가 주의 겸손, 섬김, 용서, 포용, 온유, 따뜻함, 감수함, 인내로, 그러한 사람이 되어서 그릔 사람으로써 대응하기로》 하는 것이다.
세상 현실의 사소한 문제까지도 《하나님과 예수를 배우고 알고 닮은 자로써》 대응하고 반응하기로, 감당하기로, 살아내기로 하는거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면하는이 현실의 문제는 《하나님》보다 세상적 해결이 가깝다.
그렇지만 신자된 우리는 결국 당면하는 현실문제에 대하여 세상적인 해결보다 《하나님의 자녀다움》이 더 가깝게 될 것이다. 마침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울텐데..
그러나 마침내 그렇게 될것이다. 되고야 말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현실의 문제를 대응하지 않고서는 배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배겨날 수 없도록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라 자율적 자발적 자유의지를 지니고 태어난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기계를 만들듯이 단번에 설정한 대로 만들어 내지 않으셨다. 오랜 인생살이에 걸쳐서, 각자가 처하는 수많은 경우의 고난과 경험을 겪게 함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과 인격으로 자라나게 하신다.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하심으로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고난으로 일하신다
우리라는 존재는 세상적 방법으로는, 세상이 생각하는 진리로는 도무지 영혼의 만족이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인격적 성품적인 면에서 미완성의 존재로, 그것이 일생에 걸쳐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지어져 가는, 완성이 되어가는 존재로 지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영광의 존재로 완성되는 것으로 말고는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지혜가, 진리가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신다. 우리가 고난을 겪게 하심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 지혜, 인도하심, 일하심,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고난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이제 우리는 각자가 처하는 현실에서 부닥치는 모든 문제를 세상적 방법으로 해결하려 들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진리로 대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가 있게 된다. 비로소 삶의 진정한 기쁨 의미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방법론에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면에서는 관념적 신앙이나 초자연적 힘을 기대하는 초기단계의 신앙과 성숙한 단계의 신앙은 같다고 볼 수가 있다.
관념적 신앙이었을 때는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초자연적 도우심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사소한 문제까지도.
이제 성숙된 신앙 단계에 와서도, 크고 작은 현실의 모든 문제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로, 하나님의 자녀다움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은 자로》 대응하기로 하는 것이다. 해결이 아니라 대응하기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힘으로써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는 현실에서 마주하는 모든 문제를 세상적 능력이나, 어떤 관념이나 초자연적 도움으로 해결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고 일하시는 바를 따라, 《우리가 주의 겸손, 섬김, 용서, 포용, 온유, 따뜻함, 감수함, 인내로, 그러한 사람이 되어서 그릔 사람으로써 대응하기로》 하는 것이다.
세상 현실의 사소한 문제까지도 《하나님과 예수를 배우고 알고 닮은 자로써》 대응하고 반응하기로, 감당하기로, 살아내기로 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