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제자도의 완성이다. 감사 환희 희열 등으로 나타나는게 아니라, 여기에는 복종이라는 원리로 강조되고 있다

nazunzaro 2020. 6. 23. 23:00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그 긴밀한 연합에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품으사 예수 안에 우리가 있게 하고 우리 안에 예수께서 거하사, 아버지와 아들이 가졌던 관계를 우리에게까지 확장하고 계시며, 그 일을 위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십니다.

종을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어 예수님께서, 우리 잘 아는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듯이 우리를 친구라고 부릅니다. 그거는 뭐 존재론적으로는 대등할 수 없는데, 관계에 있어서는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구원이죠. 그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뜻이며, 기독교 신앙을 복음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 아닌가요?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세례는 성령의 나타나심과는 다른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은 은사로, 감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이제 예수로 인하여 새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세상에 역사에 알리기 위해서 성령의 임재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경험과 역사가 지나면, 성령의 임재는 나타남보다 내주하시는 역사가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성령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방언이 있을 수 있고 예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적의 치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이런 보다 근본적인, 보다 본질적인 것의 어떤 어떤 부수적이고 종속적인 일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다는 성경의 지적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스스로가 얼마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굉장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부분은 놓치는 거죠. 

그러니 갈리디아서 2장에 가서, 이렇게 바울이 설명하는 신앙생활, 신앙이해, 신앙에 대한 정체성, 존재론적 이해, 이런 것들을 깊이 음미해봐야 할 것입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이중적인 표현이죠.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고 누구라? 예수라 그럽니다. 존재 자체가 없어졌고 예수로 대체되었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의 모든 속성, 원소, 소원, 이런 것들이 다 예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구원의 허락된 은혜와 축복들로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런 뜻입니다.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라, 예수라'
'동시에 나는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를 사랑하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사는 자니라'
그 '나'라는 개인적 특성과 존재가 흐려지는 것도, 나누는 것도 아니요, 나라는 존재는 뚜렷하지만, 내가 온전히 예수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그 내용에 항복한 자로, 만족한 자로서의, 나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 소원이 믿음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다시 보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자랑해야 될 것, 두려워해야 될 것이 전혀 달라집니다.
우리가 자랑해야 될 것은 이거죠. 우리의 운명과 가치에 대해서 더이상 겁날 것이 없습니다.

로마서 8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제 우리가 겁나지 않는다, 겁낼 것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닙니다.
내 운명의 내가 결정권과 선택권과 의지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나 내 운명은 나 하나의 손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의 영이 거하시는, 그래서 우리의 못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 실패될 수 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죄의 본성입니다

여기 있는 무시무시한 표현입니다.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어떻게 순서가 되야 된다고요?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입니다.
부활은 죽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소원이 됩니다. 기꺼이 죽음의 길을 가리라. 이것이 신자의 인생이죠.

(다보행28)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제자도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감사 환희 희열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복종이라는 원리로 강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