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사랑의 자리에 들어가면, 진정한 기독교의 사랑에 들어가면, '자신'은 없는 것이다. '나는 없다'가 되는 것이다

nazunzaro 2020. 12. 25. 09:23
(*믿음의 본질 14. p.213)

사랑의 자리에 들어가면, 진정한 기독교의 사랑에 들어가면, '자신'은 없는 것이다. '나는 없다'가 되는 것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지니라"
'자기 부인'이라는 것이 사랑에서는 중요한 핵심이다.

성경 말씀에서 예수님의 '자기를 비웠다'는 것은 뭐냐 하면, 예수님은 주장하실 수 있는 분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령 하나님이니니까. 그는 창조주시며 섭리자시며 심판자이시다. 그는 모든 존재의 주인이시며 진리와 의미와 가치와 모든 존재에 대하여 그 분이 근원이시며 기준이시며 그 분이 그 모든 일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시고 생명을 부여하시며 가치를 창조하시며 채우시며 넘치게 하시는 분이다.
그런 그 분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복되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비워》 종이 되어 오신 것이다. 성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따라 자기를 비우고 《종이 되어》 사람으로 오시되 《죽기까지 순종하시어》 십가에 죽으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원해 내시는 것이다.

이 일은 빌립보서 2장1절 이하에 있는;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를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봐 나의 기쁨은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에 나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운 마음》, 《자기 부인》, 십자가를 지는 《순종》을 무엇에다 연결을 시키고 있느냐 하면, '선한 일을 하며 옳은 일을 하며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 때문에 《자기를 비우는 일》을 《실패하지 말라》'는 것이다.

늘 말하지만 누가 목소리를 높이느냐 하면 옳은 사람이 목소리를 높인다. 자기가 옳고 맞았으니까.
■그러나 성경은 '내가 옳았을 때 웃어 넘겨라'는 것이다. 내가 옳거나 맞았을 때 큰소리 쳐서 《상대방을 잡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을 때", ■즉 좋은 일 한다고 할 때 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왜 자기를 비우는가?'에 대해서이다.
'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의 가장 큰 핵심은 '상대방만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만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잘되면 내가 어떻게 되든 좋은 거다. ■나에겐 관심이 없는 거다.
성경 말씀 식으로 '나는 없다'가 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상대방을 위하여.
상대방 뒤에 숨어 있고, 상대방이 혼자 큰 것처럼 굴어도 상대방만 잘 되면 아무 불만이 없다.

아들네 집에 갔다가 천대받고 딸네 집에 갔다가 천대받고 양로원에 혼자 나이 많으신 어머님이 가셨다. '자녀들이 있습니까' 물었더니 자녀들한테 누가 되고 창피해 할까봐 '없다'고 대답하신다.
자식들한테 부모님 계시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그런다. 왜 없다고 하는가? 짐을 지기 싫어서이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들 한다. 철이 들어야 하는 것이고 실력이 있어야 하는 거다. 예수를 믿지 않고는 이 사랑을 할 수가 없다.

로마서 15장을 보면 바로 이 사랑에 대하여 성경이 중요한 권면을 한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 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1-7)

"예수님께서 우리를 받아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다". 굉장한 표현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형상대로 만든 피조물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받으신다. 죄인을 용서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받아야 할 죄를 대신 담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용서와 구원의 대상인 우리에게 오해와 조롱과 고통을 당하셨다.
《왜 그걸 기꺼이 하셨는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불평하지 않으며 계산할 수 없다.

인간은 이 사랑을 알 수가 없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인간은 이 성품과 본성은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이것이(예수님의 사랑이) 생겨났고, 이것이 《책임》이며,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써 《훈련해야 되고》 《발전시켜야 되고》 ,
《가장 크게 우리의 모든 것에 중심이 되도록》, 크고 깊고 넓고 높게 《만들어 채워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은사가 아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의 주권으로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만 준 독특하고 특별한 능력이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성도에게 주었으며 《책임》져야 할 《신앙의 핵심》이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뭔가?
우리는 신앙이 좋다는 것을 능력과 열심 위주로 본다.
그러나 믿음의 본질을 확인해 보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확인은 무엇인가?
믿음이 《인격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신앙이 좋다는 것도 《인격적인 요소》가 우선한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은 닮는 것》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인데,
그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形象, shape)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이 《인격성》이다.

하나님의 사람만이 갖는, 세상은 흉내낼 수 없고 좇아올 수 없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닮는 것》이고 우리 주 《예수를 닮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높으심 같은 《그 아량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신앙으로 《연습하고》 《극복하며》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받아야 》한다.
세상에는 없는 이 신앙의 《실력》과 《내용》을 가지고 빛과 소금으로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