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려고 하는 것보다, 하루를 살기에 급급한 어떤 방법, 기대 또는 신뢰 같은 것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치지 못하는 현상이 우상숭배다. 이에 하나님은 도전하신다
nazunzaro
2020. 11. 21. 09:45
■우리가 생각할 때도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이 선민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시련을 당한다.
왜 그런 걸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에게서 이기는 것이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런 쉬운 문제의 해결을 가져오면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더 생각하고 더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주문같이 수단 방법같이 작동법같이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 역사서를 읽을 때, '이스라엘이 법궤를 빼앗기고 패하는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놀랐던 것은 그들이 종교적으로 신앙과 윤리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벌을 받았던 것이라고, 사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상들을 섬겼던 것이다'라고 이렇게 쉽게 단언을 하면 안된다. 그것보다 훨씬 크고 깊다.
■우리가 일상을 살려면 일단 건강해야 되고 또 운도 좋아야 되고 쉬운 돈벌이도 있어야 되고 하는 식의 아주 현실적이고 작은 문제들을,
이스라엘은 자기네가 들어갔던 지방 땅의 거민들의 삶의 방식에 동화되어,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권력에 따라가든가 또는 그저 부에 따라가든가 하는 식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려고 하는 것보다 하루를 살기에 급급한 어떤 방법, 어떤 그 기대, 또는 신뢰 같은 것들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치지 못하는 현상이 우상숭배이다.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통해서 당시에도 그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그저 당연한 방법이거나 그저 힘에 불과 하지 않고, 나는 너희에 대하여 깊은 뜻을, 목적을 갖고 있다'라고 그들에게 도전하신 것처럼,
우리가 이제 현대사회를 살면서도 우리 각각의 생애 속에서 동일한 도전을 받고있는 것이다.
■인생에 고난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쉽게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우리의 이해와 우리 안심의 정도로 축소시키는 것을 하나님이 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왜 날 편안하게 해 주시지 않는가? 왜 내게 응답하시지 않는가?
거기에 만족되어서 거기서 그냥 인생이 끝나버리기를 원치 않으셔서 자꾸 흔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볼 때 일반 역사가들이 인류의 역사를 다루면, '역사는 결국 권력의 문제다' 이렇게 공통적으로 결론을 낸다. 인류의 역사란 어떤 권력, 전쟁에서의 승리, 어떤 부에서의 승리 같은 것이 다 권력과 힘으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적으로, 좀 더 보편적으로 신학적으로 읽게 되면, 신을 내세워서 독선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을 편들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외면하면 벌을 받는다' 이렇게 간단한 등식을 만들고 마는데, 역사서를 읽으면 뜻밖의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유가 없는, 알 수 없는 '왜 그러는지?'라는 의심과 혼란스러움이 우리에게 오는데,
■그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더 알기를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고, 우리 현실의 별거 아닌 문제에 우리가 묶여서 우리의 인생을 타협하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깨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서에서 우리가 알아내야 할 것은 이거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특권들이 무슨 내용을 담아내기 위한 것인가? 그걸 어떻게 만들어내시는가? 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하나님의 뜻과 인간이 가지는, 하나님의 뜻에 인간이 미칠 수 없는 현실에서, 인간이 쉬운 답으로 얼버무리는 사이에 이런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점점 더 하나님을 알아가게 만든다'라고 읽어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우리가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 앞에서 구할 때, 그 답을 받는 것이 다가 아니고, 그 구하는 것의 궁극적인 도전을 읽어내야 한다.
지금 같으면 코로나인데, 코로나가 오자 우리의 일상이 무너졌고 모든 행복과 안심이 무너졌다. 생각해 보자. 뭐가 겁이 나는 건가? 이 병에 걸리면 죽는다는 게 겁이 난다. 그럼 영원히 산다고 믿었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뭐라고 큰소리쳤었나? '우린 죽어도 천국 가' 그렇게 큰소리치지 않았나? 무슨 '병에 걸려도 좋아' 그런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겁내는 건 결국 죽음인데 죽음이라는 것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보다 다른 차원이다.
■죽음이란 모든 삶이, 모든 시간이, 모든 노력이 헛되고 마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니까 코로나가 우리에게 죽음으로 겁을 줄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습인가, 자랑인가, 그 생각까지 우리를 몰아붙인다.
지금 나이에 생각도 많고 짐도 많다. 해결할 능력은 없는데 보이는 건 많다.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이 뭘 만들었는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 우리를 어디로 몰고 왔는지, 우리 깨닫고 제대로 살아내야 할 시간이다. 그 복을 누리고 그 영광을 깨우치고 그 명예를 살아내야 한다.
잘하고 못하고 잘났고 못났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드시고자 하는 성령충만한 인생, 예수를 믿는 인격,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영광을 그 생명과 소망을 드러내는 귀한 기회가, 잘 살아내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실패와 후회와 우리의 채찍들이 다 이제 열매를 맺는 시간이다. 그 복된 이 나이 이 지혜 이 실력의 자리에서 우리의 책임을 완수하여 우리 이웃들 자손들 후배들 세상 앞에 빛이고 생명이고 영광이어야 한다.
