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어찌하면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nazunzaro 2021. 2. 18. 07:13
시편 51편은 그 제목이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라고 되어 있다.
회개의 시이다. 이 다윗의 회개의 시는 《그의 범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인 것을 회개하는 존재론적인 회개》의 시이다. 범죄한 것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회개라는 것은,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통해 알게 된 게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은 언제든지 다시 죄를 지을 수 있고, 언제든지 죄밖에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종종 죄를 지으면 그것이 실수였든가, 그때는 못나게 굴었다고 회개를 한다. 그 얘기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못나게 굴지 않을 수도 있었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짓지 않고 못나게 굴지 않는 것은 그냥 죄를 짓지 않은 거고, 인간은 언제나 선하고 의롭고 잘하고 있었던 적은 없다. 그걸 말하고 있는 게 다윗의 회개이다.

성도들 마저도 많이 오해하는 것이, 어떤 일을 한번 잘하면 이제 자기는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았다,라고 생각을 한다. 자기의 진심이 곧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한번 잘하고 나면 그 다음에 아주 많이 틀린다.
다윗은 잘한 게 많다. 그런데 다윗이 놀란 건 그거다. 자기가 죄를 범할 때 자기가 죄를 짓는 줄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인간은 죄덩어리라는 거다. 언제나 말을 하면 죄의 말이 나가고, 생각을 하면 죄의 생각이 나고, 무슨 행동을 하면 죄에서부터 한다는 거다.
인간이 이렇다는 사실이 우리 스스로 잘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제일 잘하는 게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를 미워하는 게 제일 잘한다. 욕하고 신랄하게 군다.

예수가 이땅에 오셨을 당시 예수를 죽인 자들은 그들이 잘하는 줄 알고 죽였다. 예수가 많은 약속을 해놓고 배신했다고 해서 죽였다. 그들이 예수를 좇을 때는 그들이 잘하는 줄 알았다가, 예수를 죽일 때는 그것도 또 잘하는 일인 줄 알았다.

■사람들의 모든 범죄는 본인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틀리지 않고 고집을 부릴 때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예수님은 억울하고 우리가 틀렸으나, 우리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못하는 것을 당신이 짊어지신다. 그냥 죽는다.
인류가 뭐라고 했는데? 빌라도의 이 질문, '바라바를 놓아주면 어떠냐? 이 사람을 살리자.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 관중들이 뭐라고 답했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십시오.'

그것을 예수님이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한 자들을 위하여 죽는다. 그를 때린 자, 그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죽는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게 잘하는 거다.
■그러나 이 일을 우리는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다윗의 고백은, `나는 죄인입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제 마음에 있는 악한 생각을 다 지워 주십시오`가 아니라,
■'어찌하면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어찌하면 우리는 시비를 멈추고, 저주를 멈추고, 축복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라고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자기가 옳은 걸 증명할 때 뭘 하나 보라. 우리 눈에 벗어난 사람을 흉을 보는 걸로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한다.
세상은 이런 죄 밖에 만들지 못한다. 죄만을 생산하거나 죄를 품고 있다. 세상은 옳은 것과 선한 것을 만들지 못하고 품을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주께서는 제사를 원치 않는다. 우리의 성의, 우리의 헌신, 우리가 내놓은 어떤 것에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치려고 하신다. 우리를 선을 행할 수 있는 자, 의를 행할 수 있는 자, 자비롭고 용서하고 이웃을 위하여 울 수 있는 자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게 다윗의 존재론적인 회개이다. 우리의 마음이 상한 심령이 되거든 '내가 이렇게 나의 못난 것을 아파하고 내 죄를 사무치게 슬퍼하오니 용서하십시오` 이것보다 더 나아가라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주께서 나를 그 피로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이름을 주신 그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죄를 안 짓겠습니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가 걸으신 그 길을 뒤좇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용서할 수 있고, 어떻게 섬길 수 있고, 어떻게 발을 씻길 수 있고, 어떻게,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까?' 여야 한다.

■이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은혜를 더하소서. 저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소서. 저는 하나님 없는 존재로는 살 희망도 마음도 없습니다. 예수가 누군지,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제발 우리로 사랑하며 살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위대한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라고 몸부림치라고 다윗이 이 시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말년에 살아온 모든 생애를 뒤돌아 보라. 잘한 게 뭐가 있는가? 드디어 어른이다. 철이 들어야 된다.
■사랑하고, 은혜를 구하고, 기쁨을 구하고, 감사를 구하는, 유일한 증인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그의 제자요, 그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존재한 우리의 인생이 꽃피고 말년에는 기쁜 열매 풍성하게 맺게 하라.
늘 감사와 찬송이 기쁨이 당연히 넘치는 말년이 되게 하라.

(기도)
우리의 생애가 결국 와야 하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그 고백이 오늘을 어떻게 다르게 살게 하는 기적인지, 우리의 기쁨인지, 하나님의 뜻인지를 아는 지혜, 연륜, 고백, 충성, 그리고 풍성한 기쁜 열매로
우리의 말년에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오늘의 말씀이 우리의 생애가 되게 해주소서.
(*ㅅㅁ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