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ㅇ15_성경에서 정직은 거짓말을 안할 뿐 아니라, 거짓말이 만들어낼 수 없는 것-용서,이해,사랑,칭찬,기쁨,감사,반가움 이런 것들이다

nazunzaro 2020. 6. 8. 07:32
누구든지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면 배울 게 있어야 됩니다. 배울 게 없으면 상급학교에 진학할 이유가 없죠. 더 많이 배우고 더 훌륭해지고 그래서 더 고단한 학업과정을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예수를 믿고 나면 우리가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을 하게 되는데, 생명이 사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이 공포를 이기는 것이죠. 믿음이 의심을 이기고, 소망이 자폭을 이깁니다.

그런 것들은 다 일상에서 나타나야 됩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세상은 자꾸 우리 보고 `거 봐 살아서 뭐 해? 해 봐야 소용이 없잖아?` 이렇게 협박하고,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하루만큼 새 사람으로 일할 기회였다`라고 말하라는 것이죠.
따뜻하게 용서하고 참고 기다리는 겁니다.

늘 대비되듯이 세상은 긍정적인 답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뭐가 제일 명예롭고 위대한 훌륭한 거냐 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심이 없는 것이랍니다.
서양에서도 기껏, 훌륭하다는 것은 사심이 없는 것, 욕심이 없는 것. 욕심이 없는 것은, 바로 말하자면, 교과서에 아무 글도 없는 겁니다.
책이 그냥 깨끗한 것. 공책이 아무것도 쓰지 않아서 더럽혀지지 않은 것. 이런 것이 말하자면 사심이 없다는 뜻이 가지는 것입니다.
교과서도 다 더러워지고,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영어 콘사이스 사전이 너덜너덜 해졌던 기억나시죠? 누구 책이 더 깨끗한 가는 중고점에 팔아먹을 때나 하는 말이고, 너덜너덜해지도록 뒤져봤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예수 믿어서 하는 구제? 아니오, 은혜랍니다. `은혜를 너희도 나눠 봐라`그러는 겁니다.
누구를 돕는 것, 꾸어주는 것 아니고, 동정을 하는 게 아니고, 우월감을 확인하는 게 아니고,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기가 막히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까지 대접하시는가? 그 아들을 우리 대신 죽일 수 있다,라고 대접하는 것은 우리라는 지위와 신분이 대단하구나 이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도대체 우리같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그러한 대접을 정성을 존중을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다`라고 성경이 우리의 영혼을 도전하는 것입니다.

더 가져서 나눠주는 자, 그러니까 우월한 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건 세상이 속이는 하나의 거짓말이죠.
그러니까 거짓말은 다 이런 것입니다. 이기라는 것이 상대방을 해쳐서 자리를 만드는 것, 거짓말을 안 한다는 자부심을 갖는 '자기의'에 불과한 것, 그래서 못난 것들을 마음껏 경멸하는 것.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거짓말이란 정직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정직이 거짓말하지 않는 것에 불과하지만 성경에서 정직은 거짓말을 안 할 뿐 아니라, 거짓말이 만들어낼 수 없는 것 - 용서, 이해, 사랑, 칭찬, 기쁨, 감사, 반가움 이런 것들이 정직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너희가 자랑하는 모든 것들을 차별화하였다`. 고린도 전서에 나타난 그 당파싸움이 있었죠. 성령의 은사를 받았노라고 서로 자랑을 했죠. 자기는 신앙의 깊은 자리에 와서 이제는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자유인이 됐다고 방탕에 빠졌죠.
`거기에 무슨 영광이 있는가 보라. 거기에 무슨 은혜가 있는가 보라. 혼자 잘났고 다른 사람과 나눌 기쁨이 뭐가 있는가 보라`라는 배경에서 중심에서 헌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헌금 문제는 당시에는 좀 더 심각한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는데, 그 심각함은 로마서 15장에서 이런 사도바울의 설명 속에 다시 등장을 합니다.
여기 아가야 지방과 마게도냐 지방, 남북의 그 그리스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하고 궁핍한 형편에 헌금을 한 얘기가 나오고, 그걸 전달하고 지금의 스페인으로 갈 작정이었는데, 가는 길에 로마에 들러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도 부탁을 합니다.


기도부탁을 합니다.
`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또 하나 이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가 기꺼이 받게 해 주십시오`그렇게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물론 상당수 유대인들은 예수 자체를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유대인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방인들이 함께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교회에서 주는 헌금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어서 이 일에 대하여 바울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우월함이란 그들은 약속을 갖고 있었던 것이고, 그 약속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제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이 열리기를 바란다,에서 이 헌금이 예루살렘 교회에 하나님께서 자기들만 가려 뽑은 우월한 특별한 민족이 아니고 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천직이었다를 알게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겸손을 떨어야 된다는 얘기도 아니고 그저 우리가 겪는 어려움들이 `나는 정당하고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데 너희는 왜 나를 몰라주냐?` 하는 식으로 오해의 길로 들어서지 않기를 동역자 여러분들께 오늘 이 말씀을 들어서 꼭 권면하고 싶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톰 라이트가 쓴 고린도후서 주석에 이 부분에 관한 이런 좋은 설명이 있어서 인용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패턴, 즉 부유에서 가난으로 그리고 다신 부유함으로 가는 패턴이 시행될 때, 복음의 능력이 세상에 새롭게 펼쳐지면서 헤아릴 수 없는 결과가 주어진다. 주고받고 다 은혜와 하나님의 일하심과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이 가지는 영광이요 현실이요 우리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임재고 현실이다` 이렇게 이해하라는 것이죠.

여러분이 주는 때가 있고, 받는 때가 있고, 자랑할 때가 있고 변명해야 할 모든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 본체의 영광이셨으나 십자가로 오셨고 다시 죄인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간구하고 계시는 주님을 우리가 기억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인생에서는 어떤 것도, 어느 경우도, 어느 날도 사소한 날도 없고, 필요 없는 날도 없다는 깊은 믿음의 이해가 여러분의 사역과 인생에 부디 기적과 신비의 근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가 늘 이게 뭔가라고 불만스럽게 여기는 일상 속에 충만히 담겨있다고,
우리의 작은 손길 하나가 큰 일을 한다고 성경은 거듭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길에 책임 있는 부름을 받았으니 감당할 은혜도 주시고 믿음도 주시고 맡기신 말씀과 은혜가 더 풍성하여
사람들 앞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유함이 날마다 자라나는 그런 기적을 보는 기쁨도 주소서.