왜 그런 걸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에게서 이기는 것이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런 쉬운 문제의 해결을 가져오면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더 생각하고 더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주문같이 수단 방법같이 작동법같이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 역사서를 읽을 때, '이스라엘이 법궤를 빼앗기고 패하는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놀랐던 것은 그들이 종교적으로 신앙과 윤리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벌을 받았던 것이라고, 사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상들을 섬겼던 것이다'라고 이렇게 쉽게 단언을 하면 안된다. 그것보다 훨씬 크고 깊다.
■우리가 일상을 살려면 일단 건강해야 되고 또 운도 좋아야 되고 쉬운 돈벌이도 있어야 되고 하는 식의 아주 현실적이고 작은 문제들을,
이스라엘은 자기네가 들어갔던 지방 땅의 거민들의 삶의 방식에 동화되어,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권력에 따라가든가 또는 그저 부에 따라가든가 하는 식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려고 하는 것보다 하루를 살기에 급급한 어떤 방법, 어떤 그 기대, 또는 신뢰 같은 것들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치지 못하는 현상이 우상숭배이다.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통해서 당시에도 그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그저 당연한 방법이거나 그저 힘에 불과 하지 않고, 나는 너희에 대하여 깊은 뜻을, 목적을 갖고 있다'라고 그들에게 도전하신 것처럼,
우리가 이제 현대사회를 살면서도 우리 각각의 생애 속에서 동일한 도전을 받고있는 것이다.
■인생에 고난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쉽게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우리의 이해와 우리 안심의 정도로 축소시키는 것을 하나님이 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왜 날 편안하게 해 주시지 않는가? 왜 내게 응답하시지 않는가?
거기에 만족되어서 거기서 그냥 인생이 끝나버리기를 원치 않으셔서 자꾸 흔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볼 때 일반 역사가들이 인류의 역사를 다루면, '역사는 결국 권력의 문제다' 이렇게 공통적으로 결론을 낸다. 인류의 역사란 어떤 권력, 전쟁에서의 승리, 어떤 부에서의 승리 같은 것이 다 권력과 힘으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적으로, 좀 더 보편적으로 신학적으로 읽게 되면, 신을 내세워서 독선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을 편들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외면하면 벌을 받는다' 이렇게 간단한 등식을 만들고 마는데, 역사서를 읽으면 뜻밖의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유가 없는, 알 수 없는 '왜 그러는지?'라는 의심과 혼란스러움이 우리에게 오는데,
■그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더 알기를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고, 우리 현실의 별거 아닌 문제에 우리가 묶여서 우리의 인생을 타협하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깨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서에서 우리가 알아내야 할 것은 이거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특권들이 무슨 내용을 담아내기 위한 것인가? 그걸 어떻게 만들어내시는가? 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하나님의 뜻과 인간이 가지는, 하나님의 뜻에 인간이 미칠 수 없는 현실에서, 인간이 쉬운 답으로 얼버무리는 사이에 이런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점점 더 하나님을 알아가게 만든다'라고 읽어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우리가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 앞에서 구할 때, 그 답을 받는 것이 다가 아니고, 그 구하는 것의 궁극적인 도전을 읽어내야 한다.
지금 같으면 코로나인데, 코로나가 오자 우리의 일상이 무너졌고 모든 행복과 안심이 무너졌다. 생각해 보자. 뭐가 겁이 나는 건가? 이 병에 걸리면 죽는다는 게 겁이 난다. 그럼 영원히 산다고 믿었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뭐라고 큰소리쳤었나? '우린 죽어도 천국 가' 그렇게 큰소리치지 않았나? 무슨 '병에 걸려도 좋아' 그런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겁내는 건 결국 죽음인데 죽음이라는 것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보다 다른 차원이다.
■죽음이란 모든 삶이, 모든 시간이, 모든 노력이 헛되고 마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니까 코로나가 우리에게 죽음으로 겁을 줄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습인가, 자랑인가, 그 생각까지 우리를 몰아붙인다.
지금 나이에 생각도 많고 짐도 많다. 해결할 능력은 없는데 보이는 건 많다.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이 뭘 만들었는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 우리를 어디로 몰고 왔는지, 우리 깨닫고 제대로 살아내야 할 시간이다. 그 복을 누리고 그 영광을 깨우치고 그 명예를 살아내야 한다.
잘하고 못하고 잘났고 못났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드시고자 하는 성령충만한 인생, 예수를 믿는 인격,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영광을 그 생명과 소망을 드러내는 귀한 기회가, 잘 살아내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실패와 후회와 우리의 채찍들이 다 이제 열매를 맺는 시간이다. 그 복된 이 나이 이 지혜 이 실력의 자리에서 우리의 책임을 완수하여 우리 이웃들 자손들 후배들 세상 앞에 빛이고 생명이고 영광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