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기독신앙의 깊이_고난과 순종에 대한 이해

nazunzaro 2020. 8. 6. 07:42
●사는 게 고생이다. 사는 게 고생이지만 힘든 것이 꼭 비극이 아니라, 그게 어떤 의미와 어떤 보람과 어떤 보상이 있느냐 하는 문제에서 성경의 가르침은 너무나 뚜렷하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 영생과 영광으로 약속된 운명을 지금 살아내는 거다.

●고난 속에서, 한 번의 도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그런 사행성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익혀나가고, 키워나가고, 채워나가는 인생으로 살 수 있는 보람된 존재요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걸 살아내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다 공감할 수 있지만, 하필 그런 방법을 쓰십니까?' 이렇게는 물어볼 수 있다. '왜 빠른, 분명한, 고생 안하는 답을 주시지 않습니까?'라고.

●성경이 하는 얘기는 이거다;
하나님이 죽여야 마땅하고 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를 오래 참으시는 것을 보여 주시고,
복 받을 자에게 복을 한번에 주어서 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시간을 끌어서, 주시려는 복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시간 속에 계속 메꿔나간다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다.
악당을 오래 참는 관용과 그가 복을 주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복을 하루에 줄 만큼을 시간을 덧붙여서 이틀, 사흘, 나흘, 일년, 십년 이렇게 덧붙혀 주신다고 해서 너희가 불평하느냐?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와서 물어야 하는 것은, '그러면 악당들이 억울하잖아요?'이다. 그런 건 우리는 모른다.
하여튼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약속 속에 들어와 있는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여 있는 자들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 얘기하느라고 우리가 살아야 할 하루를 복되게 사는 일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를 지켜내는 일은 안 하고 있느냐 말이다.

`쟤는 요?` 그랬더니,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나? "쟤는 어떻게 됐는지 알 바 아니고, 너나 네 길 가라. 넌 나중에 순교당할 거다" 베드로에게 그랬다.
우리는 복 받은 자이다. 하나님을 알게 됐잖은가? 예수를 믿잖은가? 십자가가 뭔지를 알잖은가? 그 보혈을 흘려 성립시킨 것이라는 걸 알잖은가?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복을 살아내는 일에 하나님이 이렇게 시간을 누적시키고 있다는 걸 못 참아서
`하나님 이건 왜 이렇게 하세요?`
"더 줄려고 그런다"
`됐어요`
"너는 됐어도 나는 아니다"

그러니까 이 일이 얼마나 성경 속에 많으냐 하면, 모세를 생각해 보자.
모세가 제일 분통이 터졌던 게 뭐냐? 자기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일어났던 40세에 하나님이 반응하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미디안 광야의 40년 동안 녹아났다. 분노도 원망도 후회도 한숨도 모든 감정이 다 없어지도록 그가 녹아난 다음, 80세에 부른다.
`하나님 당신은 어떻게 일을 이렇게 하세요?`
"나는 하나님이기를 중단한 적이 없는 하나님이니라"
그 40년이 누적이 되어 그 마지막 40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생활을 견뎌내게 한다. 그렇게 만든다. 모세는 위대한 사람이다. '그는 온유하기가 지면에서 가장 승한 자니라'라는 칭찬을 받는다. 어디서 만들어졌다고? 거기서, 그 죽어나갔던 미디안에서.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러니 역사가 우리 눈에 말이 안 되게 흘러가고, 우리 현실에 하나님이 없는 것 같고, 하나님이 외면하신 것같고, 믿을 수 없고 하는 그 시절이 결단코 하나님이 없을 수 없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성경의 약속을 우리가 실천해야 되는 거다. 이런 일들이 다 일을 한다.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 애굽을 탈출하는 것과 바벨론 포로가 되는 것. 인류 역사의 가장 큰 사건, 성자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손에 죽고 부활하시는 것.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져 있다.
흙으로 빚은 정도가 아니라, 보혈과 그의 찢긴 살로 부활 생명으로 만들어 영광과 영생으로 우리의 삶을 지금 누릴 수 있게 ●고난의 인생 속에 위대함을 약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